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중 행인에게 폭행당해 뇌사 상태에 빠진 뒤 5명에게 장기 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난 박용관〈사진〉 상병의 사연이 27일 군 안팎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박 상병이 민간인으로부터 일방적 폭행을 당했지만 군인 신분이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유족은 군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변을 당한 박 상병 사건을 계기로 '이런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법적 제도를 마련해 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청원을 올렸다.

육군과 유족에 따르면 박 상병은 2017년 12월 입대해 강원도 고성에서 근무했다. 최근 부사관 1차 시험에 합격하고 2차 시험을 치른 뒤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러나 휴가 중이던 지난 12일 경남 김해 시내의 한 도로에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 행인 A씨로부터 뺨을 맞고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뇌사 상태에 빠졌다. 당시 박 상병은 "길가에서 너무 시끄럽게 떠든다"며 시비를 거는 A씨에게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다 무방비 상태에서 폭행을 당하고 바로 넘어졌다. 앞서 A씨는 일행 중 박 상병의 친구(21)의 뺨을 먼저 때렸다. 옆에 있던 박 상병은 현역 군인이라 적극적으로 말리지도 못한 채 열중쉬어 자세로 사과를 했다고 한다. A씨는 박 상병 고교 동창의 형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박 상병이 군인 신분이라 가해자의 폭행에 저항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해서 일어난 사고"라고 했다. 유족에 따르면 박 상병은 키 187㎝, 체중 90kg의 거구였다. 6년간 역도 선수로 활동했고 태권도 3단 유단자여서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할 조건이 아니었다. 유족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A씨는 사고 직후 군인이라서 신고를 못 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현장을 떠났다'고 썼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육군 관계자는 "군인의 경우 민간인이 때려도 대응하지 말라는 규정은 없으나 일반적으로 '휴가를 나가면 싸움에 휘말리지 말라'는 교육을 한다"고 했다.

박 상병의 아버지 인범(47)씨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청춘을 바치는 군인에게 감사와 존경, 혜택을 주지는 못할망정 군인이란 이유로 그저 피해를 당해야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군인을 폭행하는 사람은 가중 처벌을 하는 법적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김승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미국에선 제복 입은 군인을 보면 '복무에 감사드린다'며 사회 전체가 예우하는데 한국에선 군인을 동네북, 2등 시민 취급하니 착잡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