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사회] 서기호가 윤성원을 탄핵하자고 하는 세상

입력 2019.02.20 03:13

'가카의 빅엿' 글 올렸던 판사, 탄핵 판사 명단 발표 주도
'우수 법관' 꼽혔던 법원장은 사표… "거꾸로 간다"면서도 무력한 법원

최원규 사회부 차장
최원규 사회부 차장
요즘 '사법 적폐 청산'을 목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 중 한 명이 서기호 변호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사법 농단 TF 탄핵분과장인 그는 지난달 31일 탄핵 소추해야 할 판사 10명의 명단을 추가로 발표했다. 지난 9일엔 서울 도심에서 열린 사법 농단 세력 규탄 집회에도 나왔다. 그런데 그의 언행을 보면서 어딘지 불편하고 거북하다는 법조인이 적지 않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의 '과거'가 오버랩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판사 시절 "2900만원을 빌려줬는데 못 받았으니 받게 해달라"는 민사 사건에서 글자 수 72자, 단 한 문장짜리 판결문을 써 논란이 됐던 적이 있다. 소송 당사자들은 판결 이유를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2011년엔 페이스북에 이명박 대통령을 조롱하는 '가카의 빅엿'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10년간 근무 평정을 받은 법관 중 최하위권 성적을 받아 2012년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한 그는 정의당 국회의원이 됐다. 그가 얼마나 정의로웠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판사로서 불성실했고, 금기시되는 정파성을 드러낸 건 분명하다. 상당수 법조인은 대놓고 말하진 못하지만 그에게 사법 적폐 청산을 외칠 자격이 있느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서 변호사가 탄핵 대상 판사 명단을 발표한 직후 명단에 포함된 윤성원 인천지법원장은 사표를 던졌다. 법원장에 임명된 지 나흘 만이었다. "민변의 탄핵 대상 발표를 보고 그 진위를 떠나 인천지법 가족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 것이란 생각이 들어 사직서를 냈다"고 했다. 그는 2012년 광주변호사회의 법관 평가에서 '우수 친절 법관'으로 선정됐던 사람이다. 고위 법관 재산 신고 때 꼴찌를 여러 번 했을 정도로 청렴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가 사법 적폐로 몰려 사표를 던졌다는 소식에 "좌절감을 느꼈다"고 한 판사가 적지 않았다. '세상이 거꾸로 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윤 법원장도 잘못이 있다면 탄핵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민변 등이 발표한 탄핵 이유만 놓고 보면 그럴 사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으로 있으면서 지휘부 역할을 해 사법 농단에 결과적으로 가담했다는 게 전부다.

판사 탄핵은 최고 수준의 징계다.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 행위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보기 어려운 사안을 갖고 탄핵부터 하자고 했다. 죄가 되는지도 불분명한데 무기징역을 선고하자고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건 다른 의미의 폭력 아닌가. 판사가 탄핵 대상에 오르는 것은 평생 쌓아온 명예를 송두리째 잃는 것이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법조인들이 이렇게 쉽게 탄핵 운운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일이다.

순수성도 의심된다. 서 변호사는 탄핵 명단을 발표하면서 현 정권 실세인 김경수 경남지사를 댓글 조작 혐의로 법정 구속한 성창호 부장판사도 탄핵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성 부장판사를 "사법 적폐"라고 공격한 여권에 사실상 화답한 셈이다. 지난 9일 집회에선 "성창호는 양승태 키즈"라며 "양승태 구속에 충격받은 양승태 사단 판사들이 그에 대한 반감으로 김 지사에게 보복 판결을 내렸다"고 했다. 정파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막말이다.

이런 도(度)를 넘은 공격에도 법원은 지금 무력하다. "이건 아니다"라고 나서는 판사 하나 없다. 하긴 법관대표회의가 먼저 동료 판사 탄핵을 요구했으니 누굴 탓할 수 있겠나. 사법부의 한심하고 답답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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