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녹음된 "넣어!" "손 빼!" 2시간 듣자… 참기 힘들었다

조선일보
  • 안영 기자
    입력 2019.01.26 03:00

    기자가 들어봤다… 조현병 환청 체험

    지난달 31일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담당 의사인 임세원 교수를 흉기로 숨지게 한 박모(31)씨는 평소 조울증과 함께 조현병 증세를 보였다고 알려졌다. 그는 체포 당시 의사가 자기 머리 속에 있는 소형폭탄을 제거해주지 않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선 "박씨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1년여간 '은둔형 외톨이'로 방치되면서 증세가 심각해졌다"고 보고 있다. 사건 이후 언론은 '정신질환자의 위험성'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이들을 격리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등장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무조건적 격리'를 주장하지 않았다. 지난 12일 열린 임 교수 추모식에서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40개 유관단체와 공동으로 '안전하고 편견 없는 치료 환경'을 위한 결의문을 발표했다. 요지는 안전한 진료 환경, 편견 없는 치료 지원, 근본적 정신건강 개혁 등 세 가지. '격리'가 아니라 '편견 없는'이 핵심이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명수 홍보기획이사는 "격리는 1950년대로 퇴행하자는 말밖에 안 된다"며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퇴원 후에도 지속적으로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효과적인 시스템이란 무엇부터일까. '아무튼, 주말'은 '조현병'을 간접 체험해보기로 했다.

    환청, 직접 들어보니

    조현병 환청 체험
    유전적으로 조현병에 취약한 사람이 10~20대 때 집단 따돌림 등 큰 스트레스를 경험하면 발병 위험이 커진다고 알려져 있다. / 신지호 기자
    음성 파일을 열었다. 조현병의 가장 대표적인 급성기 증상인 '환청'을 들어보기 위해서다. 기자는 이들이 실생활에서 듣는다는 환청의 내용을 15분 분량으로 녹음했다. '스스로의 상황과 관계되는 말이 많다'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조언을 참고했고, 지역정신건강센터 조현병 환자 60여 명의 증언 자료를 수집한 결과다.

    녹음한 목소리를 2시간 동안 되풀이해 들었다. 내용은 다양했다. "박정숙, 박정숙!" 이름을 반복해 부르기도 한다. "손 빼! 손 빼라고! 주머니에서 손 빼!"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쓰레기는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 오른쪽 주머니!" 톤을 높여 성화를 하다 뜬금없이 "국민 여러분, 북에서 남침했으니 신속하게 대피하시기 바랍니다!"라며 반공 방송을 시작한다. 뒷담화, 가스라이팅(Gaslighting·타인의 심리를 교묘하게 조종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행위)하는 말뿐 아니라 "죽어버려"라든가 "다 끝났어" 같은 극단적인 표현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이 소리를 들으며 일상생활을 하기란 불가능했다. 200자 원고지 5매 분량의 기사를 쓰는 한 시간 동안 환청을 들었다. 기사 문장과 목소리가 헷갈려 글자를 자꾸 틀렸다. 겹쳐 들리는 목소리에 화가 폭발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땐 군것질을 하거나 자극적인 영상을 보는 등 의식적으로 더 강한 자극을 찾아 그쪽에 집중했다. 동료들에게 일부러 말을 걸어 주의를 돌리고 화제를 전환했다. 미리 준비해 둔 우황청심환을 먹으며 신경안정 효과를 노리기도 했다. 그러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싶을 때, 급하게 귀에서 이어폰을 뗐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일반인은 이성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행동이 환자에겐 불가능할 수가 있다"며 "이럴 때 약물을 투여하고 경과를 지켜보는 등 주변에서 환자의 이성적 판단을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초기 환자들까지 무조건 격리하자는 주장은 이 역할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조율되지 않은 현악기

    조현병 환청 체험
    본지 기자가 한 건물 계단에서 조현병의 대표적인 급성기 증상인 ‘환청(幻聽)’ 음성 파일을 듣고 있다. 조현병 환자들은 험담이나 욕설 등 ‘자신의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이 들린다고 착각한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조현(調絃). 현을 조율한다는 뜻이다. 조율되지 않은 현악기가 소음을 만들어내듯, 조율되지 않은 정신이 혼란을 만들어내는 병이다. 주요 증상은 환청(幻聽). 환청뿐 아니라 환시, 환촉까지 다양한 '환각' 증상을 경험하게 된다. 비현실적이고 기괴한 망상, 사고 과정에 이상이 생기는 장애도 증상의 일부다. 종종 이상 행동을 하기도 한다.

    기자가 만나본 조현병 환자들의 사연은 다양했다. '이상 행동'의 모습도 각자 달랐다.

    41년 차 전업주부 A(여·66)씨는 결혼 초기 7년간 시부모와 시누이 넷을 모시는 시집살이를 했다. 17년 전 친정어머니의 치매로 5년간 병시중도 들었다. A씨는 4년 전부터 갑자기 "이렇게 살 바에는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는 말을 반복해왔다. "시누이들이 나보고 어른들을 모시라고 한다"는 환청이 들린다며 주변에 고통을 호소했다. 남편과 자녀가 공감해주는 모습을 보이지 않자, 제초제 반 병을 포도 주스에 섞어 마시는 소동을 벌였다.

    초등학생 시절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증상으로 약물치료를 받았던 B(17)는 행동이 느린 탓에 줄곧 왕따를 당했다. 학급 반장에게 폭행을 당했지만 가족들 걱정시키기 싫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계 다루는 데 흥미를 붙여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또다시 왕따를 당했다. 그리고 증세가 심해졌다. "친구들이 내게 욕하고 조롱하는 소리가 들린다"며 한밤중에도 환청을 듣고 깬다.

    직장 내 따돌림으로 이직하면서 "이전 직장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며 호소하다 권고사직 당한 C(34), 백화점 의류코너 판매사원으로 고객 갑질에 스트레스를 받아 "CCTV로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며 말을 더듬기 시작한 D(여·32),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하고 진로 고민이 깊어지면서 온종일 집에 있다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수군대는 것 같다"며 불안해하던 E(여·23) 모두 환청을 호소했지만,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극단적인 폭력성이나 범죄 성향을 보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과연 위험한가

    한양대 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최준호 교수는 "조현병의 병리는 폭력성과 직접 연관이 없다"며 "강력범죄의 요인은 정신병력이 아니라 범죄 성향"이라고 강조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조현병 진단을 받은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는 사회적 인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조현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하지 않고 매우 흔한 질병"이라고 설명한다.

    통계적으로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의 범죄율에 비해 현저히 낮다. 2017년 대검찰청 범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0.08%였다. 같은 기간 비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1.2%였다. 일반인이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정신질환자보다 15배 정도 높은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언론에 조명되는 큰 사건의 피의자가 정신질환자인 경우 정신질환에 과도하게 초점이 맞춰진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 20일 임세원 교수의 유족들은 "고인의 뜻을 받들어 정신질환자에 대한 잘못된 낙인이 확산돼서는 안 된다"며 1억원의 조의금을 대한정신건강재단에 기부했다. 유족들은 "의료진의 안전이 지켜지고,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환자 역시 적절한 치료와 지원을 받는 환경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울지역정신건강센터 최지영 사회복지사는 "센터에선 정신질환에 대해 '극복'이라는 표현보다 '회복'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며 "극복해서 없애려고 하기보다, 병증은 상존하더라도 건강한 면을 늘리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약물 복용과 케어를 지속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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