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 결렬에 다급해졌나...北 리용호의 한밤 기자회견

입력 2019.03.01 08:21 | 수정 2019.03.01 11:25

미북정상회담 결렬된 날 밤, 갑자기 열린 北 긴급기자회견
호텔 앞 ‘이상 기류’ 감지… 세 번의 신원확인 끝에 기자회견장 입장
늦게 도착한 매체들은 회견장 입장 가로 막혀
리용호 "이런 기회 오기 힘들어"… 최선희 "金위원장, 조·미 거래 의욕 잃지 않을까"

북한 리용호 외무상이 1일 새벽(현지시간) 제2차 미북 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자 한 외신기자가 상의는 정장 차림, 하의는 운동복 반바지 차림으로 참석해 있다./연합뉴스
북한 리용호 외무상이 1일 새벽(현지시간) 제2차 미북 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자 한 외신기자가 상의는 정장 차림, 하의는 운동복 반바지 차림으로 참석해 있다./연합뉴스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2월 28일 밤,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 앞엔 적막감이 흘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묵고 있는 멜리아 호텔 앞에서 며칠간 장사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이 대부분 철수하고 소수의 기자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밤 11시쯤 멜리아 호텔 앞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베트남 현지 매체 기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북한 경호원의 안내를 받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목격됐다. 한 베트남 기자에게 물었더니 "베트남 외교부에서 긴급 메시지를 받고 왔다. 북한이 긴급 기자회견을 한다는 내용이었다"고 알려줬다.

북한 경호원에게 ‘2차 미·북 정상회담 프레스증’을 보여주며 "한국 기자다. 들여 보내달라"고 했다. 현장 책임자로 추정되는 한 경호원이 무전기로 "남조선 기자라는데 들여보내도 되나?"라고 물었다. 10여분 뒤 입장해도 된다는 답이 왔다. 호텔로 들어가면서 "누가 회견을 하느냐"고 물었다. 이 경호원은 "들어가서 확인하라"며 알려주지 않았다.

3월 1일 새벽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북한 리용호 외무상의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회견에 참석하는 기자들의 신원을 베트남 정부와 북측 관계자들이 확인하고 있다./윤희훈 기자
3월 1일 새벽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북한 리용호 외무상의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회견에 참석하는 기자들의 신원을 베트남 정부와 북측 관계자들이 확인하고 있다./윤희훈 기자
호텔 정문에서 신원 확인을 한번 더 했다. 호텔 안으로 들어서자 신원 확인을 또 했다. 베트남 정부 관계자와 북측 관계자는 노트에 기자의 이름과 국적, 매체명을 일일이 적었다.

늦은 밤 숙소에서 쉬다가 급하게 나와서인지 기자들의 복장은 편한 차림이 많았다. 한 외신 기자는 상의는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이었으나,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기자회견은 호텔 2층 컨퍼런스 룸에서 진행됐다. 2층까진 엘리베이터로만 이동이 가능했다. 북한 경호원 4명이 각각 엘리베이터 한 대씩 잡고 있었다. 기자가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북한 경호원이 들어와 버튼을 누르고 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북한 경호원과 눈이 마주쳤다. "늦은 시간까지 고생이 많다"라고 하자, 그는 ‘피식’하고 웃었다.

기자회견장엔 80석 정도가 준비돼 있었다. 기자가 들어갔을 땐 맨 앞 두줄만 찬 상태였다. 북한 매체 기자들은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을 카메라로 찍었다. 맨 앞좌석에 앉은 외신 기자 입에서 ‘리용호’라는 이름이 들렸다. 기자 옆에서 사진을 찍던 북한 사진 기자에게 "리용호 선생이 회견을 하는 게 맞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회견 직전, 북한 관계자가 회견에 참석한 한국 언론사를 확인했다. 조선일보와 한국일보, 한겨레, 연합뉴스가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호텔에 늦게 도착한 언론사들은 입장이 통제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리용호 외무상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멜리아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한다고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밝힌 1일 새벽(현지시간) 취재진이 멜리아호텔 인근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가로막혀 있다./연합뉴스
북한 리용호 외무상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멜리아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한다고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밝힌 1일 새벽(현지시간) 취재진이 멜리아호텔 인근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가로막혀 있다./연합뉴스
현지시각으로 3월 1일 밤 0시 13분(한국시각으로 1일 새벽 2시 13분)쯤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 영어 통역관이 회견장에 들어왔다. 미 동부시간으로 정오를 지난 직후다. 긴급 기자회견이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리에 앉은 리용호는 A4용지에 적힌 입장문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리용호는 "미국이 유엔 제재의 일부, 민수 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제재를 해제하면 우리는 영변의 모든 핵물질 생산 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 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의 공동 작업으로 영구적으로 폐기한다(고 제안했다)"면서 "이것은 조⋅미 양국 사이의 현 신뢰 수준을 놓고 볼 때 현 단계에 우리가 내딛을 수 있는 가장 큰 보폭의 비핵화 조치"라고 말했다.

이어 "회담 과정에 미국 측은 영변 지구 핵시설 폐기 조치 외에 한 가지를 더 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다. 미국이 우리의 제안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며 회담 결렬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그는 또 "우리가 제안한 것보다 더 좋은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는 건지 이 자리에서 말하기 힘들다"며 "이런 기회마저 다시 오기 힘들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이런 원칙적 입장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준비해온 입장 자료를 모두 읽고 리용호와 최선희가 일어 섰다. 리용호가 사전에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기자들의 질문이 쇄도했다.

북한 리용호 외무상이 1일 새벽(현지시각) 2차 미북 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된 데 대한 입장 등을 밝혔다. 리영호의 입장 발표 후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연합뉴스
북한 리용호 외무상이 1일 새벽(현지시각) 2차 미북 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된 데 대한 입장 등을 밝혔다. 리영호의 입장 발표 후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연합뉴스
최선희가 답변에 나섰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어떻게 되느냐’라는 질문에 최선희는 "오늘 회담에 대한 질문만 받겠다"고 했다. ‘북측이 해제를 요구한 민생관련 제재는 무엇을 말하느냐’는 질문엔 "2016년부터 취한 대조선 결의 중 2270호와 2375호 등 다섯 개다. 이 가운데서도 100%가 아니고 여기에서 민생과 관련된 부분만 제재를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고 답했다. 최선희는 이 답을 하는 과정에서 북측이 미국에 해제를 요구한 유엔 제재 결의안 5건을 설명하다 결의안 번호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멈칫거리기도 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제안한 것은 영변 핵단지 전체에 대한 영구적 폐기다. 여기에서 실행할 때에는 미국 핵전문가들이 와서 입회하게끔 돼 있다"고 말했다. ‘영변 이외의 핵시설은 다음 단계(next step)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엔 답하지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는 질문엔 "우리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미국식 계산법에 대해서 좀 이해가 잘 가지 않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그는 "지난 시기 있어보지도 못한 영변 핵단지를 통째로 폐기하겠다는 제안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민수용 제재 결의의 부분적 해제가 어렵다는 미국의 반응을 보면서 우리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앞으로 조미 거래에 대해 의욕을 잃지 않으실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도 했다.

최선희는 이 답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질문을 받지 않았다. 돌아선 최선희의 등으로 ‘핵리스트 제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무엇이냐’ ‘오토 웜비어 사건과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 지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의 질문이 꽂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북한 경호원들이 최선희를 쫓아가던 기자들을 막아섰다. 리용호와 최선희는 방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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