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美 의원은 '한국 안보' 걱정, 韓 의원들은 북한 대변

조선일보
입력 2019.02.15 03:19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방미(訪美) 중인 우리 국회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김정은의 진정한 의도는 비핵화가 아니라 남한을 무장해제 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미 정치 서열 3위인 펠로시 의장은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도 아무 성과가 없었고 실패작, 쇼이지 않았느냐. 지금은 말이 아니라 북한이 비핵화한다는 증거, 실제 행동을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과대 포장하고 있는 '김정은 비핵화 의지'를 무턱대고 믿을 수는 없다며 2차 미·북 정상회담에 대한 낙관론을 경계한 것이다.

펠로시의 발언은 민주·민주평화·정의당 소속 대표단이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말을 계속하자 논쟁을 벌이는 가운데 나왔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북한은 지금 경제개발을 원할 만큼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북한이 베트남처럼 친미(親美) 국가로 바뀌면 미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배석한 한국계 앤디 김 하원의원이 "북한은 핵 폐기 의사를 보이는 조치를 한 게 없다"고 하자 정 대표는 "동창리 미사일 기지를 국제사회 참관 아래 폐기하고 북한 핵 능력 80%를 차지하는 영변 단지를 해체하면 그것이 증거"라고도 했다. 하지만 동창리 기지는 이미 용도 폐기된 시설이며, 영변 아닌 다른 곳에 비밀 농축시설이 존재하는데 영변이 핵 능력의 거의 전부라는 것은 북한의 거짓 선전일 뿐이다.

이런 설전이 벌어지면서 당초 30분으로 예정됐던 면담이 1시간 넘게 이어졌다고 한다. 결국 펠로시 의장은 "나는 결과를 낙관하지 않는다. 내가 틀리고 당신이 맞기를 바란다"고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미 의원들이 한국의 안보를 걱정하고, 그 앞에서 우리 국회의원들이 오히려 북한을 두둔하며 논쟁을 벌였다. 김정은 입장에서 이렇게 훌륭한 자발적 대변인들이 없을 것이다.

북한이 '가짜 비핵화'를 하고, 트럼프와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대성공'이라고 포장하면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의 길을 연다. 그 최대 피해자는 한국민이다. 그렇다면 한국 국회의원들이 가짜 비핵화의 가능성을 경계하고 미국에 그 우려를 전달하는 것이 정상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가짜 비핵화 가능성을 우려했고 미국은 이란 핵 협상을 '괜찮은 것'이라고 해 논쟁을 벌였다. 그런데 한국에선 거꾸로 돼 있다.

미 정보 당국의 모든 수장과 북핵 담당 군 사령관은 "북한은 완전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과거에 지금보다 훨씬 더 진척된 북핵 협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북한이 비록 가짜이지만 핵 신고를 한 적도 있다. 그러나 검증 문제에 걸려 다 좌초했다. 북한이 검증을 안 받겠다는 것은 핵 포기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북은 제대로 핵을 신고하고 제대로 검증받겠다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여권 의원들은 북한을 설득하는 게 아니라 아무런 근거도 없이 미국에 "김정은을 믿으라"고 한다. 정말 한국민은 누구를 믿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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