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한국 대치동과 미국 대치동

입력 2019.02.22 03:14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최근 한국에서 화제가 된 사교육 소재 드라마에는 미국 버지니아 페어팩스 카운티 출신의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 선생'이 나온다. 그러면서 드라마는 페어팩스를 "대치동 못지않게 열성적인 학부모가 많은 곳"이라고 소개한다.

미국 워싱턴 인근의 교민이나 주재원이 많이 사는 곳이 바로 '미국의 대치동'이라고 하는 페어팩스다. 드라마의 묘사는 과장됐지만 세계 정치의 중심인 워싱턴에 인접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외교관, 변호사, 로비스트, 기업인 등이 살고 있어 교육열이 높은 곳은 맞는다. 등교 전 2시간 동안 수학 공부를 하고 스쿨버스를 탄다는 인도 학생과, 매일 책을 한 권씩 읽는 백인 학생이 함께 경쟁한다. 한국의 맹모(孟母)들도 '중국 타이거맘'의 교육열 앞에선 주눅이 드는 일이 많다. 전 세계 학부모들이 저마다의 교육 방식으로 경쟁하는 곳이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의 대치동엔 결정적 차이가 있다. 바로 경쟁을 대하는 방식이다. 한국의 대치동은 평등을 강조하는 공교육 때문에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사교육을 상징한다. 한국에서 학생의 경쟁력 차이는 부모의 재력에 바탕을 둔 사교육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미국은 초등학생 때부터 경쟁을 인정하고 학교와 학생의 우열을 나눈다. 각 학교는 외부 기관이 평가해 1등급(못함)부터 10등급(잘함)까지 수준을 나눈다. 이 때문에 학군이 바뀌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집값이 상당히 차이 난다. 학생들도 각종 테스트를 바탕으로 초등 3학년부터 상위 약 10~20% 학생을 대상으로 우등반을 따로 편성한다. 우등반에 편성되면 거의 매주 테스트를 하고 밤 10시까지 숙제를 해야 할 정도로 과제를 내준다. 고등학교는 과학고 등을 통해 영재 교육을 실시한다.

초등학생이 아예 중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경우도 있다. 우등반이 아니더라도 수학과 과학 등에 관심 있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선행 학습을 할 수 있다. 미국 대치동은 한국 사교육 시장에만 있는 선행 학습을 공교육으로 상당 부분 흡수했다. 이를 위해 페어팩스는 지역 예산의 약 절반을 교육에 쏟아붓고 있다. 학교가 살아있으니 아이들 생활의 중심은 학원이 아니라 학교가 된다.

물론 미국 시스템을 그대로 우리나라에 도입했다가는 우등반을 위한 사교육이 폭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아무리 공교육에서 평등을 강조해도 경쟁에서 이기려는 학부모와 학생의 욕망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미국 대치동은 학교가 아이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기왕 경쟁하려면 학원이 아니라 학교에서 경쟁하는 것이 낫다. 그래야 학부모 부담이 줄어들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좀 더 균형 잡인 교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가 살아야 학생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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