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칼럼] '분식 비핵화'를 묻지 마 인증, 뒷감당은 누구 몫인가

조선일보
입력 2019.02.14 03:17

미·북 회담 온통 회의론인데 한·미 대통령만 '성공'
자신 빈 껍데기를 '비핵화'라 포장, 핵 위기 구한 업적 챙길 채비
北 손에 남은 核 뒤탈 낼 텐데 임기 뒤 그 책임 어찌 질 건가

김창균 논설주간
김창균 논설주간

두 주 앞으로 다가온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 미 의회에선 연일 회의론이 나온다. 전문가 그룹도 비관론 일색이다. 늘 대화를 지지하는 쪽이었던 북핵 협상 경험자들도 이번만은 '기대할 것이 없다'는 분위기다. 미·북 제네바 합의를 이끌었던 로버트 갈루치 전 북핵 특사는 "싱가포르 회담 이후 비핵화가 진전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김정은의 비핵화 약속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북핵 6자 회담 미국 측 수석 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은 김정일에 대해 너무 긍정적이라며 '김정힐'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는데 그런 그조차 "북한은 비핵화에 관심이 없다. 파키스탄 같은 핵보유국이 되는 게 목표"라고 했다.

회담의 성공을 점치는 건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들뿐이다. 회담에 나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합의를 이룰 가능성이 크다"고 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구체적인 진전이 이뤄지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나 싶은데 북한과의 물밑 협상이 급진전되고 있다는 징후는 없다. 미·북 협상 특별대표인 스티븐 비건은 지난주 사흘간 평양에서 샅바 싸움을 벌이고 와서는 "갈 길이 멀다"고 했다. 댄 코츠 국가정보국 국장, 지나 헤스펠 CIA 국장 같은 정보 당국자들도 미 의회 청문회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전 협상도 없이 하노이 정상회담 날짜부터 덜컥 발표할 때부터 빈 껍데기 회담은 예고된 것이었다. 개인들끼리 아파트 한 채를 사고팔 때도 가격을 먼저 맞춰 놓고 인감도장 찍는 날을 잡는 법이다. 거래 날짜부터 정해놓고 조건을 밀고 당기는 법은 없다. 의제 조율 없이 정상끼리 만났다가 조건이 안 맞으면 '최고 존엄'은 자신이 통치하는 영토로 그냥 돌아가도 되지만 선거를 앞둔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는 그럴 처지가 못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저울에 달아주는 대로 물건을 받아야 한다.

김정은은 이번 '비핵화 바자회'에 영변 원자로를 내놓을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김정은이 작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이미 한 번 광을 냈던 품목이다. 북은 한 번 팔았던 물건도 먼지 털어서 두 번 세 번 내놓는 재주가 있다. 1960년대부터 가동된 영변 원자로는 1차 북핵 위기를 부른 주인공이었지만 2000년대 들어 북핵 개발의 중심축은 우라늄 농축 시설로 옮아갔다. 우라늄 시설은 플루토늄 원자로와 달리 소규모 은폐된 공간에서 대규모로 핵물질을 생산할 수 있다. 김정은은 첨단 우라늄 시설은 따로 챙겨 놓고 고철 덩어리가 된 원자로를 이번 회담에서 '땡' 처리하겠다는 심산이다.

'영변 원자로부터 폐기시키고 차례차례 비핵화 과정을 밟으면 되지 않으냐' 할지 모르지만 이번 회담으로 북핵 협상은 일단락될 가능성이 높다. 임기 중반을 넘긴 미국 대통령은 북한 지도자를 세 번 네 번 거듭 만날 여유가 없다. 트럼프는 하노이 회담에서 어떤 합의문이 나오든 "클린턴·부시·오바마가 못했던 북핵 타결을 이뤘다"고 선전하며 재선 채비에 돌입할 것이고, 문 대통령은 "미·북 지도자들의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며 또 한 번 감격 세리머니를 할 것이다. 두 지도자를 홍보하는 홈페이지 상단엔 '한반도를 전쟁 위기에서 구하다'는 배너가 내걸릴 것이다. 어쩌면 노벨 평화상이라는 영예가 부상으로 딸려 올지도 모른다. 영변 거래를 끝으로 북핵 협상이 '잠정 중단' 국면에 접어들면 김정은은 이미 만든 수 십개 핵무기와 매년 8개까지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핵 시설을 그대로 쥔 채 비핵화의 용단을 내렸다는 찬사를 듣고 그 대가까지 챙긴다. 남·북·미 세 지도자 간의 윈·윈 거래다.

1997년 외환 위기는 한국 회계 장부가 분식투성이라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급전직하했다. 재무제표상 건실해 보였던 한국 기업들이 알고 보니 상호 지급 보증으로 눈가림한 부실 덩어리였던 것이다. 월가가 '한국을 떠나라'는 비상벨을 울리면서 국가 부도의 낭떠러지까지 내몰렸다.

한·미 정상이 북의 가짜 비핵화를 묻지 마 인증했던 '분식'이 뒤탈을 내는 진실의 순간도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북한이 '정의의 보검'이라고 떠받드는 핵을 마냥 놀리겠는가. 그때 대한민국이 맞이할 위기는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죽고 사는' 문제가 된다. 북핵 위기 해결이라는 정치적 업적을 누린 트럼프·문재인 정부는 이미 역사의 무대를 떠난 다음일 것이다. 그 뒷감당은 누구 몫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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