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경쟁률 82대1, 3분내 마감… 대학 수강신청 뺨치는 '문센'

조선일보
  • 이혜운 기자
    입력 2019.02.16 03:00

    백화점·마트 문센 수강신청 전쟁

    김소영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북콘서트'를 듣고 있는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학생들.
    김소영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북콘서트'를 듣고 있는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학생들. / 롯데백화점
    "①모바일 대신 PC로 할 것 ②아이를 미리 가족 회원으로 등록해 놓을 것 ③목표 강좌를 미리 검색해 둘 것."

    인터넷에서 전해지는 대형마트·백화점 문화센터 수강신청 팁이다.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주요 포털사이트에서는 검색어 1~3위를 모두 '대형마트 문화센터'가 차지했다. 이날이 봄학기 수강신청일이기 때문이다.

    신청 사이트를 연 지 3분도 채 되지 않아 인터넷에는 "○○○ 수업 신청 실패했어요" "△△△는 대기가 몇 번인가요?" 등의 글이 올라왔다. 가장 인기 있는 강좌의 경쟁률은 82대1. 주요 강좌는 대부분 3분 안에 마감된다고 해서 '3분 컷'이라고도 한다. 그러다 보니 "대학교 때 수강신청도 이렇게 안 해봤다" "웬만한 가수 피케팅(피 튀기는 티케팅)'보다 더 힘들다" 등의 간증이 올라온다.

    국내 유통업체 문화센터는 1984년 동방프라자(현 신세계백화점)가 최초다. 2001년 백화점 셔틀버스가 금지되며 주춤했지만, 2000년대 후반 대형마트의 확산과 함께 다시 규모가 커졌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해 수강생은 30% 이상, 강좌수는 50% 이상 증가했다. 현대백화점도 2000년 한 해 누적 수강생은 15만명이었지만, 지난해에는 50만명까지 늘어났다.

    과거만 해도 문화센터는 중·고등학생을 둔 40~50대 부잣집 사모님들이 주요 고객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문화센터 수강 열풍은 영·유아를 둔 20~30대 엄마들과 싱글 직장인이 발원지다. 2000년대 후반 한 자릿수에 불과했던 남성 비율도 지난해 10%를 넘었고, 일부 수업의 경우에는 40%에 달하기도 한다.

    고 개만 돌려도 아이들 놀이방이 있고, 직장인 헬스장이 있으며, 주부들 요리 교실이 있는데 왜 '문화센터 수강신청 전쟁'이 벌어지는 것일까. 주요 백화점과 대형마트 6곳의 인기 강좌 60개를 분석했다.

    서울 이마트 성수점 문화센터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곡물을 이용해 감각을 키우는 '북이랑 놀이랑'을 수강하는 모습.
    서울 이마트 성수점 문화센터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곡물을 이용해 감각을 키우는 '북이랑 놀이랑'을 수강하는 모습. / 이마트
    우리 아이 '인싸' 코스

    치열한 신청 경쟁의 주무대는 대형마트 키즈 수업이다. 대형마트 3사의 인기 강좌 1위도, 전체 30개 중 20개 강좌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었다.

    이유는 아이들의 친구 관계가 '조리원→문화센터→어린이집'으로 이어지기 때문.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일부 적극적인 엄마들은 수강신청에 실패하면 자신의 아이들이 그룹 내 '인싸(인사이더)'에서도 멀어진다고 생각한다.

    지난 13일 이마트 문화센터에서 22개월 된 아이와 함께 '애기똥풀(자연 친화 재료로 놀기)' 수업을 듣던 A씨는 "조리원 동기에게 문화센터 강좌 정보를 들었다. 처음에는 수강신청에 실패해 대기 10번이었는데 다행히 자리가 나 참가하게 됐다"며 "일주일에 4번 문화센터에 온다. 여기에 오면 아이가 또래 친구들과도 놀고 집에서 지낼 때보다 훨씬 알차게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센터가 아이들이 놀아달라고 칭얼거리기 시작하는 6개월부터 어린이집 가기 전인 3세 사이, 또는 어린이집 신청에서 탈락한 아이들이 있는 가정의 '육아 필수 코스'인 셈이다.

