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 스토리] 로저 스톤, 그의 입에 트럼프 왕좌가 흔들린다

입력 2019.02.02 09:00

‘워터게이트가 낳고 트럼프가 완성한 남자’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새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비공식 참모를 지낸 로저 스톤이 미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됐다. 러시아의 2016년 미 대선 개입 의혹인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 중인 로버트 뮬러 특검이 그를 기소했기 때문이다.

워싱턴에서 스톤은 유력한 정치 자문가인 동시에 ‘더러운 사기꾼’으로 통한다. 40여 년 간 막후에서 미 정치계를 뒤흔든 그는 "완전한 무명보다는 악명이 높은 게 낫다" "공격, 공격, 공격 뿐, 절대 방어하지 말라" 등 신조에 따라 공격적인 흑색 선전과 권모술수를 주도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일한 워싱턴 정계의 유력 정치 자문가 로저 스톤. /비즈니스인사이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일한 워싱턴 정계의 유력 정치 자문가 로저 스톤. /비즈니스인사이더
스톤은 유별난 부동산 재벌에 불과했던 트럼프를 미 정계의 중심으로 이끈 장본인이기도 하다. 스톤은 트럼프와 30여 년 간 관계를 이어오며 선거 출마를 독려해왔다. 트럼프가 대선 출마를 결심하고 캠프를 꾸린 이후에는 네거티브 전략을 밀어붙이며 그의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대선 기간 트럼프 대통령의 도발적 언행들은 치밀하게 계산된 스톤의 전략에 따른 것이라는 뒷말이 나올 정도였다.

대선 당시 스톤의 행보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킹메이커 로저 스톤’의 모건 페흐머 감독은 미 공영라디오 NPR방송과 인터뷰에서 "로저 스톤은 정치적 ‘암흑 예술’의 전문가"라며 "만약 당신이 부도덕하고 지저분한 일을 하고 싶다면 로저는 당신의 사람"이라고 말했다.

결국 트럼프를 대통령 자리에 올려놓으며 성공한 킹메이커가 된 스톤. 그러나 지금 그는 미 정계를 뒤흔들고 있는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의 중심에 섰다. 뮬러 특검은 스톤에게 관련 혐의 7개를 적용하고 그를 재판에 넘겼다. 일각에서는 스톤의 기소에 대해 ‘러시아 스캔들의 잃어버린 조각을 찾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를 권좌에 올려놓았던 스톤의 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워싱턴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 ‘러시아 스캔들’ 관련 7개 혐의로 기소…스톤의 입, 트럼프 권좌 지켜낼까
스톤은 지난달 25일 플로리다 포트로더데일 자택에서 FBI에 체포됐다. 뮬러 특검이 이날 공개한 기소장에 따르면, 스톤은 2016년 대선 당시 논란이 됐던 민주당 이메일 해킹 사태와 관련해 위증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미 국가정보국(DNI)은 당시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1만9000여 건의 클린턴 대선 캠프 내부 이메일이 러시아군 총정보국 등이 해킹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뮬러 특검은 스톤이 어산지나 러시아 정보요원들과 공모했다고 보지는 않았다. 다만 수사에 혼선을 준 스톤에게 공무집행 방해 1건, 위증 5건, 증인 위협 1건 등 7개 혐의를 적용했다.

특검은 스톤이 트럼프 진영 고위 관계자 지시로 ‘조직 1’과 조직의 ‘책임자’와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으며 이메일에 대한 정보를 줬다고 설명했다. ‘조직 1’은 폭로 사이트 위키리크스, ‘책임자’는 위키리크스 창립자인 줄리언 어산지로 추정된다. 이들은 해당 이메일 내용이 트럼프의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 캠프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소장에 따르면, 스톤은 2016년 대선 의혹과 관련해 2017년 5월부터 12월까지 이뤄진 의회의 조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스톤은 그 해 9월 미 하원정보위원회(HPSCI) 청문회에서 의회가 요구한 서류가 없다고 거짓말하고, 위키리크스와 접촉을 부인했다. 또 다른 증인에게 거짓 증언을 강요하거나 증언을 하지 않도록 회유하기도 했다.

로저 스톤이 2019년 1월 25일 플로리다주의 포트 로더데일 연방법원을 나서며 기자들에게 소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로저 스톤이 2019년 1월 25일 플로리다주의 포트 로더데일 연방법원을 나서며 기자들에게 소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뮬러 특검의 수사가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가운데, 워싱턴은 스톤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스톤에게 위키리크스와의 접촉을 지시한 ‘고위 관계자’가 트럼프 대통령으로 밝혀질 경우, 러시아와의 접촉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검은 2월 중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한 최종 수사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2017년 5월부터 계속된 수사 과정에서 스톤, 매너포트를 비롯한 개인 34명과 기관 3곳이 기소됐다.

