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미국 HBO 방송사가 1970년대 뉴욕 포르노 업계를 그린 드라마 '더 듀스(The Deuce)' 촬영을 시작했을 때, 매춘 여성 역할을 맡은 배우 에이미 미드는 촬영장에서 불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노출 장면에서 연기를 중단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자기 때문에 촬영이 지연될까 두려워 제작진 앞에서 섣불리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그런데 작년 10월 '시즌3' 촬영 때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강도 높은 애정 행위를 찍을 때면 배우들의 신체적 컨디션과 감정 상태를 세심하게 파악하고, 배우의 요구 사항을 즉각 촬영진에게 전달해 주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intimacy coordinator)'가 언제나 촬영장에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촬영 등 현장에서 신체 접촉이 많은 장면을 연기할 때 배우들의 컨디션과 감정 상태 등을 파악하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왼쪽)가 촬영 중인 배우들의 연기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4일(현지 시각) "'미투(Me Too)' 시대를 맞아 방송·공연계에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라는 직종이 새로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배우들이 '육체적 친밀함(intimacy)'을 연기할 때 불쾌감을 느끼거나, 성희롱으로 이어지는 일을 방지하는 직업이다.

실제 영화 촬영 과정 등에서 성희롱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영화 '샤인(1996)'에서 정신분열증에 걸린 피아니스트 역할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제프리 러시는 2016년 연극 '리어왕'에서 죽은 딸을 부둥켜안는 장면을 연기하다 상대 여배우 가슴을 더듬어 성희롱 스캔들에 휩싸였다.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 촬영 때는 고(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여배우 동의 없이 강간 장면을 강제로 촬영하도록 해 '미투 운동'이 한창일 무렵 할리우드에서 뒤늦게 문제가 되기도 했다. 노출 수위가 높은 작품에서 촬영장 분위기 때문에 배우들이 모욕감이나 수치심을 느끼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3)'에 출연한 배우 레아 세두는 "마치 매춘을 하는 것 같은 불쾌감에 휩싸였다"고 토로했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주요 임무는 이런 일이 없도록 현장을 모니터하고 배우들의 기분을 파악하는 것이다. 연기 도중 성희롱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워크숍도 연다. HBO는 작년 10월 "신체 접촉이 많은 장면을 촬영할 때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지켜보는 가운데 촬영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