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北 폐기 '영변'에 우라늄 시설 포함돼야만 의미 있다

조선일보
입력 2019.02.08 03:18

작년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미국이 상응 조치를 내놓을 경우 영변 핵 시설을 영구 폐기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래서 미국은 27~28일 베트남에서 열릴 2차 회담에서 북한으로부터 영변 핵 시설 폐기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을 받아내는 것을 일차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영변 핵 시설'이 무엇을 뜻하는지가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영변 핵 시설에는 390개의 건물이 있다. 고농축 우라늄 생산 시설도 있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플루토늄 생산 시설이다. 1993년 1차 북핵 위기 때 미·북 협상의 초점은 영변의 플루토늄 시설을 동결하고 궁극적으로 폐기하는 데 맞춰졌다.

그러나 북한이 2010년 영변을 방문한 미국 헤커 박사에게 2000개 원심분리기로 구성된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하면서 북핵 사태의 중심은 플루토늄에서 우라늄으로 옮아갔다. 이 시설은 연간 40kg의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는 반면, 영변 원자로의 연간 플루토늄 생산량은 5~7kg에 불과하다. 더구나 북은 영변 우라늄 시설의 규모를 두 배 이상으로 키웠다고 한다. 북이 영변 아닌 곳에 최소한 1개 이상의 비밀 우라늄 시설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이 영변 우라늄 시설을 외부에 보여준 것 자체가 다른 비밀 시설들이 완공됐다는 의미일 수 있다. 플루토늄 시설이 재래식 수공업이라면 농축 우라늄 시설은 현대식 기계공업이다. 북은 지난 사반세기에 걸친 핵 협상 과정에서 한 번도 우라늄 농축 시설을 대상으로 거론한 적이 없다.

북 핵탄두가 하나만 남아도 우리의 핵 인질 신세는 변하지 않는다. 북핵 폐기는 영변은 물론 영변 밖 비밀시설에 산재해 있는 고농축 우라늄 생산 시설과 이미 확보해 놓은 핵무기와 핵 물질, 그리고 핵무기를 실어 나를 수 있는 미사일을 모두 없애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나머지는 눈속임일 뿐이다.

영변 핵 시설 전체 폐기라면 비핵화 첫 단추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미 고철이 돼버린 원자로 하나를 없애는 대가로 보상을 주는 것이라면 또 다른 사기극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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