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비핵화 개념 조율이 협상 최우선 과제"

입력 2019.02.23 03:00

고위 관리, 전화 브리핑서 밝혀

미·북이 '비핵화'의 개념 정의를 협상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설정했다고 미 행정부 고위 관리가 21일(현지 시각) 밝혔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을 닷새 앞둔 이날 이 관리는 전화로 기자 브리핑을 갖고 비핵화의 정의(定義)와 관련한 질문에 "비핵화에 대한 공감대를 진전시키는 것이 이번 주 실무협상팀의 최우선 과제"라며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공동선언을 기초로 (비핵화의 정의를) 작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관리는 비핵화 협상의 주요 의제와 관련해 "비건 대표는 비핵화에 대한 공유된 인식 증진, 모든 대량살상무기(WMD) 및 미사일 프로그램 동결, (비핵화) 로드맵 작성 노력을 말했다"고 했다. 2차 정상회담을 불과 닷새 앞두고 '비핵화' 개념에 대한 합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외교가에선 "북한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조건으로 한반도에서 미군 핵전력을 완전히 빼라는 요구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미 고위 당국자 입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동결'이 의제로 언급된 것도 처음이다. 이번 회담이 핵·미사일 동결과 대북 제재 일부 완화를 교환하는 이른바 '스몰 딜'로 끝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북한은 최근 관영 매체 등을 통해 '조선반도 비핵화'에 대해 "우리의 핵 억제력을 없애는 것이기 전에 조선(북)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이 말하는 '조선반도 비핵화'에는 '미군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불가' 같은 조치도 포함됐고 미국으로선 수용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신년 기자회견에서 "(미국 전략자산은) 반드시 북한하고만 연계된 것이 아니라 동북아 전체 안정과 평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아마도 그것이 북·미 간의 대화 속에 무슨 상응 조건으로 연계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했었다. 그러나 이날 미 고위 관리의 언급을 볼 때 미·북 정상이 베트남에서 그 문제를 다룰 공산이 커졌다.

전성훈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비핵화'에 대한 정의는 북한 실무자가 협상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결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 문제를 놓고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미 고위 관리는 이날 'WMD 및 미사일 동결'을 언급하며 "비건 대표가 강연에서 제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건 대표는 당시 수차례에 걸쳐 "'비핵화'란 WMD의 전체 제거를 의미한다"고만 했고, '동결'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외교가에선 "WMD 제거가 아닌 동결이 미국의 이번 정상회담 목표로 떠오른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이 당국자가 '비핵화 로드맵 작성 노력'을 이번 회담의 의제 중 하나로 제시한 것을 두고, 미국이 'WMD 동결'을 비핵화의 '입구'로 제시한 후 나중에 '폐기'를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관리는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여는 문제와 관련해서도 즉답을 피하면서 "북한과 협의하고 있는 많은 이슈가 있다"고 했다. 연락사무소 개소 등 '관계 정상화'가 북한 비핵화에 대한 상응 조치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걸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이 당국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이 비핵화 방식으로 주장하는 '단계적 접근' 방식을 받아들인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단계적 접근 방식이 아니라 매우 신속하고 큼직하게 움직이려 한다"고 했다.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에 대해선 "북한의 선택을 아직 모르겠다"면서도 "그러나 우리가 북한과 상대하는 이유는 비핵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백악관은 이날 2차 정상회담과 관련한 보도 자료를 내고 "북한은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 시설 해체를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주도로 국제사회가 최대 압박 작전을 펼쳤고 모든 국가에 제재를 준수하라고 요구해왔다"고 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북한은 침묵하는데 미국 정부가 '협상 의제'와 '북한의 약속'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건 결국 외교적 제스처"라며 "아직은 의제 협상이 미국 뜻대로 풀리지 않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비건 대표와 북한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는 22일에도 오전과 오후 잇따라 만나 총 7시간여에 걸쳐 정상회담 의제에 대해 '마라톤 협상'을 벌였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폭스비즈니스 네트워크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비핵화에 진전이 있느냐'는 질문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 세계가 1989년 그 일과 같은 순간을 맞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일각에선 "김정은이 비핵화의 결단을 하지 않을 경우 동독이 무너진 것과 같은 체제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경고"라는 풀이도 나왔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정상회담에 회의적인 미국 내 분위기를 의식한 말이지만, 시점상 북한 역시 겨냥했다고 볼 수도 있다"고 했다.

한편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평화협정과 노벨 평화상으로 북한이 트럼프를 유혹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2차 정상회담에서 핵·미사일 시설 일부를 해체하겠다는 북한의 약속과 평화선언을 교환하는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이 신문에 "대통령이 동맹과 노벨 평화상 가능성을 맞바꿀지 모른다는 것은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는 사실 중 하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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