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처·법무부도 정권 바뀌자마자 '사표 내라' 메시지"

조선일보
  • 이민석 기자
    입력 2019.02.21 03:08

    前독립기념관장 "靑의 뜻이라며… 다른 곳도 다 그런다고 말해"
    보훈복지의료공단·법률구조공단 前이사장도 "직원 동원해 압박"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청와대 인사수석실이 관여했다는 진술이 나오면서 다른 부처에서도 '블랙리스트'가 작성·실행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임기 만료 전 공공기관에서 물러난 일부 인사는 20일 본지 인터뷰에서 "정권이 바뀌자마자 정부에서 '그만두라'는 메시지를 직간접으로 보냈다"고 했다. 환경부 문건 의혹을 처음 제기했던 청와대 특별감찰반 출신 김태우 전 수사관은 "청와대 특감반이 자체적으로 전국 공공기관장과 임원 명단을 정리해 놓고 전 정부 인사만 별도 관리했다"고 했다.

    "정권 바뀌자 '사표 쓰라' 종용"

    국가보훈처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6~7월 박근혜 정부 당시 임명됐던 보훈처 산하 기관장들에게 '사퇴 압박'을 넣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봉길 의사 장손녀인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은 "국가보훈처 A 국장이 2017년 7월 'BH(청와대) 뜻'이라며 '사표를 낼지, 안 낼지 지금 결정하고 일주일 안에 내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2014년 9월 취임한 윤 관장은 당시 임기가 두 달여 남은 때였고, 국가공무원법상 결격 사유도 없었다.

    靑 이어 與도 “환경부 문건은 체크리스트” - 더불어민주당 이해찬(왼쪽부터)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 박주민 최고위원이 20일 국회에서 열린 당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해 자리에 앉고 있다. 홍 원내대표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불법적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합법적 체크리스트라고 한다”고 말했다.
    靑 이어 與도 “환경부 문건은 체크리스트” - 더불어민주당 이해찬(왼쪽부터)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 박주민 최고위원이 20일 국회에서 열린 당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해 자리에 앉고 있다. 홍 원내대표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불법적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합법적 체크리스트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덕훈 기자

    윤 전 관장은 피우진 보훈처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유를 물었지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 다른 곳도 다 그렇게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피 처장은 2017년 8월 국회에 출석해 사표 종용 사실을 시인했다. 피 처장과 A 국장은 권한 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하지만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보훈처가 사표를 종용하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오히려 (윤 전 관장의) 사퇴를 말렸다"고 말했다.

    임기를 7개월 앞두고 작년 8월 그만둔 김옥이 전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도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보훈처에서 '그만두라'는 메시지가 왔다"며 "보훈처 국장·과장이 세 차례에 걸쳐 원주 본사를 찾아왔다"고 했다. 그는 계속된 강요에 '내 뜻으로 그만두겠다'며 사직했다. 김 전 이사장은 "보수 정부의 '블랙리스트' 인사를 그렇게 비판했던 이번 정부가 같은 행위를 반복한 것"이라고 했다.

    임기(3년)를 1년가량 앞두고 작년 4월 말 사임한 이헌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도 현 정권 외압 때문에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무부가 직접 사표를 쓰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법무부에서 사표 안 쓰느냐고 하더라'고 했다"며 "법무부가 공단 직원들도 동원해 사퇴를 압박했다"고 했다. 자유한국당은 "산업통상자원부가 한국전력 산하 발전사 4곳 사장에게 사퇴를 종용해 일괄 사표를 내게 만들었다"고도 했다. 백운규 전 산자부 장관은 이런 의혹으로 고발당한 상태다.

    "靑 자체 '블랙리스트' 의혹도"

    한편 환경부 블랙리스트와 관련,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작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청와대 지침에 따라 산하기관장에게 사표 제출을 종용한 사실을 시인하는 듯한 발언을 한 사실도 드러났다. 작년 9월 28일 환노위 전체회의 속기록에 따르면,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이 "전병성 환경공단 이사장에게 사표를 내라고 한 거냐, 본인이 스스로 낸 거냐"고 묻자, 김 장관은 "사표를 내시도록 부탁을 드린 것 같은데요. 그분의 임기는 아직 안 지나시고"라고 답했다. 이에 김 의원이 "장관님이 직접 사표 내라고 하셨느냐"고 묻자, 김 전 장관은 "직접은 아니고 아마 (환경부) 기조실장이 하셨다"고 했다.

    이와 관련, 환경부 등 부처뿐만 아니라 청와대가 자체적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해왔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김태우 전 수사관은 "이인걸 특감반장 지시로 특감반원들이 전국 330곳 공공기관장 및 감사(監事)들의 재직 여부, 임기 등이 적힌 리스트를 엑셀 파일로 작성했다"며 "기관장들이 전 정부 당시 임명된 사람인지, 정치 성향이 어떤지 등을 함께 조사해 리스트에 포함했다"고 했다. 또 "이 특감반장은 '(현 정부 인사들을 위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줘야 한다'며 사실상 전 정부 인사들에 대한 표적 감사를 지시했다"고 했다. 그는 "특감반에서 검찰에 복귀하기 직전까지 특감반원 전원과 특감반 서무 컴퓨터에 이 리스트가 다 저장돼 있었다"고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김 전 수사관의 검찰 복귀 직후 특감반 내부 컴퓨터를 모두 포맷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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