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칼럼] YS공항, DJ공항, 그리고 3개의 문재인 공항

조선일보
  • 박정훈 논설실장
    입력 2019.02.22 03:17

    미국 대통령 이름은 항공모함에 새겨지고 한국 대통령 이름은 부실 공항에 남는다
    이러다 '문재인 공항'이 3개나 생길 판이다

    박정훈 논설실장
    박정훈 논설실장

    우리 돈으로 1조3000억원을 들여 지었는데 단돈 1300만원에 '땡처리'된 공항이 있다. 3년 전 스페인에서 있었던 일이다. 스페인 중부의 시우다드 레알 국제공항이 경매에 나와 1만유로에 낙찰됐다는 뉴스가 외신을 타고 전해졌다. 연간 1000만명 처리 능력을 갖춘 최첨단 공항이었다. 호화롭게 지어 놓았지만 국제선을 한 편도 유치하지 못해 개항 4년 만에 파산한 것이었다.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마드리드 공항이 있어 애초부터 채산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런데도 좌파가 장악한 시(市) 당국이 밀어붙여 황당한 실패극을 자초했다. 우매한 정치가 천문학적 세금을 말아먹은 황당한 사례다.

    한국에도 해외 토픽에 오른 공항이 있다. 2007년 AFP통신은 '세계 10대 황당 뉴스'에 울진공항을 올렸다. "1300억원짜리 공항에 취항하려는 항공사가 없다"는 이유였다. 울진공항 역시 애당초 지어선 안 될 공항이었다. 수요 조사를 해보니 이용객이 하루 50명뿐일 것이란 예상치가 나왔다. 그러건 말건 정치 논리에 따라 추진됐고 결국 세금만 날린 채 문을 닫고 말았다. 당시 사업을 주도한 인물이 김대중 정부의 초대 비서실장 김중권씨였다. 그래서 울진공항은 일명 '김중권 공항'으로 불렸다.

    한국의 공항엔 권력자의 별칭이 붙은 곳이 많다. 청주공항은 '노태우 공항'으로 불린다. 그가 충청권 선거 공약으로 내걸어 추진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양양공항은 '김영삼 공항', 무안공항은 '김대중 공항'으로 일컬어진다. 실세 정치인 이름이 붙은 곳도 있다. 예천공항은 '유학성 공항', 김제공항은 '정동영 공항'으로 통했다. 무안공항은 '한화갑 공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이 권력의 힘으로 밀어붙인 덕에 도저히 생길 수 없는 공항이 생겼다는 뜻이다.

    결코 명예로운 이름은 아니다. 이 공항들이 다 세금 퍼먹는 골칫덩어리가 됐기 때문이다. '노태우 공항'은 5년간 200억원 가까운 적자를 냈다. '김영삼 공항'은 몇 달간 항공기가 단 한 편도 못 뜨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BBC방송이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유령공항"으로 소개한 적도 있다. '김대중 공항'은 고추 말리는 공항으로 유명세를 탔다. 텅 빈 활주로에 주민들이 고추를 펴놓은 장면이 화제가 됐다. '유학성 공항'은 승객이 없어 폐쇄됐고, '정동영 공항'은 사업이 백지화돼 배추밭으로 변했다. 저마다 국민 돈 수백억, 수천억원을 말아먹은 세금 좀비가 됐다.

    애초부터 예정된 결과였다. 한국은 공항을 많이 지을 수 없는 나라다. 좁은 땅에 철도·도로가 거미줄처럼 연결돼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다. 그런데 공항은 15개나 있다. 항공 여행이 일상적인 미국보다 국토 면적당 공항 수가 3.4배 많다. 인구 500만명의 호남에만 4개 공항이 자동차로 1~2시간 거리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경제성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권력자들이 오로지 정치 공학적 계산으로 밀어붙였다. 대선이 치러질 때마다 공항이 한두 개씩 생겼다. 지난 20여년 사이 생긴 공항은 단 하나 예외 없이 '정치공항'이다.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부실 덩어리 공항에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올렸다.

    그런 오명을 피했던 것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두 사람 다 동남권 신공항을 선거 공약으로 걸었지만 집권 후 백지화시켰다. 가덕도에 신공항을 지으면 사업비만 10조원이 든다고 한다. 아무리 표(票)가 급해도 밑 빠진 독에 10조원을 퍼부을 '배짱'이 두 사람에겐 없었던 모양이다. PK·TK 지역이 첨예하게 맞붙었는데 어느 한쪽 손을 들어주기도 곤란했을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또 하나의 부실 덩어리가 생기는 일은 막았다. '이명박 공항' '박근혜 공항'을 만들진 않았다.

    그렇게 사그라든 동남권 신공항의 화약고에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불을 질렀다. PK 지지도가 급락하자 신공항 카드를 꺼내 들려 하고 있다. 돌아가는 움직임을 보면 PK·TK에 각각 하나씩 공항을 허가해줄 모양이다. 그러면 두 지역 다 만족시킬 수 있다는 계산일 것이다. 한 개로도 재정이 거덜날 판인데 '1+1' 패키지로 해줄 수 있다는 배포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나라 살림이야 어떻게 되든 선거는 꼭 이기겠다는 본심을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이 정부는 이미 새만금공항을 타당성 조사 없이 허가해줬다. 여기에다 PK·TK 신공항이 추가되면 '문재인 공항'이 세 개 생기게 된다. 그토록 토건(土建)·적폐라고 비난하던 전임 정부도 자제하던 일을 서슴없이 해치우고 있다.

    미국 대통령의 이름은 항공모함에 새겨진다. 레이건호, 포드호, 부시호가 바다를 누비면서 미국의 패권을 지키고 있다. 한국 대통령 이름은 적자투성이 공항에 남는다. 후대 사람들은 세금 빨아먹는 부실 공항을 볼 때마다 그곳에 새겨진 권력자 이름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분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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