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칼럼]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잃었을 때 일본의 선택

입력 2019.02.20 03:17

지금 일본의 선택엔 '親美'밖에 없다
東海에서 이 노선이 한국과 거칠게 충돌한다
정권 마음에 들지 않을 뿐 해법은 여러 가지다

선우정 부국장 겸 사회부장
선우정 부국장 겸 사회부장
지금 동북아에서 일본의 위치는 19세기 말과 비슷하다. 중국을 꺾고 만주를 넘봤다가 러시아가 주도한 삼국간섭으로 한반도 영향력까지 상실한 시기를 말한다. 이전까지 일본의 국책(國策)엔 아시아가 있었다. 서구 제국주의와 거리를 두고 자주적인 힘으로 일본 중심의 아시아 연대를 이룬다는 것이다. 일본 '정통 보수'로 볼 수 있는 대(大)아시아주의 노선은 훗날 '대동아공영권'이란 침략 노선으로 부활할 때까지 일본의 국책에서 배제됐다.

삼국간섭은 '서구 열강의 도움 없이 일본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외교력의 한계와 '탈아입구(脫亞入歐·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로 들어감)'의 당위성을 통감한 것이다. 일본은 러시아와 협상을 벌였다. 러시아는 만주의 권익을 갖고 일본은 한반도의 권익을 갖겠다는 만한 교환론, 평양 인근 39도 선(線)에서 한반도를 나눠 먹는 남북 분할론을 그들끼리 논의했다. 하지만 진짜 목표는 서구 열강의 최강자였던 영국과의 동맹이었다. 미국에도 접근해 영일동맹에 준하는 관계를 만들었다. 영미의 압력으로 삼국간섭의 두 축인 프랑스와 독일의 발을 묶은 뒤 일본은 고립된 러시아를 때렸다.

일본이 전쟁을 통해 한반도에 다시 들어오는 데 7~8년이 걸렸다.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광무(光武)'란 독자 연호를 쓰던 시기다. 나라엔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황실은 일본과 친일 엘리트의 견제 없이 단꿈처럼 전제 권력을 행사했다. 이때 일본에서 활동한 프랑스 풍자화가 조르주 비고는 그런 황실을 눈먼 선비로 묘사했다. 바깥세상에 눈을 감고 산다는 풍자다. 프랑스 화가조차 훤히 보는 세상을 황제가 못 본다는 조롱이 담겨 있다.

2010년과 2012년 센카쿠 분쟁의 충격은 일본의 국책이 외부의 힘을 통해 '탈아입구' 쪽으로 움직였다는 점에서 삼국간섭의 충격과 비슷하다. 이전까지 일본의 국책엔 아시아 연대가 있었다. 중국, 한국과 손을 잡고 아시아 공동의 번영을 이루자는 것이다. 그 시기 집권한 민주당 정권은 아시아 접근을 위해 미국과 거리를 두는 자주 노선을 전개했다. 하지만 센카쿠 분쟁으로 단숨에 좌절했다. 중국은 일본이 상대할 수 없을 만큼 커졌고 커진 만큼 거칠어졌다. 한국은 과거사 문제로 협공하면서 한반도에서 일본의 발언권을 배제했다. 자주 노선과 아시아 연대의 실익과 실효성은 그때 끝났다. 센카쿠 충격은 '미국의 도움 없이 일본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삼국간섭 때 통감한 그대로다. 해법도 그대로다.

일본인을 만날 때마다 묻는다. 미국이 북핵(北核)을 사실상 용인한다면 일본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대부분 전제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미국이 용인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만약을 가정해 억지로 답을 구하면 "그래도 미국에 의지할 것"이라고 답한다. 미 본토와 같은 보호를 받기 위해 미국에 더욱 밀착할 것이라고 한다. 일본인을 접하는 범위가 넓지 않은 탓인지 "일본이 미·일 동맹을 흔들면서 독자 핵을 개발할 것"이라고 답한 경우는 없다. 일본인의 핵무기에 대한 거부감은 외부에서 느끼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아베 총리도 이 장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 지금 일본의 선택엔 '친미(親美)'밖에 없다.

최근 동해에서 일어나는 한·일 갈등도 이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대북 제재 감시 활동 중이던 일본 초계기가 북한 어선을 구조하던 한국 군함에 과잉 접근한 의도는 분명하다. 동해는 그들에게 '일본해'다. 한국의 대북 제재 위반 행위를 미국 대신 이 잡듯 잡아내 '일본해'를 친북(親北)의 바다로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동해는 남북만의 바다가 아니다. 독도를 포함해 일본이 동해에서 긴장을 높이는 방법은 수없이 많다. 일본은 '친미'라는 안보 노선을 거칠게 표현하고 있다. 힘을 통해 한반도 발언권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이것이 동해에서 '친북' 노선과 충돌한다. 과거사 문제가 기름을 뿌린다.

지금 한국은 눈먼 선비가 아니다. 여러 방법으로 일본을 극복할 수 있다. 과거사 문제 제기를 자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게 싫다면 일본보다 미국에 더 밀착해 한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미국의 중재를 끌어내는 것이다. 이것도 싫다면 군사 대국인 일본을 방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국방력을 강화해야 한다. 현 정권은 무엇을 택할까. 이 역시 싫다면 북한과 연대해 북핵으로 일본을 견제하는 극단적 모험을 가정할 수 있다. 한·미 동맹은 파탄 날 것이다. 이른바 '종북좌파'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반일(反日)의 종착점은 여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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