    소위 '독박 육아'하는 엄마들에게는 유일한 외출 기회이기도 하다. 10개월 된 아이를 키우는 B씨는 "아침에 일어나서 잘 때까지 아이랑 단둘이 집에서 부대끼는 것 빼고는 할 일이 없다"며 "문화센터에 오면 수유실도 잘 돼 있고 끝나고 장을 봐 집에 가기도 편하다. 아이들도 문화센터에 와야 같이 놀 친구들도 만난다"고 말했다.

    유치원생 이상의 아이들에게 문화센터는 학원 역할도 한다. 신세계백화점의 '프리마돈나 발레' 수업은 강사의 제자가 국립발레단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소문이 나면서 아이에게 발레를 시켜보고 싶은 강남 엄마들이 몰렸다. 이마트는 다음 달 8일부터 아이들을 위한 코딩 교육 등 4차 산업 관련 강좌를 확대한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강남점 문화센터의 경우에는 연예인 부모라고 해도 대기 번호까지 받아가며 등록할 정도로 인기"라면서 "접수 시작과 함께 1000명이 넘는 인원이 동시 접속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동네 엄마들이 모두 모이다 보니 '문센룩'은 20~30대 아이 엄마들의 대표 패션 키워드가 되기도 한다. 문센룩이란, 문화센터에 갈 때 입는 편안하면서도 아이가 기죽지 않는 고급스러운 패션. 옷은 품이 넉넉하면서 소재는 고급스럽게, 가방은 쇼퍼백처럼 단순하고 크면서 고급 브랜드 제품으로 하는 게 기본이다.

    최근엔 '문센 대디'라는 말도 등장했다. 아빠들이 주말 근무 대신 유모차를 밀고 아이와 함께 문화센터로 출근하는 경우가 지난해보다 40%나 늘어났기 때문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최근 육아에 동참하려는 아빠들이 늘면서 '아빠와 함께하는 트니트니 목욕놀이' 등 관련 강좌를 지난해보다 30% 늘렸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서울 강서점 문화센터에서 미술 강의를 수강 중인 직장인 여성들.
    홈플러스 서울 강서점 문화센터에서 미술 강의를 수강 중인 직장인 여성들. / 홈플러스
    직장인들의 '워라밸' 장소

    백화점 문화센터는 싱글 직장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백화점 주요 3사의 인기 강좌 30개 중 성인 대상이 23개다.

    이들이 문화센터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성비'다. 대표적인 강좌가 요가·발레·필라테스 등 '헬스 프로그램'. 롯데백화점 1위 수업인 '직장인 요가'의 경우 가격이 3개월 과정(주 2회)에 22만원으로 시중 학원과 비교해 반값 이하로 저렴하다. 강사도 최고 수준. 현대백화점의 경우 유튜브 내 '스트레칭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강하나씨를 초빙한다. 직장인 김모(38)씨는 "스타 강사의 경우 시중 학원에서는 1회에 몇 만원 할 정도로 비싼데 백화점 문화센터에서는 저렴한 가격으로 같은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수강신청 기간이면 하던 일을 중단하고 집중한다"고 말했다.

    연예인 등 쉽게 접할 수 없는 유명 인사들의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현대백화점의 1위 수업은 플로리스트로 변신한 가수 브라이언이 하는 플라워 강좌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유명 미술평론가 이주헌씨가 진행하는 '미술관 투어 강좌'는 부산에서 올라와 듣는 고객도 있다"고 말했다. 주요 백화점들의 경우 도심에 위치해 직장인들의 접근성이 좋다는 이유도 있다. 이들은 고객으로 이어진다.

    이마트 관계자는 "지난해 봄학기 회원들의 고객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문화센터 회원들의 평균 객단가(1인당 평균 구매액)는 일반 고객 대비 80%가량 높았다"며 "1인당 구매 횟수 역시 일반 고객보다 2배 이상 많았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도 "일반 고객의 백화점 이용 횟수는 한 달 평균 1.2회지만 문화센터 등록 수강생은 한 달 평균 8차례 쇼핑을 해 6배가 넘는 이용 빈도를 보였다"며 "1년 동안 백화점에서 쓰는 액수가 2000만원이 넘는 VIP고객의 비중도 일반 고객보다 8배 높다"고 말했다.

    또한 온라인 구매 채널에 빼앗긴 젊은 층을 끌어오는 측면도 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취미 찾기' 바람이 불면서 퇴근 뒤 문화센터를 찾는 발걸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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