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1시 50분 경기도 평택항의 컨테이너 야적장에서 회색 컨테이너 2개가 야드 트랙터(컨테이너 운반 전용 특수 차량)에 실려 이동을 시작했다. 항만을 둘러싼 철조망 밖에서 이를 지켜보던 한 행인이 "저게 그 쓰레기가 들어 있다는 컨테이너 아니냐"고 했다. 야적장에서 500m가량 떨어진 창고에 내려진 컨테이너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별다른 점이 없었다. 그러나 창고에 대기하던 환경부와 관세청 관계자 4명이 문을 열자, 쏟아져 나올 듯 가득 찬 쓰레기 더미의 모습이 드러났다. 오랜 시간 방치돼 부패한 쓰레기 더미는 컨테이너 문 앞에 설치된 흰색 비닐 가림막까지 시커멓게 변색시켰다.
이날 환경부와 관세청은 필리핀에 불법 수출된 쓰레기 1200t을 싣고 돌아온 컨테이너 51개 중 임의 선정한 컨테이너 2개에 대한 개봉 조사를 실시했다. 51개의 컨테이너는 지난 3일 평택 당진항 컨테이너 터미널 야적장에 반입됐다. 조사를 실시한 환경부는 "정상적인 재활용 공정을 거치지 않은 상당량의 이물질이 혼합된 폐플라스틱 폐기물로 최종 확인됐다"고 밝혔다.
컨테이너 속 쓰레기는 한 폐기물 처리 업체가 지난해 10월 '합성 플라스틱 조각'으로 신고해 필리핀에 불법 수출한 것이다. 필리핀 관세청은 이 업체가 수출한 컨테이너 51개에서 기저귀, 폐배터리 등이 섞인 쓰레기 더미를 발견하고 압류 조치 후 반송을 요구했지만, 이 컨테이너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데 4개월이 걸렸다. 불법 수출 업체가 사무실 문을 걸어 잠그고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다. 그사이 해당 업체가 필리핀에 소유한 부지에서 한국산 쓰레기 5100t이 추가로 발견됐다. 수출된 폐기물이 국내로 되돌아오게 된 것은 국제 분쟁 소지를 우려한 중앙정부가 나서면서다.
하지만 이 와중에 정부와 지자체는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어, 되돌아온 쓰레기 처리에 또 수개월의 시간이 더 소요될 전망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앞으로 법적 절차는 불법 폐기물 수출 업체의 소재지인 평택시 소관"이라고 했다. 폐기물 관리법에 따라 소관 지자체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택시는 "이미 한 번 수출된 폐기물까지 지자체가 책임지고 처리하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국내에서 쓰레기를 폐기하려면 1t당 15만원가량이 드는데, 운송비와 보관 비용 등을 포함하면 쓰레기 6300t을 폐기하는 데 앞으로 10억원 이상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폐기물 관리법에 따라 평택시는 앞으로 불법 수출 업체에 두 차례에 걸쳐 직접 처리를 명령하고, 이행하지 않을 경우 대집행 후 구상권을 청구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