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7~28일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이 다음 주 갖는 실무 협상에서도 비핵화 문제에 관한 뚜렷한 합의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측이 비핵화 의제보다 의전·경호 문제 논의에 집중할 경우 명확한 '사전 합의' 없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 담판을 벌이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다음 주 미·북 실무 협상은 우선 하노이 정상회담의 일정·동선·의전을 결정하는 회의가 될 것"이라며 "이 기간 의제 협상도 함께 이뤄지겠지만 정상회담까지 시간이 촉박해 구체적이고 유의미한 비핵화 합의문을 미리 도출해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정상회담 날짜를 정해놓고 의제 협상을 시도했다가 끝내 '빈손 회담'으로 끝났던 작년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전철을 다시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6~8일 북측과 실무 협상을 하고 온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협상이 아니라 입장 타진이었다"고 한 것도 우려의 근거가 되고 있다.

◇北, 김정은 경호·의전 논의에 집중

북한은 비핵화 의제와는 별도로 김정은의 하노이 이동 수단과 의전·경호 문제 논의에 집중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 소식통은 "김정은의 베트남 국빈 방문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이라며 "북으로선 김정은 일정·동선을 짜는 데 많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상회담 준비와 관련, 팜빈민 베트남 부총리 겸 외무장관은 리용호 외무상 초청으로 12~14일 북한을 방문한다고 이날 베트남 정부가 밝혔다.

하노이 노점에 등장한 성조기와 인공기 - 2차 미·북 정상회담 장소로 확정된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한 노점상에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 북한 인공기가 나란히 놓여 있다. 미·북은 다음 주 실무 협상을 열고 하노이 정상회담의 일정·경호·의전 문제 등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은 싱가포르 회담 때처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 전 베트남의 응우옌푸쫑 주석과 먼저 만날 수 있다. 유명 관광지인 할롱베이나 해상 물류 중심지 하이퐁을 둘러보고, 초고층 빌딩에서 하노이 시내 야경을 관람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비핵화 의제와 관련해 북한은 영변 핵시설과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폐기 등의 상응 조치로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측은 영변 핵시설 등의 신고·검증·폐기와 '비핵화 시간표'를 강조하면서 제재 완화 대신 종전(終戰) 선언이나 인도적 지원 확대, 연락사무소 개설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불가침 선언이나 연합훈련 중단 약속을 할 수도 있지만, 전향적인 추가 비핵화 조치 없이 제재 완화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양측이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면 다음 주 실무 협상은 비핵화 의제 합의 없이 의전·경호만 확정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 싱가포르 회담과 같은 상황이 재연되는 셈이다. 한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실무 협상 전인 13~14일 폴란드에서 열리는 '중동 평화안보 증진을 위한 장관급 회담'에서 강경화 외교장관과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미 조야 "2차 정상회담 기대 안 해"

미 의회에선 2차 정상회담을 향한 회의론이 또다시 커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초대 국무장관 후보로 거론됐던 밋 롬니 상원의원(공화)은 10일(현지 시각) 의회 전문지 더힐에 "(2차 정상회담에) 희망 사항은 많지만 특별한 기대는 없다"며 "북한은 수년간 자신들의 약속이 신뢰하기 어렵다는 걸 증명해 왔다"고 했다. 그는 '북한에 구체적으로 바라는 약속이 있느냐'는 질문엔 "그러한 것들을 보고 싶다. 그러나 시간이 말해줄 것"이라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상원 외교위 민주당 간사인 밥 메넨데스 의원도 "1차 정상회담으로 봤을 때 (기대가) 높지 않다"며 "성공적인 정상회담을 위해 필요한 준비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조차 합의하지 못한 상태인 만큼, 회담 전에 정의 규정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반면 친(親)트럼프 성향의 제임스 인호프(공화) 상원 군사위원장은 "결과가 어떻든 간에 싱가포르 때보다는 더 구체적일 것"이라며 "대통령이 핵 활동 중단 등의 약속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연구소 외교정책 연구원도 "트럼프 행정부가 들쑥날쑥한 대북 정책에도 제재와 군사행동 가능성, 적극적 외교의 조합으로 '진전 가능성'을 만들어냈다"면서 "실패를 거듭한 이전 행정부와는 달리 이제는 '터치다운, 아니면 최소한 필드골' 사정권에 들어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