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의 뉴스 저격] "한국서 법보다 중요한 건 국민분노" "일본인은 칼로, 한국인은 혀로 싸워"

입력 2019.02.15 03:14

외국인이 본 한국, 한국인… 때로는 우리 자신보다 그들이 우리를 더 잘 안다

때로는 우리 자신보다 외국인들이 우리를 더 잘 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면서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거울에 한국인의 삶과 가치관, 의식구조를 비춘다. 최근엔 '한국, 한국인'이란 책을 낸 마이클 브린 전(前) 주한 외신기자클럽 회장이 그 작업을 했다. 1982년부터 한국에 머물며 촛불과 탄핵 사태까지 지켜본 그는 이 책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인의 통념에 일침을 가한다.

"한국인은 민심을 따르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믿지만 공화국(republic)은 '제도에 의한 통치'를 뜻한다"는 그의 지적은 우리가 간과했던 민주주의의 본질을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 책은 베스트셀러(교보문고 정치·사회 분야 7위)에 올라 있다. 브린 외에도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한국인은 누구인가'를 밝히는 책을 써 왔다. '북스 온 코리안(Books on Koreans)'이다. 그들의 눈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살펴본다.

◇중심을 향해 쏠리는 소용돌이 국가

건국 이후 한국의 초상을 본격적으로 그린 첫 인물은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를 쓴 미국 외교관 그레고리 헨더슨이다. 1948년 7월 한국 땅을 처음 밟았고 이승만 대통령 뒷자리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지켜봤다. 1955년 미 국무부 산하 외교관 훈련원에서 동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며 한국을 본격적으로 연구해 1968년 '소용돌이…'를 출간했다. 반세기 전 나온 책이지만 한국 정치에 대한 헨더슨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소용돌이(vortex)는 모든 걸 빨아들이지만 정작 그 중심은 텅 비어 있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본색이라고 헨더슨은 단언한다. 그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로 인종·문화·언어의 '동질성'과 '중앙 집중'을 제시하고, 한국은 정치·사회의 모든 활력 요소가 태풍의 눈인 중앙 권력을 향해 치닫는 소용돌이형 국가라 규정한다. 한국에선 동일 가치를 지향하는 몰개성한 개인들이 한결같이 관료주의적 상승 작용에 열광적으로 몰입하면서 인재와 부가 서울로 집중된다. 정당 리더십도 제왕적인 1인 보스로 권력이 쏠리는 소용돌이형 권위주의 체제이며 정당은 통치가 목적이라기보다 통치 권력에 접근하는 수단으로 창당되므로 기회주의자들이 이합집산하는 조직이 되고 만다. 그런 정당이 수행하는 정치 역시 당파성과 개인 중심의 기회주의 행태를 보이므로 합리적 타협을 이루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관료의 복종과 시민의 자발적 충성을 이끌어내지 못해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진다고 진단한다.

◇"화려한 도덕 쟁탈전 벌어지는 거대 극장"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는 서울대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한 지한파 학자다. 2017년 낸 저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그는 한국을 도덕 지향적인 국가라고 했다. 사람의 모든 언동을 도덕으로 환원해 평가하는 한국은 너의 도덕과 나의 도덕 중 누구의 도덕이 옳은지를 두고 싸우는 사회다. 그는 "한국 사회 특유의 역동성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이 여기서 유래하지만, 싸우는 동안 모두의 도덕성이 상처를 입는다"고 지적한다. 일본인은 싸울 때 칼을 들지만 한국인은 혀를 써서 상대를 벤다. 말싸움에 지면 권력과 부를 모두 잃을 수 있으므로 한국인의 논쟁은 격렬하기 그지없다. 저자는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도 한국인으로 하여금 힘으로 싸우기보다 도덕으로 무장하는 길을 택하게 했다고 파악한다.

북한에 대해선 '한국보다 더한 도덕지향성의 화신'이라고 평가했다. 재임 중 한·일 과거사 화해를 추진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북한이 "이 역적은 우리 민족의 불구대천지원수인 일본 천황 앞에 나가서는 남조선이 일본과 하나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정신 나간 소리마저 주저 없이 해 댔다"고 맹비난한 것도 '일본은 악(惡)'이라 보는 북한이 남한을 도덕적으로 나무란 것이라고 설명한다.

