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별것 아냐…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세상 바꿀 수 있다오"

입력 2019.01.29 03:01

인터뷰_ 유산기부 동참 경비원 정봉호씨

국경없는의사회 앞으로 아파트·예금 등
'세상에 더 남기고 가자' 삶의 활력 찾아… "자식들, 내 결정 자랑스러워 해 뿌듯"

인터뷰_ 유산기부 동참 경비원 정봉호씨
전 재산을 국경없는의사회에 유산기부한 정봉호씨가 지난 11일, 경비원으로 일하는 아파트 앞에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다. / 한준호 C영상미디어 기자
순탄치 않은 인생이었다. 정봉호(71)씨는 30대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아내를 잃고 홀로 어린 두 자식을 키웠다. 가진 건 튼튼한 몸뚱이 하나밖에 없었기에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건설 현장에서 2년간 건물을 지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사무용품 제조회사, 출판사 세일즈맨, 운전기사, 기관차 선로 조차(操車) 관리인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일흔 살이 넘어서야 치열함이 가고 편안함이 찾아왔다. 자식들은 제 앞가림을 할 정도로 잘 자라줬고, 부유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여유도 생겼다. 그제야 주변을 돌아볼 마음이 생겼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고민 끝에 그는 국제구호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를 찾아가 '유산기부'를 약속했다. 전 재산인 서울 노원구의 아파트 한 채와 예금 등을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 국경없는의사회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한국 국경없는의사회의 첫 유산기부자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약속을 확실히 하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에서 유언 공증까지 받았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돕는 데 4000만원을 내놓기도 했다.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정씨를 지난 11일 만났다. 이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한 지도 벌써 10년이 됐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돈 버는 일만 생각했어요.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이 장성하니, 아내 생각이 많이 났어요."

지난해 여름, 우연히 국경없는의사회를 알게 된 정씨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가 떠올랐다고 했다.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곧바로 단체에 전화를 걸어 유산기부를 약속했다. 자식들도 아버지의 결정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애들한테 말했더니 '아버지가 정말 자랑스럽다'며 오히려 기뻐했어요. 전 재산을 기부한다는 게 자식들 입장에선 달갑지 않을 수 있겠다 싶어 걱정했는데, 내가 자식농사는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유산기부 사실을 알게 된 아파트 주민과 동료 경비원들도 정씨를 보고 '대단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어떤 동료는 유산기부가 무엇인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동료들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물어봐요. 그럼 나는 '별것 아니다'라고 말하지. 어차피 죽으면 돈 쓸 일이 없잖아요.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통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기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으면 해요."

:유산기부란?

재산의 일부 또는 전부를 사망 시점을 전후해 공익 목적으로 기부하는 것을 뜻한다. 보통 유언장이나 유언공증을 통해 기부가 이뤄진다. 기부 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현금, 부동산, 주식 기부 등 다양한 형태의 유산기부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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