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괴담' 때문에… 미국서도 홍역 확산

입력 2019.01.31 03:00

2000년 완전 퇴치국 됐지만 작년이어 올들어 환자 급증
워싱턴州는 비상사태 선포

'홍역 완전 퇴치 국가'로 분류됐던 미국에 작년에 이어 올 들어 홍역 환자가 급증하면서 홍역이 '아웃 브레이크(대유행)' 국면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백신이 아이들에게 해롭다'는 '백신 괴담'을 홍역 창궐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미 워싱턴주는 지난 28일(현지 시각) 홍역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워싱턴주 남부 클라크카운티에서 최근 35명의 홍역 환자가 집단 발생한 데 따른 것이다. 환자 중 1명을 제외한 나머지 34명은 영유아 환자이고, 이들은 모두 백신을 맞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워싱턴주 보건 당국은 "홍역은 영유아에게 치명적인 고감염성 질병"이라며 "다른 지역으로 급속히 번질 수 있는 위험한 공중 보건 상태"라고 밝혔다.

워싱턴주뿐이 아니다. 지난해 말부터 뉴욕주에서만 200건이 넘는 홍역 감염 사례가 보고됐고, 뉴저지주·포틀랜드주 등에서도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올 들어 지금까지 미국 전역에서 300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했다.

미 보건 당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WHO(세계보건기구)는 2000년 미국을 '홍역 완전 퇴치' 국가로 분류했다. 매년 여행객 등 외부 유입에 의한 30~40건 정도의 감염 사례만 보고됐을 뿐이다. 그러다 작년 갑자기 26개 주에서 350여명의 홍역 환자가 발생했다. 올해는 불과 한 달도 안 돼 작년 수준에 맞먹는 환자가 발생했다.

과학 전문지 파퓰러사이언스는 "20년도 안 돼 홍역이 다시 활개를 치게 된 것은 학부모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진 '백신 괴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백신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위해가 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아이들에게 백신을 맞히지 않은 학부모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LA타임스는 "(집단 감염이 발생한) 클라크카운티의 경우, 유치원 학생의 76.5%만이 백신을 맞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백신이 예방 효과를 내려면 집단 내 95% 이상이 맞아야 하며 그 이하로 떨어질 경우 특정 시점에 전염병이 크게 퍼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백신 공포는 1998년 영국의 앤드루 웨이크필드라는 의사가 홍역·볼거리·풍진 등을 동시에 예방하는 'MMR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를 의학 전문지 '랜싯'에 게재하면서 불거졌다. 이후 이 연구는 데이터가 조작된 데다 자의적인 해석 때문에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연구 결과가 거짓으로 밝혀진 상태에서도 '백신 괴담'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조차 2014년부터 트위터에 "백신이 자폐증 위험을 높인다"는 글을 여러 차례 올렸다. 심지어 백신 반대론자들은 백신이 자폐증은 물론 암, 당뇨병을 유발한다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하지만 과학계에서는 백신의 효과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홍역 백신의 경우 1회 접종만으로도 93%의 예방 효과가 있고, 2회 접종하면 거의 완벽히 홍역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수많은 연구로 입증돼 있다. 반대로 백신 접종으로 부작용이나 질병이 발생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다.

그럼에도 한국의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모임처럼 비과학적인 맹신자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WHO가 올해 세계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10대 요인의 하나로 '백신 거부'를 꼽았을 정도다. 유럽에서도 홍역 예방접종률이 85%를 밑돌고 있으며 접종률이 계속 떨어지는 추세이다. 프랑스는 지난해에만 3000명의 홍역 환자가 발생했고, 이탈리아에서도 2500여명이 감염됐다. 이탈리아에서는 최근 10개 백신 접종 의무화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현 여권이 총선에서 승리한 뒤 실제 법안을 제정하자 월터 리치아디 국립보건원장이 반발해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난해 이탈리아 홍역 감염자는 2017년에 비해 6배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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