오구라 교수는 도덕적 가치를 절대화하는 주자학이 한국 사회에 드리운 음영을 지적한다. 반면, 이매뉴얼 페스트라이시 경희대 교수는 저서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주자학을 한국 선비의 철학이자 모든 현상을 관통하는 근본원리에 주목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상찬한다. 그는 주자학이야말로 현대사회의 결함을 정확히 짚어내고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긍정론을 편다.

◇중년 위기에 빠진 한국, 평등 지향 한국인

글로벌화한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외국인들도 한국인 초상화 그리기에 동참한다. 2010년부터 3년여간 현대차에서 근무하며 '푸 상무'라는 별명을 얻은 미국인 프랭크 에이렌스는 저서 '현대자동차 푸상무 이야기'에서 한국을 "모험심 잃은 중년의 성인 같다"고 썼다. 그는 "가난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람들이 모험을 피하고, 신중한 접근을 통해 그동안 이룬 것을 지키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혁신과 리더십이 아니라 정체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며 "조선소를 짓기 전에 배부터 수주한 정주영 회장의 모험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1992년 중국에서 귀화해 여러 기업에서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가르쳐온 첸란씨는 한국의 평등 지향성을 주목한다. 그는 저서 '살벌한 한국, 엉뚱한 한국인'에서 한국을 '체제는 자본주의, 의식은 공산주의인 나라'라고 정의한다.

[구한말 한국인에 대해 쓴 책들]

"조선인 내면엔 훌륭한 본성, 현명한 정부 있다면 깜짝 놀랄 성취 이룰텐데…"
―오스트리아인이 쓴 '조선, 1894년 여름'

개화기에 한반도를 찾아온 외국인들은 “이대로라면 조선은 망할 수밖에 없다”고 입 모아 말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 헐버트조차 ‘대한제국멸망사’에서 일본이란 외부 요인보다 매관매직과 착취로 인한 민심의 이반을 멸망 이유로 꼽았다.
개화기에 한반도를 찾아온 외국인들은 “이대로라면 조선은 망할 수밖에 없다”고 입 모아 말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 헐버트조차 ‘대한제국멸망사’에서 일본이란 외부 요인보다 매관매직과 착취로 인한 민심의 이반을 멸망 이유로 꼽았다.

한반도에 대한 외부의 관심은 개화기를 전후해 크게 고조됐다. 이 시기 외국인이 주로 지적한 것은 가난과 게으름, 관리의 부패 등이었다. 1886년 육영공원 교사로 부임해 양반 자제들을 가르친 조지 길모어는 '서울 풍물지'에서 기상나팔이 울려도 일어나지 않는 게으른 젊은이가 사는 조선이 장차 식민지로 전락할 것이라고 일찌감치 내다봤다.

'대한제국멸망사'를 쓴 호머 헐버트는 조선은 일본이라는 외부 요인보다는 자체 모순 때문에 멸망의 길에 들어섰다고 지적했다. 관찰사직을 5만달러에 거래하는 매관매직과 이후 본전을 뽑기 위한 수탈 때문에 민심이 조선 왕조에 등 돌린 것을 망국의 근원으로 파악했다.

일본 첩자 혼마 규스케는 청일전쟁 직전 조선을 염탐하고 쓴 '조선잡기'에서 국제 정세에 어두운 조선인을 조롱하며 "나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추측하는 우물 안 개구리" "(나라 밖에) 계수나무를 장작으로 때고 옥으로 밥을 짓는 부자가 있는 것을 모른다"고 했다.

반면 조선인이 지닌 저력을 꿰뚫어본 이들도 있다.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을 쓴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한반도 조선인의 참혹한 삶을 목격한 뒤 시베리아 한인촌을 방문했다가 그곳 한인들이 유복하게 사는 것을 보고 조선이 국가 체제만 일신하면 가난을 떨치고 부유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오스트리아 여행가 헤세-바르텍은 '조선, 1894년 여름'에 이런 글을 남겼다. "조선인의 내면에는 아주 훌륭한 본성이 들어 있다.(…) 현명한 정부가 주도하는 변화한 상황에서라면 이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깜짝 놀랄 만한 성취를 이룰 것이다."

우리는 70년 뒤 '한강의 기적'으로 그 예언을 실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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