[만물상] 웜비어 부모의 분노

조선일보
입력 2019.03.04 03:16

"아들은 내가 아는 오토가 아닌 영혼 없는 괴물이 돼 있었습니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17개월 만에 의식불명으로 돌아온 아들을 보자 어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들은 코에 호스를 꽂은 채 초점 없는 눈으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내는 '사람 소리 같지 않은 울부짖음'이 수송기의 시끄러운 엔진 소리 속에서도 또렷이 들렸다"고 했다. 막내 여동생은 울면서 수송기를 뛰쳐나갔다. 스물두 살 아들은 고향에 돌아온 지 6일 만에 숨을 거뒀다.

▶버지니아 대학생 오토 웜비어는 2016년 1월 평양을 여행하다 호텔에서 정치 선전물을 가져가려 했다는 이유로 체포됐고, 2017년 6월 풀려났다. 북한은 웜비어가 수면제 때문에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했지만 미국 의료진은 웜비어의 치아가 펜치로 재배열한 것처럼 변형됐고 발에도 큰 상처가 있었다고 했다. 미 법원은 이를 구타와 전기충격기를 이용한 고문의 증거로 봤다. 

[만물상] 웜비어 부모의 분노
▶이번 미·북 회담에서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나는 몰랐다"고 했다 한다. 트럼프는 "나는 그 말을 믿는다"고 했다. 북한은 자국에 온 미국인을 온갖 구실로 붙잡아 정치 협상의 도구로 이용한다. 북의 중요한 외교 전술이다. 이것을 김정은이 몰랐다고 하고, 트럼프는 그 거짓말을 믿는다고 한다. 어떤 경우엔 속이는 자(者)보다 속는 자(者)가 더 사악하다. 제 잇속을 위해 알면서도 속아주는 것이 그렇다. 웜비어 부모는 "김정은과 그 악마 같은 정권에 분명히 아들을 죽인 책임이 있다. 어떤 변명이나 칭찬으로도 그걸 바꿀 순 없다"며 분노를 터뜨렸다. 이들은 '이제는 참지 않겠다'고 했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고 했을 때 그들은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김정은의 거짓말에 속아준 트럼프 발언의 후폭풍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다. 미 언론과 의회는 물론 헤일리 전 유엔 대사 같은 트럼프 측근들까지 비난에 가세했다. "김정은이 몰랐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 "그런 김정은을 친구라고?"라는 것이다. 평소 같으면 '가짜 뉴스'라고 핏대를 세웠을 트럼프가 이번에는 "당연히 북한이 오토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난 오토를 사랑한다"며 해명에 진땀을 뺐다.

▶북한에서 웜비어 같은 인권 탄압은 지금도 셀 수 없을 정도다. 북 주민만 가두는 '죽음의 수용소'도 있다. 협상을 하고 교류도 해야 하지만 북 정권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부하고 치켜세운다고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김정은의 오판만 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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