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짜 비핵화' 걱정하는 국민이 '적대 계속' 바라는 세력이라니

조선일보
입력 2019.02.13 03:20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이달 말 열릴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 "아직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의구심을 갖거나 심지어 적대와 분쟁의 시대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듯한 세력도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회담이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나아가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고 절대다수 국민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북이 핵을 내려놓고 정상적인 국가로 국제사회에 복귀해서 남북이 함께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것은 7500만 민족의 공통된 꿈이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 국민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회담을 앞둔 실제 상황은 낙관을 불허하고 있다. 지난주 사흘이나 평양에 머물렀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북측과 가진 회담 준비 모임에 대해 "협상이라기보다는 입장 타진이었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상대가 어떤 입장에서 협상에 임하려 하는지 파악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다음 주로 예정된 후속 실무 협상도 비핵화 의제라는 본질보다는 정상회담의 일정, 동선, 의전을 주로 협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식이면 두 주 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은 1차 싱가포르 쇼처럼 비핵화에 대한 아무런 사전 조율 없이 마주 앉게 된다. 그래서 비건 대표도 "회담까지 남은 2주 동안 미·북 간 난제를 해결하기 힘들다"고 솔직하게 토로했다.

이번 트럼프·김정은 회담마저 싱가포르 1차 회담처럼 북핵 폐기로 가는 구체적인 계획표를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한바탕 리얼리티 쇼로 끝나면 문제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임기 반환점을 넘은 트럼프 대통령은 더 이상 김정은을 만날 시간도 여력도 없다. 이번 회담으로 비핵화 목표가 달성된 것처럼 요란하게 선전한 뒤 북핵 문제는 옆으로 미뤄 두려 할 것이다. 북한이 고철이나 다름없는 영변 원자로를 폐기하겠다고 생색을 내고 미국이 그 대가로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체제 논의를 시작한다는 예상이 현실화되면 더 이상 대북 제재를 단단하게 죄고 있을 명분도 약해지게 된다. 북한은 이미 만들어 놓은 수십 개의 핵무기와 매년 8개의 핵무기를 새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우라늄 농축 시설들은 안고 국제사회의 압박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지난 20여 년간 수십 번의 대북 협상이 모두 이런 식으로 물거품이 됐다. 그런데 이번만은 다를 것이라고 믿어야 할 근거는 뭔가. 문 대통령이 '김정은을 믿자'고 하고, 트럼프가 '내 업적'이라고 자랑하면 북핵이 없어지나. 북핵 문제를 추적해 온 많은 전문가는 이번 회담이 지난 20여 년간처럼 '가짜 비핵화'로 귀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적잖은 국민도 대한민국이 요란한 쇼 뒤에 북핵의 인질로 그대로 남게 될까 걱정하고 있다. 안보는 최선을 추구하되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대통령은 최악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는 것에서 나아가 최악에 대비하자는 사람들을 '적대를 바라는 세력'이라고 비난까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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