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하원의장 "김정은의 진정한 의도는 남한 무장해제"

조선일보
  • 윤형준 기자
    입력 2019.02.14 03:07

    여야대표단 앞에서 불신 드러내 "北비핵화, 말이 아닌 증거 필요"

    낸시 펠로시
    낸시 펠로시(민주당·사진) 미국 하원의장이 12일(현지 시각)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與野) 대표단을 만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진정한 의도는 비핵화가 아니라 남한을 무장 해제(demilitarization)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펠로시 의장은 이 자리에서 "(북한 비핵화는) 말이 아니라 증거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진행 중인 미·북 비핵화 협상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문 의장과 여야 대표단은 워싱턴 DC에서 특파원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펠로시 의장의 발언을 전했다. 문 의장 등에 따르면, 펠로시 의장은 "지난해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 선언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선물에 불과했다"며 "지금은 말이 아니라 증거를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펠로시 의장은 또 과거 '고난의 행군' 시기였던 1997년 북한을 찾았던 경험을 언급하며 "나는 북한을 믿지 않는다"고도 했다. 미 권력 3위인 펠로시 의장의 이 같은 언급은 미 하원이 향후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을 북한과의 합의 등에 대해 철저하게 검증하고 필요 시 제동을 걸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여야 대표단과 펠로시 의장이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며 원래 30분간 예정됐던 이날 대화는 1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고 한다. 펠로시 의장은 2차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 "낙관적(optimistic)이지는 않지만 희망적(hopeful)"이라며 "내가 틀리고 당신들(여야 대표단)이 맞기를 바란다"고 상황을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文의장, 친필 휘호 선물 - 문희상(왼쪽 앞) 국회의장이 12일(현지 시각) 펠로시(오른쪽 앞) 미 하원의장에게 ‘만절필동(萬折必東·황하가 만 번을 꺾여 흘러도 결국 동쪽으로 흘러간다)’이라는 사자성어가 적힌 친필 휘호를 선물하고 있다. 문 의장은 평소 이 사자성어를 인용해 한반도 정세를 설명해왔다. 지난해 10월 국제의회연맹(IPU) 총회에 참석해서도 “만절필동이 뜻하는 바대로 우리가 모두 원하는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 역시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文의장, 친필 휘호 선물 - 문희상(왼쪽 앞) 국회의장이 12일(현지 시각) 펠로시(오른쪽 앞) 미 하원의장에게 ‘만절필동(萬折必東·황하가 만 번을 꺾여 흘러도 결국 동쪽으로 흘러간다)’이라는 사자성어가 적힌 친필 휘호를 선물하고 있다. 문 의장은 평소 이 사자성어를 인용해 한반도 정세를 설명해왔다. 지난해 10월 국제의회연맹(IPU) 총회에 참석해서도 “만절필동이 뜻하는 바대로 우리가 모두 원하는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 역시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연합뉴스

    이날 대화는 문 의장과 더불어민주당·민주평화당·정의당 소속 의원들이 북한과의 대화에 부정적인 펠로시 의장을 설득하는 식으로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펠로시 의장은 대화 내내 북한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고 한다. 펠로시 의장은 1997년 방북 경험을 언급하며 "북 주민들의 가난과 비참함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부터 북한 정권을 믿을 수 없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북한은 과거 고난의 행군 시절과는 많이 변했다"며 "가까운 시일 내 다시 방북해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비핵화라는 말을 찾을 수 없었다"며 북한 문제를 대하는 트럼프 정부의 속내에도 의문을 표했다. 정동영 대표가 과거 민주당이 추구해온 북핵 해법과 트럼프 정부의 대북 협상 기조가 서로 일치해가고 있다는 취지로 말하자, 펠로시 의장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이 자리에 배석한 한인 출신 앤디 김 하원의원도 "북한이 핵 폐기 의사를 보이는 조치를 한 게 없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조야의 이런 분위기는 다른 자리에서도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윌리엄 코언 전 미 국방장관은 자유한국당 방미단을 만나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이 먼저 만나 악수를 하고 실무적 논의를 남겨두는 등 선후를 바꾸어 접근하고 있어 북한의 입지만 강화되는 상황이 초래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국당 측이 전했다.

    '대북 제재 완화'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고 한다. 미국 측 인사들이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를 제시할 가능성을 언급했는지에 대해 문 의장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미국에 요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전날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이 "북한은 개성공단 등 4가지 비핵화 상응 조치를 요구한 게 아니냐"고 묻자 비건 특별대표가 "정확히 짚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제재를 가했기 때문에 (북한이) 대화에 나섰다', '제재가 효과가 있었다'는 게 대부분 미국 관료의 인식"이라고 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워싱턴 분위기는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모든 걸 퍼주는 것 아닐까' 하는 우려와 불신이 강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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