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서 가장 늦게 은퇴하는 한국"…육체노동 정년 연장 근거는?

입력 2019.02.21 15:01 | 수정 2019.02.21 16:38

대법원, 육체노동 정년 판례 30년 만에 5살 연장
평균 여명, 남성 12.7세, 여성 10.4세 늘어나
경제 규모 커지고, 사회보장법도 65세 기준 정비
"63세로"·"60세 이상이라고만 해야" 별개 의견도

김명수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이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를 위해 법정에 앉아있다. /뉴시스
대법원이 일반 육체노동자의 정년에 대한 판례를 바꾼 것은 30년 만이다. 기존에 만 55세였던 것을 지난 1989년 만 60세로 연장한 뒤, 30년 만에 다시 5세가 늘어 만 65세로 봐야한다는 취지의 결론을 내렸다.

◇"사회·경제적 구조와 생활여건 바뀌어"
대법원은 육체노동의 가동연한은 평균연령, 소득, 경제규모, 당사자의 환경 등 '경험칙'에 근거해 만 60세로 판단해왔다. 하지만 "경험칙상 가동연한을 만 60세로 봐온 견해는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며 "이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만 65세까지도 가동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합당하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사회적·경제적 구조와 생활여건이 급속하게 발전했다는 것이다. 지난 1989년 판단 당시 우리 국민의 평균 여명은 남성 67세, 여성 75.3세였다. 반면 2015년에는 남성 79세, 여성 85.2세로 늘었고, 2017년을 기준으로 하면 남성 79.7세, 여성 85.7세다. 약 30년 사이 각각 10년 넘게 늘었다. 경제 규모도 커졌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89년 당시 6516달러에서 2015년 2만7000달러, 2018년 3만달러로 늘었다.

관련 법과 제도가 정비된 것도 이 같은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각종 사회보장 법령에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생계를 보장해야 하는 고령자(혹은 노인)'를 65세 이상으로 정하고 있는 것도 근거가 됐다. 지난 2013년 6월 개정된 고용보험법은 65세 이후 신규 취업하거나 자영업에 나서는 경우 적용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국민연금법 등도 연금수급개시연령을 늦추는 내용으로 개정돼 2033년부터는 65세다.

우리 국민의 실질 은퇴연령은 남성 72세, 여성 72.2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운데 가장 높다. 박상옥·김선수 대법관은 보충 의견을 통해 "우리나라의 실질 은퇴연령이 높은 데에는 기대여명이 현저히 증가했고, 기대여명 못지 않게 건강수명도 높은 수준"이라며 "일할 수 있는 신체적 여건이 뒷받침되는 가운데 노후부양에 관한 인식·인구구조·사회제도의 변화 등으로 법정 정년 이후에도 경제활동에 나아갈 필요가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1일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하기 위해 대법원 대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대법관 12명 모두 '상향'에는 동의…별개의견도 2개
이번 사안의 심리에는 안철상·김상환 대법관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이 참여했다. 12명의 대법관 모두가 '가동연한을 60세 이상으로 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다만 조희대·이동원 대법관과 김재형 대법관은 별개 의견을 냈다. 조희대·이동원 대법관은 "제반 사정에 비춰 보더라도 육체노동의 경험칙상 가동연한은 만 63세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두 대법관은 "가동연한을 만 55세에서 만 60세로 5세 상향 조정하는 것과 만 60세에서 만 65세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 질적으로 같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통계청 기준 건강수명(기대수명 중 질병이나 부상으로 고통받은 기간을 제외한 것)은 2012년 65.7세였지만, 2016년에는 64.9세로 감소하는 추세라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김재형 대법관은 "육체노동의 경험칙상 가동연한을 만 65세 등 일률적으로 특정 연령으로 단정해 선언하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고 했다. 김 대법관은 "경험적 사실은 그때그때 사회상황을 반영하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속성이 있다"며 "사람이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예측하는 것은 인식과 경험의 한계를 벗어난다. 대법원은 가동연한의 폭을 제시하는 데 그쳐야 한다"고 했다. 사실심(하급심)과 법률심(상고심)의 권한 분배 측면에서 보더라도 대법원이 가동연한에 관해 포괄적인 법리를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특정 연령으로 단정해 선언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게 김 대법관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박상옥·김선수 대법관은 보충의견에서 "가동연한을 ‘몇 세 이상’이라고만 선언하는 것보다 ‘그 이상의 어느 특정 연령’이라고 선언하는 것이 법적 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더 적절하다"며 "가동연한에 대한 판단이 하급심마다 엇갈려 혼선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육체노동의 경험칙상 가동연한에 관해 하급심별로 판단이 엇갈려 혼선을 빚고 있었다"며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새로운 경험칙에 따라 가동연한을 만 65세로 인정해야 한다고 선언해, 논란을 종식시킨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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