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 성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일 법정 구속된 것은 항소심(2심) 재판부가 '성인지(性認知) 감수성'이라는 기준으로 이 사건을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작년 4월 한 대학교수의 여제자 성희롱 사건을 선고하면서 이 말을 썼다. 이 용어의 핵심 의미는 '피해 여성의 특수한 사정을 최대한 살피라'는 것이다.
안 전 지사에게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는 김지은씨는 2017년 7월 첫 피해 발생 후 안 전 지사가 좋아하는 순두부집을 물색하고 같이 와인바를 갔다. 1심은 이런 김씨의 모습이 일반적인 피해 여성의 행동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이런 해석을 "편협한 관점"이라고 일축했다. 성범죄 발생 후 피해 여성의 성격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행동이 나올 수 있는데 이런 피해자의 '특수 사정'을 전혀 감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씨가 안 전 지사의 위세에 눌려 문제 삼을 엄두를 못 냈다면 이런 행동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고 단정하면 안 된다는 취지였다.
안 전 지사 사건은 성범죄에 대한 법원 판단이 크게 변하고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법원은 그동안 피해 여성이 사건 발생 후 '상식적 행동'을 하지 않은 경우 안 전 지사의 1심처럼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대법원이 지난해 '성인지 감수성'을 제시한 시점을 전후해 이런 판결이 뒤집히는 사례가 늘고 있다.
김모(21)씨는 지난해 1월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합석한 여성을 인근 3층 건물 옥상으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선 무죄가 났다. 두 사람이 손 잡고 나오는 녹화 영상, 범행 도중 여성의 웃음소리가 녹음된 파일이 나왔는데 일반적인 피해 여성의 모습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심은 가해자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피해 진술이 일관성 있고 구체적"이라고 했다. "범행 현장을 침착하게 벗어나기 위해 손을 잡은 것이고, 갑자기 성폭행을 당해 황당하고 어이없어 웃었다"는 여성의 말을 받아들였다.
'성인지 감수성'은 논란의 소지도 적지 않다. 자칫 객관적인 상황보다 피해자의 진술에 지나치게 비중을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용어의 의미가 모호해 재판 기준으로 삼기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