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아침, 정장 차림에 하나같이 모자를 갖춰 쓴 여성들이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출근을 한다. ‘오피스 걸’이다. ‘오피스 걸’의 사전적 정의는 글자 그대로 타이핑이나 전화 교환 등의 단순한 사무와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일컫는다.
1929년의 주가 폭락과 함께 시작된 미국의 대공황은 기업 도산, 물가 폭락, 대량 실업을 비롯한 경제의 마비 상태로 10년 이상 지속됐다. '오피스 걸'은 이 시기에 눈에 띄게 늘어났다. 가사 노동에 종사하던 여성들도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고,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남성들이 꺼리는 단순 업무에 훨씬 낮은 임금으로 여성들을 고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태생으로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욕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낸 화가 라파엘 소이어(Raphael Soyer ·1899~1987)는 이처럼 암울했던 경제 공황기의 뉴욕 풍경을 사실적으로 담아내 '사회적 사실주의' 작가로 불린다. 하지만 그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추상화가 대세였고, 사실주의 회화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졌다. 미국의 추상화를 이끌었던 화가 잭슨 폴락은 소이어에게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시절에 이런 그림을 그리다니 요즘 사람이 아니다"라는 비난을 하기도 했다.
온통 회갈색의 음울한 도시 풍경과 퀭한 눈빛의 수척한 남자를 뒤로한 채 사무실로 향하는 한 ‘오피스 걸’이 그림 밖의 우리를 바라본다. 밝은 옷을 입고, 예쁜 분홍빛의 코르사주를 달고, 화장을 공들여 했지만, 그녀의 표정도 별 감정이 없이 퀭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리 비행기가 날아도 피로하기만 한 도시민의 입장에서 소이어의 그림이야말로 요즘 그림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