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뉴스 읽기] 목포 시민들 "선동열·박지원 건드려도 욕 안먹는 외지인, 손혜원뿐일 것"

조선일보
  • 한현우 논설위원
    입력 2019.01.31 03:14

    목포는 왜 손혜원에 관대한가

    한현우 논설위원
    한현우 논설위원
    평일 낮 목포 구도심은 한산했다. 손혜원 의원이 차명 투기 의혹을 받는 바로 그 거리다. 손 의원 조카의 게스트하우스와 또 다른 조카의 카페를 잇는 거리의 상가 절반가량이 영업을 하지 않았다.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된 유달동·만호동 전체가 비슷했다.

    지난 24일 찾아간 이곳에서 주민들은 걱정과 희망을 동시에 말했다. 6년째 이곳에서 장사하고 있는 호프집 주인 최모(여·60)씨는 가게를 6월 말 비워줘야 한다. 건물주가 재작년 말 서울 사람으로 바뀌고 건물은 등록문화재가 됐다. 새 건물주는 리모델링을 한다며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최씨는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나가라니 막막하다"고 말했다. 근처 수퍼마켓 주인 정모(80)씨는 "손혜원 의원 때문에 떠들썩해지니까 집주인들 태도가 바뀌었다"며 "자신이 직접 장사하겠다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이곳에서 100여m 떨어진 목포역 근처 상인 김모(57)씨는 "문화재 거리가 활성화되면 관광객들이 목포역에 많이 올 것"이라며 "이쪽 상권에도 훈풍이 불 것 같다"고 말했다.

    ◇"땅값 10분의 1 될 때까지 정치권이 뭘 했느냐"

    그러나 목포에서 손 의원을 대놓고 비난하는 사람은 보기 어려웠다. 앞서 손 의원의 투기 의혹을 제기하며 대립했던 시민단체 대표는 인터뷰를 사양했다. "더 이상 말하면 목포 시민들끼리 갈등이 생긴 것처럼 비칠 것 같다"고 했다. 정치권을 비난하는 사람은 많았다. 김병진(73) 만호동 9통장은 자유한국당 의원이 '목포는 호구'라고 한 데 대해 "참말로 뭔 말을 그렇게 하느냐"며 "주민들이 그 말 한마디에 난리가 났다"고 말했다. 25일 구도심에서 열린 주민 토론회에서 최기동 전 목포시의회 의장은 "목포 땅값이 평당 2000만원에서 200만원 될 때까지 정치인 누가 관심을 가졌느냐"며 "손혜원이란 사람이 여기 오면서 목포가 환해지고 사람 다니게 되면 좋은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이제 땅값 조금 올라가려고 하는데… 투기인지 아닌지는 정치권에서 조용히 따지라"고 했다. 구도심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김은주씨는 만호동에서 태어나 자라고 아들딸도 거기서 키웠다. 그는 "구도심이 근대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국비를 지원받아 사업이 시작된다고 하니까 주민들은 다시 오지 않을 기회로 생각한다"며 "이 간절한 소망이 정쟁에 휘말려 잘못될까 봐 얼마나 안타깝고 가슴 아픈지 모른다"고 말했다.

    목포 구도심에서 가장 번화한 곳인 목포 오거리 전경.
    목포 구도심에서 가장 번화한 곳인 목포 오거리 전경.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서울 명동처럼 붐비고 활기찼으나 하당 신도시가 생기면서 저녁엔 인적마저 드문 곳이 됐다. /목포=한현우 기자
    ◇"손혜원도 외지인이지만… 일단 믿어보자"

    목포 시민들이 손혜원 의원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것은 우선 "목포의 가치를 알아봐 줬기 때문"이다. 설령 투기라 해도 목포의 근대문화유산에 정치인이 주목한 사실이 고맙다는 것이다. 또 투기 논란 때문에 구도심이 대단한 투자처인 것처럼 알려지면 외지인들이 몰려 땅값이 오르면서 애초 예산과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손 의원도 외지인이고 부동산 여러 채를 차명 투자한 의혹을 받는다. 목포 시민들도 처음에는 손 의원을 의문스럽게 봤다고 한다. 그러나 창성장이나 조카가 직접 운영하는 카페가 도시 재생의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자신도 나전칠기박물관을 목포로 옮겨온다니 일단 믿어보자는 분위기다. 한 목포 시민은 "호남의 영웅 선동열을 건드리고 목포가 지역구인 박지원 의원과 맞붙은 사람이 여기서 욕먹지 않는 건 굉장히 특이한 일"이라고 말했다.

