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생활이 개선된다 하여 독립 만세를 불렀소"

조선일보
  • 김태훈 기자
    입력 2019.03.02 03:00

    3월1일의 밤
    3월1일의 밤

    권보드래 지음|돌베개|647쪽|2만7000원


    2000년대 초 대학 도서관을 훑다가 우리말로 번역된 3·1운동 당시 일경의 신문(訊問) 조서를 읽게 된 것이 이 방대한 책의 시작이었다. 그 속에서 저자는 우리가 안다고 했던 3·1운동과는 다른, 낯선 장면들을 만났다. 국문학도인 저자(고려대 국문과 교수)는 그때부터 20년 가까이 3·1운동을 파고들었다. 100년 전 그날 오후 태화관과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만세 운동이 낮의 시간을 차지했다면, 이름 없는 수많은 이들이 만세를 외치게 된 이 책 속 사연은 역사가 공식적으로 기록하지 않은 밤의 이야기들이다. 거룩한 맛은 덜하지만 대신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꿈을 품고 태극기를 흔들었다. 국권 회복의 대의 못지않게, 더 잘 살 수 있다는 현실적인 욕망이 만세 에너지를 추동했다. 황해도에서 만세를 외친 홍석정은 검거된 뒤 "독립 만세를 부르면 조선 민족의 생활이 개선된다고 해서 참가했다"고 진술했다. 독립하면 일제가 수탈해간 토지를 균분(均分)해준다는 소문을 듣고 태극기를 든 이도 있다.

    3·1 만세는 사회 개조를 꿈꾼 운동이기도 했다. 저자는 그 사례로 염상섭 소설 '만세전(萬歲前)'에 나오는 장죽 물고 점잔이나 빼는 아버지, 매 맞고 우는 아내, 종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무위도식하는 청년 등을 3·1운동과 더불어 사라져야 할 인간형으로 제시한다. 1910년대 국제사회에 가득했던 혁명의 기운, 강용흘과 이미륵의 망명 문학, 만세에 동참한 일본인 등 숱한 이야기가 천일야화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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