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물증 없다"는데… 판결문엔 증거목록만 20쪽

조선일보
입력 2019.02.01 03:12

[김경수 법정구속] 170쪽 1심 판결문 살펴보니

재판부가 든 주요 증거

지난 대선 전 댓글 조작 혐의로 김경수 경남지사를 법정 구속한 판결에 대해 여권은 "짜맞추기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김 지사도 "특검의 물증 없는 주장과 드루킹 일당의 거짓 자백에 의존한 판결"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권 실세인 김 지사를 법정 구속까지 하려면 객관적인 증거 없이는 하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이 사건 재판부도 "진술과 객관적 증거에 의해 유죄가 인정된다"고 했다. 실제 31일 공개된 김 지사에 대한 170쪽의 판결문을 보면 '드루킹 휴대폰 포렌식(디지털 증거 분석) 결과' 등 증거 목록만 총 20쪽에 달했다. 그중 법정 진술·피의자 신문조서 등 사람의 말에 기초한 진술 증거는 한 쪽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두 재판부가 강조한 '객관적 증거'였다.

판결문을 보면 실제 그런 증거가 많이 등장한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김 지사가 2016년 11월 9일 드루킹 김동원씨의 파주 사무실을 방문해 댓글 조작 프로그램인 '킹크랩' 시연을 봤느냐였다. 김 지사는 줄곧 "사무실에 간 것은 맞지만 킹크랩 시연은 못 봤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김 지사가 사무실에 간 것으로 추정되는 이날 저녁 8시 7분부터 23분까지의 포털사이트 접속 내역을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특정 아이디가 휴대폰으로 네이버에 로그인한 뒤 메인 화면으로 이동한다. 이후 "20살 정도 차이에 반말…측근이 본 최순실-고영태"라는 제목의 2016년 10월 19일 기사로 이동한 후 '좋아요' 및 '공감' 버튼을 클릭한 후 접속 기록을 삭제하는 작업을 했다. 총 3개의 아이디에 의해 이런 작업이 약 16분간 반복적으로 이뤄졌다. 이런 로그 내역과 시연 동영상은 "2016년 10월 말 라오스에 거주하는 경공모(경제적 공진화 모임) 회원으로부터 아이디 세 개를 받아 프로그램을 개발해 김 지사 방문 때 시연했다"는 드루킹 측근 우모씨의 진술과 정확히 일치했다. 경공모는 댓글 작업을 주도한 조직이다.

김 지사가 댓글 조작을 알고 있었는지도 핵심 쟁점이었다. 드루킹은 김 지사에게 소셜미디어 비밀대화방으로 '네이버 댓글이 수도권의 여론을 좌우하므로 킹크랩으로 대응해야 한다' '킹크랩 완성도는 98%' 등의 온라인 정보보고를 보냈다. 김 지사는 법정에서 "그런 내용을 확인하지 않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이 내용들은 김 지사의 설정에 따라 수신 하루 내지 일주일 만에 자동으로 삭제됐고, 일부가 드루킹의 캡처 등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자동삭제 기능은 수신자가 메시지를 읽어야 작동하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런 증거들을 근거로 김 지사가 킹크랩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봤다.

지난해 2월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한 댓글 알바 매뉴얼이 유출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직후 김 지사가 보인 태도도 유죄 증거가 됐다. 김 지사는 보도 직후 보좌관에게 "드루킹에게 확인해 보라"고 지시했고, 텔레그램 대화방 자체를 삭제했다고 한다. 재판부는 "킹크랩 범행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기사만 보고 곧바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킹크랩을 이용한 댓글 조작이 들통날까 봐 바로 확인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김 지사는 드루킹에 대해 "수많은 지지자 중 하나"라고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김 지사와 드루킹은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었으며 이를 통해 김 지사가 범행에 관여했다"고 했다. 실제 두 사람 사이에는 당시 정치적 이슈에 대한 분석과 의견이 오가기도 했다. 드루킹이 보안성이 높은 소셜미디어 시그널을 통해 보낸 '공동체(경공모)를 통한 재벌개혁 계획보고'는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의 기조연설에 반영되기도 했다. 김 지사는 비밀대화방을 통해 기조연설 내용을 드루킹에게 보내며 반응을 물었고, 드루킹은 '직접 (경공모 회원들에게) 와서 들어 보시라'고 답했다. 이런 긴밀한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김 지사가 범행 전반을 지배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판결문을 본 한 판사는 "물적 증거와 진술이 상당히 촘촘하다"며 "김 지사 측이 항소심에서 뒤집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