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 빠진 6·25 종전선언이라니, 우리는 나라도 아닌가

조선일보
입력 2019.02.26 03:20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25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릴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이 들어갈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했다. 김 대변인은 "한·중, 미·중, 남북은 사실상 종전선언을 했으니 남은 것은 북한과 미국"이라며 종전선언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종전선언을 성사시키기 위해 미국을 설득해 왔다.

지금이 북핵이 폐기되는 수순으로 가는 과정이라면 종전선언은 한반도의 적대 상태 종식을 상징하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김정은·트럼프 2차 회담은 1차 싱가포르 때와는 달리 핵무기, 우라늄 농축 시설 신고·검증 등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에 합의하고 남·북·미가 함께 종전선언에 서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청와대가 이날 "북한·미국만의 종전선언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밝힌 사실이다. 6·25 남침을 당해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국군이 12만명을 넘는다. 부상을 입고 평생 불구가 된 국군은 그 몇 배다. 민간인 희생자는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전 국토가 초토화됐다. 그런 피해를 입은 나라가 그 전쟁의 종전을 선언하는 당사자가 아니어도 좋다는 청와대의 말은 귀를 의심케 한다. 청와대가 대한민국을 나라도 아니라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1953년 당시 전쟁 피해만 입고 통일은 없는 휴전에 반대하다 정전협정까지 불참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상황이다. 세계 10위권 경제 국가인 대한민국이 엄청난 희생을 치렀던 전쟁의 당사자가 아니어도 그만이라는 청와대 발표는 발표자의 실수이기를 바랄 뿐이다.

종전선언이 있게 되면 정전 질서를 변화시키기 위한 논의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북한은 유엔군사령부와 북방한계선 폐지를 들고 나올 수 있다. 이런 논의가 미·북 간에 진행되고 한국이 제3자처럼 관객이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 가면 나중에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대한민국은 빠질 수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청와대 입장은 전혀 달랐다. 미·북 정상회담 때 종전선언 가능성에 대비해 문 대통령이 언제라도 회담 장소로 달려가기 위해 일정을 비워둔다고 할 정도였다. 이런 입장은 미국, 북한 모두가 잘 알 것이다. 종전선언 당사자도 한국은 당연히 포함되며 중국의 참여 여부만 논란이 됐다. 그런데 청와대가 갑자기 '한국은 빠져도 좋다'고 하는 것은 무슨 연유인지 미·북 합의로 한국은 제외됐고, 청와대가 이를 뒤늦게 알고 '빠져도 그만'이라고 먼저 발표하는 것 아닌가.

이미 한국은 북핵 협상에서 구경꾼이 된 지 오래다. 청와대 발표대로 종전선언에도 빠진다면 외교 국치(國恥)와 다름없다. 이런 마당에 문 대통령은 이날 "한반도 운명의 주인은 우리"라면서 "신한반도 체제를 주도적으로 준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허망할 뿐이다. 북핵 협상에서 제외된 처지를 가리기 위해 내용도 없는 '신한반도 체제'라는 말을 급조한 것 아닌가. 한국은 종전선언 당사자도 못 되고 한국민은 북한에 줄 돈만 대라는 것은 정부의 책임을 팽개치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한국 없는 종전선언은 절대 불가'라고 명백히 선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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