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카드 없고, 기계 못 만지면 밥도 못 먹나"

입력 2019.02.11 03:15

일반 식당도 무인 기계 열풍… 영화·기차표도 노인 소외
디지털 정보 격차 점점 커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어디에

어수웅 주말뉴스부장
어수웅 주말뉴스부장
주말이면 자주 찾는 일본 라면집에 두 대의 키오스크가 들어왔다. 사람 대신 주문 받는 무인 기계 말이다. 예단 마시길. 이 칼럼의 목적은 최저임금 인상 비판이 아니라, 디지털 격차가 빚어낸 노인 소외의 여러 풍경에 있다. 가끔 마주치던 70대 부부가 무인 기계 앞에서 당황하고 있었다. 뜸한 시간이라면 좋았겠지만, 기계 뒤로 줄 선 손님도 여러 명. "시간 초과입니다"라는 기계음이 나왔고, 주인은 주방에서 정신없어 보였고, 노부부는 도와주겠다는 한 청년의 친절을 사양하며 발길을 돌렸다. 그 뒤로 이 집에서 노인 고객을 본 적은 없다.

하나 더. 1958년 탄생한 대한극장은 매년 노인영화제가 열릴 만큼 중장년 관객이 많다. CGV나 롯데시네마 같은 대형 체인과의 경쟁을 위해 이 극장이 마련한 전략은 '반값 세트'. 가령 솔로 세트는 팝콘 하나, 탄산음료 하나, 티켓 한 장을 합쳐 9000원이다. 주말 영화표 한 장만도 1만1000원인 걸 고려하면 파격적 할인. 표 두 장인 커플 세트, 네 장 포함된 가족 세트라면 할인 폭은 더 커진다. 하지만 이 매력적인 할인을 받으려면 스마트폰 앱에서 여러 번 버튼을 누르고 카드 등록과 결제를 해야 한다. 그러니 노인 관객 대부분은 매표소에 줄을 서며 경로 우대에 만족할 수밖에.

마지막으로 이번 설 명절 사례. 조치원에 사는 어르신 한 분을 안다. 아들이 코레일톡 앱을 통해 아버지 휴대폰으로 보내준 무궁화호 열차표로 역귀성을 했다. 하지만 자식이라도 매번 부탁은 미안해서 평소에는 한두 시간 일찍 역에 나와 표를 구한다고 했다. "모바일로 기차표를 사는 시대이다 보니, 젊은 사람들은 앉아서, 노인들은 입석으로 서서 가더라"는 게 요즘 세태다.

편하게 말할 수도 있다. 조치원 경우처럼 자녀가 사서 부모님 폰으로 전송 버튼 누르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모든 자식이 효자·효녀인 것도 아니고, 설령 그렇더라도 그들이 늘 부모와 함께 사는 것도 아니다. 정보화진흥원의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 최신 통계는, 대표적 취약 계층 중에서도 맨 아래가 노인임을 보여준다. 일반 국민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을 100으로 볼 때, 저소득층 81.4, 장애인 70, 농어민 64.8, 그리고 장노년층은 58.3. 사실은 이조차도 자존심 때문에 과장한 수치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청년이 노인이 되면 더 쉽게 적응할 거라 희망하지만, 안타깝게도 고령화와 디지털 전환은 그때를 기다리지 않고 있다. 1980년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3.9%였지만, 2017년에는 13.9%였고, 6년 뒤 2025년에는 20%로 통계청은 예상한다. 라면집 70대 부부를 좌절시킨 무인 기계는 어떨까. 패스트푸드점 KFC는 90%, 롯데리아·맥도날드는 70% 매장에 설치했다는 게 최신 통계다. 할머니 유튜브 스타로 유명해진 박막례(72)씨의 무인 기계 체험 영상에는 이런 막말 독백이 있다. "×병, 카드 없고 기계 못 만지면 밥도 못 먹나."

지난해 정부는 빈 강의실 불 끄기(1243명), 전통 시장 화재 점검(800명) 등 '초단기 공공알바 사업'에 1200억원을 썼다고 한다. 차라리 청년과 노인을 1대1로 연결해서 디지털 정보 격차 해소 사업에 이 돈을 투입했다면 어땠을까. 실질적 고용 창출은 물론, 장년 세대의 돌아선 인심도 일부 되찾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우리에게 코언 형제의 영화 제목으로 익숙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원래 노벨 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시다. 훌륭한 선배들의 어깨에 기대 더 멀리 더 높이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그리고 너무 쉽게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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