스톤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뮬러 특검이 ‘트럼프의 가장 충성스러운 추종자’로 평가받는 스톤의 입을 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체포 직후 보석금 25만달러를 내고 석방된 스톤은 "유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해가 되는 증언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정당한 정치활동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플리바겐(형량 감경 협상) 의사가 없다는 입장도 밝혔다. 지난달 29일 열린 첫 공판에서도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백악관은 스톤의 혐의에 대해 선을 그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25일 CNN과 인터뷰에서 "스톤의 혐의는 대통령이나 백악관과 관계없다"며 "이런 일이 계속될수록 대통령과는 어떤 관련도 없다는 걸 분명히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톤이 체포된 후 트위터를 통해 "공모는 없었다!"며 "특검의 수사는 희대의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했다.

◇ ‘닉슨 얼굴’을 등에 새긴 소년 "무명보다 악명이 낫다"

스톤은 1952년 미 코네티컷주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역지 기자인 어머니와 사업가였던 아버지는 모두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으며 존 F 케네디의 지지자였다. 부모님의 영향을 받은 스톤 역시 케네디를 지지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권모술수에 능했다. 초등학생이었던 스톤은 학교에 케네디의 경쟁자인 닉슨에 관한 허위 소문을 퍼뜨리곤 했다. 스톤은 후에 "그것은 나의 첫 번째 정치적 속임수였다"고 했다.

스톤의 정치 성향은 우연히 접하게 된 보수주의 관련 책을 읽고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닉슨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가 됐다. 스톤은 미 주간지 뉴요커와 인터뷰에서 "닉슨 대통령의 강인함과 파괴력에 매료됐다"고 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등에 닉슨 대통령의 얼굴을 문신하기까지 했다.

스톤은 조지워싱턴대 재학생이었던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재선 캠프에서 일하며 정계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그 해, 미국 최악의 정치 스캔들로 여겨지는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졌다. 당시 19세에 불과했던 스톤은 비자금을 받은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다. 스톤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최연소 연루자’라는 수식어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겼다. ‘도덕성’ 보다는 ‘화제성’을 중요시한 것이다. "무명보다는 악명이 낫다" "아무것도 인정하지 말라, 모든 것을 부정하고 반격하라" 등 그의 정치 신조가 이때부터 자리잡기 시작했다.

로저 스톤 등에 리처드 새겨진 닉슨 전 대통령 얼굴 문신. /뉴요커
로저 스톤 등에 리처드 새겨진 닉슨 전 대통령 얼굴 문신. /뉴요커
스톤은 이후 본격적으로 정치 자문가로서 커리어를 쌓았다. 1976년 로널드 레이건 대선 캠프에 몸담은 후 1977년 전국청년공화당 회장을 거쳤다. 1980년에는 레이건 캠프에서 만난 폴 매너포트, 찰리 매너포트와 함께 정치 컨설팅·로비회사인 ‘블랙, 매너포트&스톤’을 창립했다. 이들은 돈과 권력,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제3세계 독재자들도 기꺼이 고객으로 받아들였다. 막대한 부를 쌓은 세 사람은 1990년 사업을 정리했다. 워싱턴의 거물이 된 스톤은 이후에도 다양한 선거 캠프에서 미 정치판을 흔들었다.

◇ 도널드 트럼프를 백악관에 입성시킨 ‘킹메이커’

스톤은 블랙, 매너포트&스톤의 고객으로 트럼프를 처음 만났다. 당시 트럼프는 뉴욕 카지노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스톤을 로비스트로 고용했다. 일찍이 트럼프에게서 가능성을 본 스톤은 트럼프를 워싱턴 중심으로 이끌었다. 1987년부터는 대선 출마를 독려하기 시작했다. 이후 트럼프는 언론 인터뷰에서 공화당의 개혁을 주장하고 정치적 소신을 언급하는 등 차기 대선 주자로서 행보를 내비쳤다.

결국 2015년 트럼프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스톤은 트럼프 캠프의 매니저로 활약했다. 공식적인 직함은 없었지만 사실상 트럼프 대선 캠프의 모든 전략이 그에게서 나왔다고 할 정도였다. 스톤은 측근인 매너포트를 트럼프의 선거대책위원장에 앉히고 막후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로저 스톤(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젊은 시절 모습. /유튜브
로저 스톤(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젊은 시절 모습. /유튜브
그는 공화당 경선에서부터 트럼프의 경쟁자들에 대한 흑색 선전을 쏟아냈다. ‘클린턴 부부의 여자들과의 전쟁(The Clintons’ War on Women)’이라는 책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성범죄자로 표현하는가 하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출생지 의혹을 퍼뜨렸다. 2016년 대선은 미 정치 역사상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톤은 또 미국 제조업 몰락의 상징이었던 러스트벨트(Rust Belt·미국 북동부 쇠락한 공업지대) 지역의 표심을 얻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 전략을 통해 트럼프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트럼프를 백악관에 들여놓은 스톤은 ‘성공한 킹메이커’로 자리매김하는 듯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선캠프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며 그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 2016년 미 대선 당시 ‘러시아 내통 의혹’을 수사 중인 뮬러 특검은 트럼프 대선캠프의 유력 인사들을 연이어 기소했다. ABC뉴스에 따르면, 수사 과정에서 체포된 매너포트가 특검에 협조한 이후 스톤의 이름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특검이 지금까지 기소한 건수는 개인 33명, 기관 3곳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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