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大學 안에 아예 공장까지… 기업가적 혁신 못하면 소멸"

입력 2019.02.08 03:25 | 수정 2019.02.08 03:26

[질주하는 세계 - 대학] [끝] 총장들이 말하는 한국 대학의 과제

2020년 3월 5일 창간(創刊) 100주년을 맞는 조선일보는 신년 1월 1일부터 연중 기획 '질주하는 세계-대학편'을 연재했다. 우리의 지난 100년을 돌아보고 미래 100년을 준비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미국 MIT 등 혁신하는 글로벌 대학 8곳을 소개했다. 이 대학들은 우리가 알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들과 경쟁해야 할 우리 대학의 현주소와 미래 모습은 어떤가. 포스텍 김도연(67) 총장, 연세대 김용학(66) 총장, 성균관대 신동렬(63) 총장이 '질주하는 세계-대학편'을 마무리하는 좌담회를 가졌다.

지난달 23일 조선일보 사옥에서 성균관대 신동렬 총장, 김용학 연세대 총장, 김도연 포스텍 총장(왼쪽부터)이 본지의 연중 기획 ‘질주하는 세계-대학’을 보고 우리나라 대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지난달 23일 조선일보 사옥에서 성균관대 신동렬 총장, 김용학 연세대 총장, 김도연 포스텍 총장(왼쪽부터)이 본지의 연중 기획 ‘질주하는 세계-대학’을 보고 우리나라 대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남강호 기자
―세계 대학들의 혁신 현장이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다는 반응이 많았다.

▲김도연: '남들은 질주하는데 우리는 서 있구나' '이거 참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 대학들은 발전 속도가 기하급수적인데, 우리는 아무리 애써도 조금 나아가는 수준이니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진다.

▲김용학: 미래 담론을 얘기해 반가웠다. 대학은 우리 사회의 10년, 20년 후를 보여주는 미래다. 그런데 '질주하는 세계'에 나온 대학과 비교하면 현재 우리 대학의 민 낯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신동렬: 세계 대학들은 광범위하게 융·복합을 하며 파괴적 혁신을 한다. 성과도 중요하지만, 그런 혁신이 가능한 토양을 봐야 한다. 그 대학들이 있는 사회는 대학을 미래 가치를 창출하는 곳이라고 여긴다. 그러니 어느 정도 실패도 용인하고 대학에 투자도 한다.

―'질주하는 세계' 시리즈 1부는 글로벌 대학들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김도연: 국가의 성장 동력은 대학에서 나온다. 1993년 이스라엘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 기자가 "인구 800만명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가 어떻게 중동의 아랍 국가들을 상대로 굳건히 버텨내고, 첨단 분야에서 세계적 중심 역할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때 총리의 대답이 "이스라엘에는 세계적 대학이 7개나 있다"였다. 국가 최고 지도자가 '대학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란 신념을 갖고 있었던 거다. 규모가 작은 네덜란드가 농식품 수출액 1000억달러로 미국 다음 세계 2위다. 그런 놀라운 성과는 농업 분야 세계 1등인 바헤닝언대학 덕분이다. 이를 '시(市)-산업-대학'이 협력해 부를 창출한다는 뜻으로 '골든트라이앵글'이라 부른다. 이스라엘 테크니온대학도 20년간 1600개 벤처와 직업 10만개를 만들었다. 우리도 그런 대학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국가 지도자는 물론 국민도 대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대학은 아예 잊힌 존재다.

―한국 사회가 성장 동력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동렬: 미래에 대한 비전과 철학이 부족하다.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는 어떤 것인지 서로 잘 모른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개인은 자기 이익을 찾기 위해 각자도생할 뿐이다. 세대 갈등, 지역 갈등, 이념 갈등에 남녀 갈등과 노사 갈등까지, 수많은 갈등을 통합하고 이끌어가야 할 리더십은 실종됐다. 대학도 제 역할을 못 한다.

▲김용학: 중요한 건 경제다. 작년에 국민소득 3만달러가 됐는데, 2만달러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13~14년이 걸렸다. 일본은 4년 걸렸다. 과거 30년간 한국은 기적 같은 발전을 이뤘는데, 개인, 조직, 회사 모두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각자 뛰어온 결과다. 지금 단계에선 그 같은 성공 방정식이 통하지 않는다. 배려하고 협력하는 게 중요한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으니 정체하는 것이다.

―대학도 혁신보다는 정체 또는 후퇴 분위기다.

▲김도연: 대학들 재정 문제가 심각하다. 10년 넘게 등록금이 동결됐다. 전체 대학의 75%에 달하는 사립대 상당수가 생존하기도 버겁다. 교수를 못 뽑을 뿐 아니라, 깨진 유리창도 못 갈아 끼울 정도다. 교육의 질이 좋아질 수 있나. 정치적 구호로 시작된 반값 등록금 정책이 이젠 아무도 못 깨뜨리는 사회규범이 됐다. 대학이 서로 경쟁할 수 있게 시장 기능이 들어와야 한다.

▲김용학: 우수 인재들이 대학의 학문 후속 세대에 진입하기보다 연봉 더 주는 대기업에 간다. 인재풀이 약화하고 있다. 학문을 해도 연봉이 우리 10배, 20배인 외국 대학에 간다.

▲신동렬: 대학 스스로도 진취성이 부족한 점을 반성해야 한다. 글로벌 대학들은 기업가적 혁신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걸 못 하고 있다. 이게 우리 사회의 미래를 암울하게 한다.

