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입시 갈라파고스'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나라

조선일보
  •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입력 2019.02.23 03:07

    학종은 공정성에 치명타 입고 수능은 학생 능력 평가에 문제
    서울대생, 학업 성취도 보면 수시 출신이 정시보다 높아
    OECD 중 객관식 수능·내신 우리뿐… 국민적 기구로 입시 새 판 짜자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최상위권 사교육 현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드라마 열풍으로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은 공공의 적이 됐다. 관련 기사마다 '불공정한 학종 폐지' '공정한 수능 정시 확대' 댓글이 압도적으로 달린다. 대입제도 공론화와 숙명여고 사태까지 거치면서 학종은 치명적 단점을 드러냈다. 이쯤 되면 학종은 폐기 처분돼야 마땅하다.

    그런데 정작 대학에서는 가장 '공정'하다는 정시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하지 못한다. 아무리 여론이 들끓어도 객관적 데이터들이 수능 우위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대 조사에 의하면 2013~2017년 입학생 1만5498명의 대학 재학 중 학업 성취도 추이에서 수능으로 입학한 정시 입학생과 수능 최저 등급 요구 없는 수시 일반전형 입학생 간 성적 차이가 뚜렷했다. 인문사회계열의 정시 출신 평균 학점은 3.44인 반면 수능 최저 없는 수시 일반전형 출신 평균 학점은 3.70이다. 공학계열 정시 출신 평균 학점은 2.93, 수시 일반전형은 3.37이다. 지역균형선발전형 전체 평균 학점조차 3.38로 정시 전체 평균 3.22보다 높다.

    중도 탈락률도 정시 합격생이 학종 합격생보다 3배 가까이 높다. 서울대가 2014년 입학생을 분석한 결과 정시 합격자의 중도 탈락률은 11.5%, 학종 합격자들의 중도 탈락률은 4.1%였다. 이런 패턴은 서울대뿐만 아니다. 주요 명문대들은 모두 이와 비슷한 내부 통계를 갖고 있다.

    정시를 확대하면 강남 3구 학생들이 가장 유리해지는 것도 문제다. 2018학년도 전체 성적을 분석한 '서울대 정시모집 확대(안) 검토 결과 보고서'에 의하면 현행 27%의 정시 전형을 50%로 늘리면 강남 3구 합격생이 다른 지역에 비해 2배가량 더 증가한다. 사교육이 가장 치열한 곳이 강남 3구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학종보다 수능의 사교육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는 현재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대학에서의 수학 능력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회 균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도 정시 확대가 공정성을 더 확보하는 방법인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물론 학종의 내신 시험문제는 수능보다 훨씬 심각하다. 수능보다 더 치졸하고 비교육적이며, 시대 착오적이다. 미래의 인재를 이런 시험으로 길러낼 수는 없다.

    능력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는 수능과 공정하지 못한 학종, 둘 다 버려야 한다. 최소 10년의 로드맵을 그려 공정하면서도 시대가 요구하는 역량을 평가하는 대입의 새 판을 짜야 한다.

    우리나라의 대입제도가 얼마나 정체돼 있고 후진적인지는 일본과 비교해도 드러난다. 교육에 있어선 좀처럼 구태를 벗지 못한다는 일본조차 지난 2013년 입시 문제를 논·서술 위주의 주관식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하고, 그 롤모델로 전 과목 논·서술 대입인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 자국어판을 공교육에 도입했다. 입시와 내신이 둘 다 객관식 상대평가인 나라는 OECD 36개국 중 이제 한국밖에 남지 않았다. 교육의 갈라파고스를 만들어 놓고 아이들에게 미래를 준비하라는 게 지금 한국 교육의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 주관식 평가를 도입하려고 하면 방향성엔 동의할지라도 공정성, 신뢰성 등의 문제를 들어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일본 역시 6년 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일본 교육 당국에 어떻게 극복했느냐 물으니,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국민적 자문 기구를 구성한 게 주효했다고 한다. 일본 IB 자문위원회의 면면을 보고 국민이 수긍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선 위원장을 맡은 사람이 후지사키 이치로 전 주미 대사였다. 그의 모친은 이토 히로부미의 증손이다. 우리에겐 일본 식민의 앞잡이로 인식돼 있지만, 일본에서 이토 히로부미는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이토 가문에서 위원장을 맡자 도쿄대, 교토대, 게이오대, 와세다대의 총장·부총장 등이 위원으로 들어왔다. 경단련과 소니 등 재계도 동참했다. 공교육 개혁의 롤모델을 만들어보자는 데 의기투합해 정계, 재계, 학계, 관계가 총출동한 것이다. 입시 개혁도 교육부 차원이 아닌 국무회의 결정으로 발표했다. 그렇게 공을 들여 국민의 불안과 불신을 극복해 나갔다. 일본은 로드맵에 따라 오는 2020년 입시부터 논·서술 주관식 시험이 도입된다. 2020년 입시의 변화는 최종점이 아니라 본격적인 교육 개혁의 시작임을 알릴 뿐이라고 일본인들은 자신만만해한다. 턱밑까지 따라붙었던 일본과의 격차가 다시 벌어지고 있다는 불길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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