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칼럼] 현 정권은 허익범 특검팀에 고마워해야 한다

조선일보
  •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2019.02.08 03:17

    허익범 특검팀이 시절을 잘 만나 현 정권의 검찰처럼 '적폐 수사' 하듯 했으면
    지금 길거리 활보할 이, 몇이나 남았겠나

    최보식 선임기자
    최보식 선임기자

    설날 연휴에 김경수 지사 법원 판결문, 드루킹 판결문, 특검 수사 결과 기록 등을 구해 읽어봤다. 어용(御用) 사법부가 아닌 이상 김경수 지사는 무죄가 될 수 없었다. 객관적 물증이 너무 확실한 데다 정황 증거와 공모자의 진술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물론 법정 구속에 대해선 이견(異見)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전직(前職) 대통령 두 명도 구속 재판을 받고 있는 세상이다.

    여당과 지지 세력이 김경수 지사 문제로 며칠째 사법부를 공개 협박하고 난리 칠 일은 분명 아니었다. 진영 논리가 아닌 사실 관계를 따져보면 달라진다. 김 지사 한 명의 구속으로 일단 그쳤으니 운(運)이 참 좋았구나 여기게 될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이었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파탄을 맞았을 게 틀림없다. 특히 현 정권은 허익범 특검팀에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특검 수사 결과 기록을 한 번이라도 읽어 봤으면 이 말의 뜻을 알 것이다. 이미 제기된 의혹에 대해 마지 못해 수사 시늉을 한 것 같은 대목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가령 2017년 4월 더불어민주당 경선 현장에서 김정숙 여사가 상기된 목소리로 "경인선도 가야지, 경인선에 가자"라며 이동하는 동영상 관련 조사가 그렇다. 선거운동의 한 축을 담당한 김 여사도 '드루킹과 경공모의 인터넷 여론 조작 활동을 알고 있어서 살뜰하게 챙기는 걸까'하는 의혹이 이 동영상으로 제기됐다.

    이런 의혹을 조사하라고 어렵게 특검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특검은 다음과 같은 수사 결론을 내놓았다. "당시 후보의 배우자가 지지 그룹인 '경인선' 등과 인사하고 같이 사진 찍은 사실만 확인되나 이는 불법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세간에서 제기된 의혹은 '김 여사가 이 그룹들의 불법 활동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을까?'인데, 특검은 '인사하고 같이 사진 찍은 것은 불법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답한 것이다. 이런 동문서답이 없다. 아예 '불경한' 조사를 할 엄두가 안 나서 특검의 생각만 적어놓은 것이다. 이왕 봐주려면 수사 기록이라도 '김 여사님은 이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는 식이어야 했다.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일정을 총괄했던 송인배씨에 대한 참고인 조사 결과도 그렇다. 정권이 출범하면서 소위 '문고리'라는 청와대 제1 부속비서관을 지낸 사람이다. 그는 대선을 앞두고 다섯 차례 드루킹을 만났다. 당시 김경수 의원에게 드루킹을 소개해준 인물이기도 하다.

    특검은 그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지만 '연결 고리' 의혹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다. 그가 어떻게 드루킹을 만났고, 왜 김경수 의원에게 소개했으며, 문재인 후보나 김정숙 여사에게 드루킹 존재를 보고했는지 여부가 그와 관련된 쟁점 의혹이다. 이에 관해 형식적으로나마 묻기는 했을까. 수사 결과 기록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그가 드루킹 측으로부터 200만원 받은 게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보여 검찰로 이관했다는 내용만 몇 줄 적혀 있을 뿐이다.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은 '드루킹 사건'이 터지고 난 뒤 청와대의 '수상한 대응'과 관련된 인물이다. 드루킹의 댓글 조작 사무실이 예기치 않게 압수 수색되고 드루킹까지 구속됐을 때였다. 그는 드루킹이 그전에 오사카 총영사로 추천한 모 변호사를 불러내 만났다. 하필 그 시점에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왜 드루킹과 연결된 사람을 만나 보려고 했을까. 이 때문에 청와대 연루 의혹이 제기됐다.

    특검은 백원우 비서관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하지만 수사 결과 기록에는 '사안을 은폐 시도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고. 그렇게 만난 게 직권남용 혐의가 되는지 모르겠으나 이는 특검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마치 청와대 실세의 결백을 공식 입증해주기 위해 참고인으로 부른 것 같은 인상을 줬다.

    서슬 퍼런 '촛불 정권' 초기에 특검 수사의 한계는 예정돼 있었다. 당초 대한변협이 특검으로 추천할 변호사를 찾을 때 다들 거절해 애를 먹었다. 특검에서 일선 검사나 수사관들의 파견을 받는데 서로 오려고 하지 않았다. 현 정권에서 낙인이 찍힐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특검팀 내부에서는 이견이 표출됐고 수사 열의도 썩 높지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 김경수 지사의 유죄 입증으로 특검의 체면은 세웠다.

    만약 특검이 시절을 잘 만나 현 정권의 검찰처럼 '적폐 수사'하듯 관련자들을 다뤘으면 지금 길거리를 활보할 이가 몇이나 남았겠나. 김 지사 한 명의 구속에 고마워해야 할 따름이다. 그런데도 "사법 개혁을 제대로 안 해 사법 농단에 관여됐던 판사들이 아직도 법대(法臺)에 앉아 있다" "국민이 사법부를 압박해야겠다는 의견도 있다" "감히 촛불 혁명으로 당선된 대통령을 대선 불복으로 대한다는 말인가"라며 기세등등한 여당과 지지 세력을 보면 '세상을 자기 위주로 편하게 살아왔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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