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의 사법부 공격에 침묵하는 김명수

조선일보
입력 2019.02.01 03:07 | 수정 2019.02.01 06:52

변호사 단체 "與, 삼권분립 침해"… 정작 대법원은 어떤 입장도 안내

3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현관 앞은 기자들로 북적였다. 전날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한 성창호 부장판사를 여당이 "적폐 판사의 보복 판결" "탄핵을 검토해야 한다"고 공격한 것에 대한 김명수 대법원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서였다. 김 대법원장이 승용차에서 내리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사법부 인적 청산 얘기가 여당에서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 기자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김 대법원장은 사라졌다. 아무 말 없이 빠른 걸음으로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대법원도 이날 어떤 입장도 내지 않았다.

여당의 공세에 맞선 곳은 변호사 단체였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날 논평을 내고 "특정 법관을 (과도하게) 비난하는 것은, 법관의 독립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반도 인권 통일 변호사 모임도 "집권 여당의 공격은 삼권 분립을 침해하는 반헌법적 행태로 독재 정권적 시각을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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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퇴근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한 성창호 부장판사와 관련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태경 기자

일선 판사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장이 한마디도 안 하는 게 기가 막힌다" "마치 불구경하는 것 같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 이래 '법관 독립'을 유난히 강조해왔다. 그는 2017년 9월 취임사에서 "대법원장으로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겠다"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작년 6월엔 "(재판 거래 의혹의) 외관을 꾸며내는 행위만으로도 사법부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라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검찰로 넘겼다. 외부에 재판 독립이 무너진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산 것만으로도 잘못이라는 것이다.

여당은 현재 김경수 지사가 실형 선고를 받은 건 해당 판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친분이 있는 '적폐 판사'였기 때문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깡그리 무시하는 말이다. 그런데 '법관 독립'에 결벽증적 태도를 보였던 김 대법원장은 입을 다물고 있다.

그의 침묵은 잦았다. 여당이 지난해 탄핵 대상 판사들을 실명으로 거론할 때도, 여당이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을 담당할 특별재판부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도 그는 말이 없었다.

일선 판사들은 이날 판사 전용 인터넷 익명 게시판에서 불만을 쏟아냈다. 게시판엔 '집권 여당의 판사 공격,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이 필요한 상황 아닌가'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에는 작년 11월 존 로버츠 미 연방대법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공개 비판한 기사 등이 포함돼 있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제9연방순회법원 존 티거 판사를 "오바마 판사"라고 비난했었다. 티거 판사는 중남미 이민자들의 망명 신청을 금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효력을 일시 중지시킨 판사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2년 임명했다.

이에 대해 로버츠 대법원장은 성명을 내고 "우리에겐 '오바마 판사'나 '트럼프 판사' '부시 판사' '클린턴 판사'는 없다. 모든 이에게 공평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헌신적인 판사라는 집단만 존재할 뿐"이라고 했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김 대법원장이 정부·여당의 비난에 동의하기 때문에 아무 말 않는 것 아니냐고 외부에 비칠 가능성이 크다"며 "그의 침묵이 사법 신뢰를 크게 훼손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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