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흉물을 황금알 낳는 명물로… '뉴욕 리노베이션'

입력 2019.01.28 03:00

[못쓰는 땅·건물 재활용 붐]
- 1·2차 大戰 군수 터미널 '환골탈태'
군인 수백만명·무기 내보내던 37만㎡ 부지, 소상공인 허브로

뉴욕=오윤희 특파원
뉴욕=오윤희 특파원
지난 18일(현지 시각) 오전 9시 무렵. 뉴욕 브루클린 선셋파크 인근에 위치한 브루클린 군수(軍需) 터미널에는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바삐 건물로 향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군수 터미널'이라는 이름이 주는 첫인상과 달리 출근길을 서두르는 이들은 군사 업무와는 무관한, 여느 직장인들과 다를 바 없는 차림새였다. 37만1612㎡에 달하는 드넓은 부지를 오가는 화물 트럭, 트럭에서 물건을 내리고 이동하는 인부들 역시 일반 산업단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이 터미널은 뉴욕시가 쓸모없어진 부지와 건물을 소상공인 육성 허브(hub)로 개조시킨 대표적인 장소다.

주민이나 점포가 입주해 있지 않은 부동산 건물은 지방자치단체의 큰 골칫거리 가운데 하나다. 자칫하면 관리 소홀로 인해 흉물로 전락하기 십상이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효용 가치가 없어 보이는 건물이 성공적인 리노베이션을 통해 오히려 지역경제를 견인하는 명소로 거듭나기도 한다. 최근 뉴욕에서 가장 성공적인 리노베이션 사례로 꼽히는 곳이 바로 브루클린 군수 터미널(Brooklyn Army Terminal)이다.

◇전쟁 때 잘나가다 냉전기에 내버려졌던 브루클린 군수 터미널

소상공인 허브로 거듭난 뉴욕 브루클린 군수 터미널.
소상공인 허브로 거듭난 뉴욕 브루클린 군수 터미널. 1·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 기지였던 이곳에는 아직도 굴뚝 공장이 남아 있다. /뉴욕=오윤희 특파원
1918년 지어져 올해로 101년째를 맞은 브루클린 군수 터미널은 1·2차 세계대전 동안 수백만 명의 군인과 군수물자를 전 세계 격전지로 수송·배치하던 역할을 담당했던 군수 기지였다. 지금도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진 회반죽 건물 외벽을 보면 층마다 앞으로 툭 튀어나온 테라스 같은 곳이 남아 있다. 과거 대형 화물 운반대가 각 층으로 시멘트와 무기 등을 운반하고 수납하기 편리하도록 만든 공간이다. 군수물자를 실어 나르던 기차 레일도 아직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곳은 2차 세계대전 때 전성기를 누렸다. 뉴욕 군수물 운송 본부로서 320만 명의 군인과 3700만t의 군수물자를 세계 각지로 운송했다. 당시 이곳에서 상시 근무하던 직원만 2만명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브루클린 군수 터미널은 한동안 원래 기능을 그대로 유지했다. 1958년부터 3년간 군복무를 한 유명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도 수만 명의 팬들 환호를 받으며 이 터미널을 통해 자대 배치됐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1970년대 냉전기로 접어들자, 군수 기지로 활용되던 이곳의 용도는 애매해졌다. 한때 사람들과 물자로 북적거렸던 군수 터미널은 텅 빈 유령 도시처럼 돼 버렸다.

개성이 번뜩이는 소상공인 육성 허브로 거듭나

미국의 건물 공실률 증감 외
마침내 1981년 뉴욕시가 연방 정부로부터 이 지역을 사들여 산업·제조 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2년에 걸쳐 건물을 개보수하고, 시장 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소상공인들에게 건물 임대를 하기 시작했다. 뉴욕시는 이 프로젝트에 1억5000만달러(약 1678억5000만원)를 투자했다.

1984년부터 뉴욕시를 대신해 브루클린 터미널 운영 및 임대를 담당하고 있는 뉴욕 경제 개발 법인(New York City Economic Development Corporation

·NYCEDC)의 제임스 패쳇 CEO는 "이제 이곳은 현대적인 제조 단지로 거듭나 지역 인프라 확충과 일자리 창출에 이바지하고 있다"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진 소상공인들이 브루클린 군수 터미널로 오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브루클린 군수 터미널 5개 건물 가운데 3개 건물이 소상공인들의 공장, 오피스 및 창고 등 산업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107개 업체 4000명이 이곳에서 각기 개성 있는 아이템을 내세워 경쟁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고급 안경테 제조 기업 '로어케이스(Lowercase)'를 운영하는 브라이언 발라리오는 "1년 반 전에 이곳에 입주했는데, 넓은 공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데도 임대료는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고 말했다. 폐기 처분한 옷과 옷감을 모아서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의 천으로 만든 다음 의류 회사에 제공하고 있는 패션회사 '팹스크랩(Fabscrab)'의 제시카 슈라이버는 "재료 저장 창고로 쓸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해서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인근에 있는 페리를 이용하면 맨해튼까지 바로 이어지는 편리한 교통도 장점으로 꼽았다.

이 밖에도 3D 프린팅 기계를 이용해 인건비를 줄이는 한편 신속하게 니트웨어를 제조하는 '테일러드 인더스트리(Tailored Industry),' 아이스크림 콘의 콘(con) 부분만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더 코너리(The Konery)'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갖춘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더 코너리'의 데이브 톤코나우는 "우리 사업은 매년 15%씩 성장하고 있어서 계속 더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데, 이곳은 사업 성장세에 따라 탄력적으로 임대 공간을 활용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그의 딸 크리스틴은 "우스꽝스럽게 들리는 사업 아이디어일지라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지는 브루클린 특유의 분위기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건물 리노베이션으로 수익성 올리는 뉴욕

역동적인 도시 뉴욕은 부동산 리노베이션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곳이다. 최근 한국 관광객들에게 입소문으로 많이 알려진 브루클린 엠파이어 스토어도 버려진 건물이 지역 경제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변신한 경우다. 엠파이어 스토어는 19세기 미국 남북전쟁 당시 지어진 물류 창고로 방치돼 있었다. 하지만 2년여 동안의 리노베이션을 거쳐 2016년 고풍스럽고 개성이 강한 소품들을 파는 쇼핑몰로 거듭났다. 오래된 건물 특유의 정취를 담고 있는 데다, 건물 위층에선 강변과 맨해튼 풍경이 내려다보여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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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리노베이션의 상징 중 하나인 브루클린 엠파이어 스토어는 원래 방치된 물류 창고(왼쪽 사진)였다. 19세기 남북전쟁 시절 지어진 이 건물은 리노베이션을 거쳐 2016년 쇼핑몰(오른쪽 사진)로 다시 태어났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이 쇼핑몰은 이제 뉴욕의 필수 관광 코스가 됐다. /Dumbo NYC
지금은 유명해진 첼시 마켓, 미트패킹 지역도 한때는 버려진 창고와 공장에 지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방치돼 있어 미관상 좋지 않을뿐더러 우범 지대로 꼽혔던 이곳은 지금은 다양한 볼거리로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뉴욕의 대표 명소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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