성균관대 신동렬 총장, 김용학 연세대 총장, 김도연 포스텍 총장 이력 정리 표

―미래에는 대학이 사라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도연: 실제로 많은 대학이 사라질 것이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는 80개 학사 학위를 온라인으로 제공한다. 연간 학비가 5000달러(약 560만원)다. 졸업장에 '온라인 학위'라는 표시도 없다. 세계 어디서나 명문대 학위를 딸 수 있다. 우리 대학이 이런 대학들과 경쟁해야 한다.

▲김용학: 지식의 생산과 유통 방식이 바뀌고 있다. 특정 기술이 필요하면 해당 분야 나노디그리(온라인 단기 직무 교육과정)를 받는다. 기업도 원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을 빨리 데려다 쓴다. 전통적 학위의 가치는 점점 떨어질 것이다. 지금의 명문대가 얼마나 오래가겠나.

▲신동렬: 총장으로 부임한 날 문과대 한 학생이 내게 이메일을 보냈다. "친구들이랑 미국 스탠퍼드대의 기계 학습 강의를 온라인으로 보면서 스터디하고 있다. 수학 통계 관련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해 알고 싶은데, 학교 수업 시간에 그 부분을 교수 한 분이 설명해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온라인에서 질 높은 강의를 먼저 찾아 듣고 대학에 필요한 걸 요구하는 일이 실제 벌어지고 있다. 교수들은 앞으로 고급 TA(티칭 어시스턴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혁신을 빨리 하지 않으면 대학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미래 대학의 역할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김용학: 세계 최고(最古) 대학인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이 1000년 됐다. 1000년 동안 망하지 않는 기업은 없어도 대학은 있다. 대학만의 기능이 분명히 있다는 의미다. 미래 대학의 기능은 기아, 교육, 빈곤 등 갈수록 복잡해지는 지구촌 문제에 개입해 해결하는 것이다. 명시적 지식은 무크(MOOC·온라인 공개강좌)를 통해 쉽게 배울 수 있지만 암묵적 지식은 오랜 경험과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체득할 수 있다.

▲김도연: MIT는 5년 전 '교육의 미래' 보고서에서 "미래 세대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교육에 과감한 실험을 하라"고 했다. 대학은 과감한 실험으로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며 좋은 모델을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 교육은 과거 산업 시대 인재를 키울 때 필요한 것이다. 앞으론 다르다. 미국 웬만한 대학은 조교 역할을 인공지능(AI)이 한다. 세계는 이렇게 앞서가는데, 우리 정부는 온라인 학위 많이 주지 말라고 하고, 대학들도 다양한 실험을 할 도전 정신이 없다.

▲김용학: 외국에선 IBM의 AI '왓슨'을 투입해 학생 개인별 교육을 받게 한다. 공부하다 막히면 왓슨이 '어디 가서 뭘 보고 와라'고 길을 알려준다. 교수의 역할은 단순 지식 전달이 아니라, (학생들의 토론과 협력 활동을 조정하는) 지휘자 같은 일을 하는 것이다.

▲신동렬: 기존 대학이 혁신하지 않으면 미네르바스쿨이나 무크 등 새로운 형식의 교육 방식과 기관에 잠식당할 수밖에 없다. 이제 대학은 인터넷에 다 있는 지식 가르칠 게 아니라, 평생 직업을 4~5번씩 옮겨다닐 아이들에게 '하우 투 런(how to learn·배우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변하는 대학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겠지만, 안 변하는 대학은 '좀비 대학'이 될 것이다. 좀비 대학이 늘어나면 사회적 손실이 클 뿐 아니라, 그 사회의 미래도 보이지 않는다. 정부·사회·학교가 모두 변해야 한다.

―대학은 지금 어디에 집중해야 하나.

▲김도연: AI이다. MIT가 10억달러(1조1000억원)를 들여 AI 단과대를 만든다. 100여 년 전엔 공과대학을 발전시킨 나라가 세계를 지배했지만, 앞으로 100년은 AI에서 앞서가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할 것 같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AI가 두렵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난 두렵다"고 했다. 우리 정부도 AI 지원을 시작했는데, 대학 3곳을 뽑아 학교당 30억원 내외를 주겠다고 한다. 미국 버지니아대는 AI 스쿨 세우는 데 1억2000만달러(1348억원)를 쓴다.

▲신동렬: 대학의 모든 학과, 교육과정마다 AI가 스며들어야 한다. 또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데이터 다루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영어 실력에 데이터 분석 능력이 있다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살아날 수 있다. 우리 대학은 중국에도 크게 뒤처져 있다. 미국 학생이 1~2년 대학서 공부하고, 나머지 현장 경험한다면, 중국은 아예 학교 안에 제조업 공장이 들어와 있다. 그들과 경쟁하려면 그들이 못 하는 걸 해야 한다.

▲김용학: AI를 지금 준비해 (다른 나라 대학을) 좇아가려는 생각은 아예 꿈 깨야 한다. 남들이 안 하는 기술과 지식의 융합적 가치를 찾아내야 한다.

―불확실성의 미래를 살아갈 젊은이들은 어떤 자질을 키워야 하나.

▲김용학: 지금까진 '당신은 누구냐'고 물으면 변호사나 교수라고 답했다. 이젠 직업으로 답하는 시대는 지났다. '나는 어떤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다'라는 것이 그 사람 정체성의 핵심이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살 무대는 한국이 아니라 세계다. 이력도 영어로 관리해야 한다. 부모가 가르쳐주는 대로 살면 안 된다. 어른들은 자기가 살아온 방식대로 자식도 살아가길 원하지만, 그런 사회는 이미 떠났다.

▲김도연: 과거엔 지식만으로 살아갈 수 있었지만 격변하는 사회에선 지혜가 필요하다. 지식과 지혜를 갖추고, 어려움이 닥쳐올 때마다 계속 도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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