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지시로 IT 기업들이 대거 참석하는 가칭 '한국형 CES(정보가전쇼)'가 급조돼 다음 주 서울에서 열린다고 한다. CES는 매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 전시회다. 산업부·과기부 등이 삼성·LG전자·네이버 등 이달 초 미국 CES에 참가한 한국 기업 40여 곳을 모아 축소판 행사를 열기로 했다. 청와대는 "기업 측이 먼저 요청해왔다"고 설명했으나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은 "미국 CES 소식을 본 문재인 대통령이 지시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가 주관하는 CES는 세계 각국의 첨단 기업 수천 곳과 바이어·보도진·관람객 수십만 명이 몰리는 비즈니스 혁신의 경연장이다. 기업들은 제품·기술을 마케팅하고 전략적 제휴와 협업의 기회를 잡기 위해 고액의 참가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고 전시 부스를 차린다. 반면 이번 서울 행사는 정부가 주최하는 관제(官製) 전시회다. 열흘 전쯤 갑자기 결정돼 급하게 추진하는 행사가 제대로 준비될 리도 없다. 후진국에서도 보기 힘든 일이다. 해외 바이어도 오지 않는다. 기업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행사냐고 묻는다고 한다.

정부는 IT 산업의 최신 트렌드를 국내에 전파하겠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런 목적이라면 매년 10월 IT·전자 업체들 참가로 열리는 '한국전자전'이 있다. 똑같은 성격의 행사를 한 번 더 열 이유가 없다. 정부는 이번 전시회 사흘 일정 중 첫날은 일반인 관람 대신 정부·국회 등의 VIP 관람용 행사로 진행한다고 한다. 기업 팔을 비틀어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 눈요기부터 시켜주겠다는 얘기다. 정부는 기업당 수억원에 달하는 참가 비용까지 기업들에게 떠안기려다 비판이 일자 정부가 부담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문재인 청와대는 민주화 운동 했다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하는데 행태는 비민주적이고 권위적이기 이를 데 없다. 이들은 기업들을 졸(卒)로 본다. 얼마 전 청와대 행사에 기업인 130여 명을 단체로 부르고,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대기업 총수들을 줄줄이 대동시켰다. 밖에 나가면 국가 원수 못지않은 대우를 받는 글로벌 기업인들을 졸병 부리듯 한다. 문 대통령이 "정부가 (기업 혁신에) 간섭도, 규제도 않겠다"고 한 것이 엊그제였다. 그러면서 70년대식 관제 행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세계 주요국 정부 중에 이렇게 낡은 사고방식을 가진 곳은 우리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