    '근대역사문화공간' 자문위원으로 공간 구획에 참여한 목포대 사학과 최성환 교수는 "그 지역은 옛 일본영사관(현 목포근대역사관 본관), 목포진(鎭), 옛 동양척식회사(현 목포근대역사관 2관), 이훈동 정원 같은 문화재들이 있어서 고도 제한을 비롯해 갖가지 난개발 방지 장치가 있다"며 "재생사업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를 수는 있겠지만 한계가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은 "이미 목포 사람들이 해오던 사업에 자기 친인척을 끼워넣은 게 뒤늦게 드러나면서 이 난리가 난 것 아니냐"며 "국회의원이 집을 여러 채 사는데 투기꾼들이 몰리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목포 시민과 먼저 상의했다면 오해 없었을 것"

    손혜원 의원 조카가 공동 명의자인 게스트하우스‘창성장’앞 거리는 평일 대낮에도 행인이 드물고 문 닫은 상점이 많았다.
    손혜원 의원 조카가 공동 명의자인 게스트하우스‘창성장’앞 거리는 평일 대낮에도 행인이 드물고 문 닫은 상점이 많았다. /목포=한현우 기자
    그간 목포 도시재생사업은 목포 시민들이 국비 지원 없이 해왔다. 이 시민운동은 1999년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이 철거 위기에 몰리면서 본격화했다. 해군 헌병대로 쓰다가 비어 있던 이 건물이 청소년 우범 공간으로 변하면서 민원이 이어지자 목포시가 헐어버리기로 했다. 시민단체들은 그러나 1921년 건축된 이 석조건물은 일제 수탈의 상징이므로 교육용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보존 결정을 얻어냈다. 현재 이 건물은 근대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2003년엔 목포 최초로 조선인들이 세운 교회인 죽동교회 철거 반대 투쟁이 있었다. 1935년 세워진 이 건물을 목포시가 헐고 소방도로를 내겠다고 했다. 투쟁이 7개월을 넘기면서 근대 문화유산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결국 이 건물은 원인 모를 불이 난 뒤 철거됐지만, 시민들은 투쟁 자체에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2007년 옛 번화가인 목포 오거리 근처 일본식 사찰인 동본원사(東本願寺)를 지킨 것도 목포 시민의 자랑이다. 목포시는 이 건물을 허물고 주차타워를 세우려고 했으나 군산의 일본식 사찰 동국사처럼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시민들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살아남은 이 건물은 현재 구도심의 명물로 여행객 방문 코스가 됐다.

    목포시는 지난 2017년에도 구도심 목원동 일대의 재생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이 사업은 초기부터 그 방향과 방식에 대한 논란이 많았고 결국 별 효과를 보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년에 문화재로 지정돼 올해 국비 55억원을 지원받는 '근대역사문화공간'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유독 큰 것은 이 때문이다. 최성환 교수는 "시민단체에서 100번 말해 봐야 될까 말까 한 일을 현직 국회의원 한 명이 혼자 하는 걸 보고 그 영향력을 새삼 실감했다"며 "다만 구도심 공간 활용에 대한 목포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먼저 구했더라면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뻘밭 메워 일본인 마을 세운 게 목포의 시작… 구도심, 90년대까지만 해도 명동 뺨치는 활기]

    목포는 예로부터 전라도에서 배로 서울이나 영남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으로 '길목의 포구'란 이름이라는 게 정설이다. 1897년 10월 1일 개항 당시 목포는 무안군 목포진 주변을 말했다. 이곳에 각국 공동 거류지가 정해졌고 그 개발은 일본이 주도했다.

    무분별한 개발로 철거될 뻔했던 일본식 사찰 동본원사.
    무분별한 개발로 철거될 뻔했던 일본식 사찰 동본원사. 지난 2007년 헐고 주차 타워를 세우려던 것을 목포 시민들이 막아냈다. 현재 문화 센터로 운영 중이다. /목포=한현우 기자
    당시 목포진 주변은 돌밭 아니면 뻘이어서 일본인들은 방조제를 세우고 뻘을 매립해 땅을 다졌다. 그 위에 격자형 도로를 내고 주택과 건물들을 지었다. 이후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탈하면서 이 도시는 자연스레 일본인 마을이 됐다. 이곳이 요즘 전국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목포의 '근대역사문화공간' 즉 유달동·만호동 일대다. 목포의 근대 건축 유산이 대부분 일본식 건물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개항 이후 목포로 몰려든 조선인들은 뻘밭과 돌산 외에 살 만한 곳이 없자 공동묘지에서 주인 없는 무덤들을 대거 이장하고 그 위에 터를 잡았다. 2017년 도시재생사업을 벌인 목원동 일대가 여기 포함된다. 1960년대 들어 도시 개발 계획을 본격 시작한 목포는 산정·용당동 지구와 하당 지구 개발 계획까지 이미 그때 마련했다. 그러나 그 시행에는 무척 긴 세월이 걸려 산정·용당동 지구는 1985년 말에야 완공됐다. 2000년대 들어 구도심 동쪽 하당지구 개발이 끝나 신도심으로 부상하면서 구도심은 급속히 쇠락의 길을 걸었다. 목포대 최성환 교수는 "1990년대 후반만 해도 구도심 오거리는 서울 명동처럼 붐비고 활기찼던 곳"이라며 "그만큼 구도심 주민들이 도시재생사업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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