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입] '시인 고은'을 위한, '시인 최영미'를 위한 변명

입력 2019.02.18 19:00


시인 고은을 위한 변명

고은 시인이 자신을 성추행 범인으로 지목한 최영미 시인을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졌다. 문학 담당 기자의 눈으로 이번 사건을 분석해보겠다.

◆시인 고은을 위한 변명

시인 고은을 옹호하려는 뜻이 아니다. 고은을 두둔할 생각도 없다.
이번 사태를 객관적이고 다면적으로 바라보자는 뜻이다. 나는 문학담당 기자를 오래 하면서 시인 고은을 여러 차례 만났다. 통음도 많이 했다. 먼저 고은 입장에서 고은의 행동을 생각해보겠다.

고은은 "시인이란 ‘불운’과 ‘퇴폐’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불운(不運)’이란 유복함의 반대말이다. 영토를 넓혀가는 제국의 황태자는 시인이 될 수 없지만, 망해버린 나라의 쫓겨 다니는 왕자는 시인이 될 수 있다. 재벌 3세는 절대 시인이 될 수 없지만, 한때 부잣집이었으나 지금은 완전 폐가(廢家)가 되다시피 영락해버린 집안의 막내아들은 시인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불운해야 시대적 ‘절규’와 ‘절창(絶唱)’이 나올 수 있다.

‘퇴폐’라는 것은 주지육림에 푹 빠져서 비윤리적 행동을 일삼는다는 국한된 뜻이 아니다. 시인 고은이 말하는 퇴폐는 차라리 ‘정신적 퇴폐’를 말한다. 여기서 정신적 퇴폐란 ‘작위적(作爲的) 일탈(逸脫)’을 뜻한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려면 제도적·규범적·윤리적 굴레를 벗어던져야 한다. 고은이 구들장을 곡괭이로 파고, 고은이 승려가 되려고 머리를 깎고, 고은이 반정부 시위를 하려고 피켓을 들고 종로5가에 나가고, 고은이 만나서는 안 될 어떤 여성을 만나고, 고은이 여러 사람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만일 그랬다면 (여기 언급된 일들은 사실 확인이 안 된 부분이 있음.), 그것은 ‘경계(境界)’와 ‘터부’에 대한 도전이다.

고은은 시인의 세계에 경계선이라는 울타리를 거부한다. 터부에 굴복하느니 차라리 펜을 꺾고 말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고은은 술이란 종교적이라고 했다. 시가 써지지 않는다고 고민하는 후배 시인에게도 고은은 말한다. "너는 술을 마시지 않아서 그렇다. 너에겐 술이 모자란다."

◆시인 최영미를 위한 변명

나는 시인 최영미를 인터뷰한 적도 있고, 그녀의 시 세계에 열광했던 팬이다. 시인 최영미는 1994년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전국적 유명 문인이 됐다. 이 시집은 폭력적 정치 현실에 맞섰던 투쟁의 1980년대를 보내고 90년대로 넘어온 청춘들이 어떻게 일상의 삶에 자리를 잡는 30대가 되어서 다시 한 번 굴절되어 가는지 그리고 있다.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수록 시들이 하나같이 서정적이고 도발적이었다. 이런 시 구절도 있다. ‘나는 컴퓨터와 ×하고 싶다.’ 당시 시인 최영미는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인기 시인이자 도발의 아이콘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겹치는 일이 있다. 최영미가 ‘나는 컴퓨터와 섹스하고 싶다’는 식으로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시어를 드러내면서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냈던 해가 지금부터 25년 전인 1994년이다. 그리고 술집에서 고은이 바지 지퍼를 내리는 장면을 최영미가 목격했다는 해 역시 1994년이다. 고은은 1933년생, 최영미는 1961년생이다. 고은이 성추행을 했다는 그해 1994년, 고은은 61세였고, 최영미는 33세였다.

최영미는 문단의 대선배이자 아버지뻘인 고은의 그러한 행동을, (법원이 최영미의 목격 증언을 사실로 받아들인 그대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추악(醜惡)함’과 ‘위선(僞善)’이라고 본 것 같다. 최영미는 고은을 ‘괴물’이라고 적시했다. 최영미가 쓴 시 ‘괴물’을 보면, 고은은 이렇게 묘사돼 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동생에게 빌린 (나의)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 ‘(그의 시는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똥물’

그래서 시인 최영미는 사건이 있은 지 20여 년이 지난 작년에 결심하게 된 것이다. 최영미는 방송에 출연해서 고은을 고발하기에 이른다. ‘괴물’이란 시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침묵하는 문인들’을 위한 변명

그런데 최영미는 ‘고은의 그러한 행태’를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을 원로 시인들이 침묵하고 있는 것에 대해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원로 문인들, 중견 문인들은, 고은과 최영미를 잘 알고 있는 그들은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을까.

먼저, 침묵하는 문인들은 이번 일을 ‘문학적 사건’이 아니라 ‘사회적 사건’으로 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일부 문인들은 고은은 ‘고은답고’, 최영미는 ‘영미답다’는 말도 한다. 최영미는 어느 시기부터 ‘문학 외적(外的)’인 영역에서 사회적 호응을 넓혀오고 있었다. 한때는 유명한 축구 해설가로 일했고, 한때는 유명 호텔에게 홍보 대사를 할 테니 방을 내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으로,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그 사이 올해 여든여섯 살 고은은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가 될 정도로 세계적 명성을 획득한 문단의 거목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거목이 쓰러졌다. 침묵하는 문인들이 본격적으로 입을 열기에는 다소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