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에 낳은 늦둥이 둘째와 유모차 외출… 한국에선 엘리베이터 탈 때 양보도 안하더군요

조선일보
  •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입력 2019.01.24 03:00

    [아이가 행복입니다]
    정재훈 교수의 육아기

    나에게는 20대 후반 딸과 다섯 살 아들이 있다. 딸은 90년대 독일 유학 시절 태어났고 아들은 두 번째 결혼의 선물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유학 시기에 딸에게 해줄 수 없었던 많은 것을 지금 아들에게는 해줄 수 있다. 청년 시절 어떻게 보면 쫓기듯이 보냈던 딸과의 시간과 비교하면 아들과 보내는 현재는 여러모로 여유가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딸에게는 "그때는 미안했어"라는 말이 나올 때가 잦다. 그런데 돈은 없었지만 독일에서 딸에게 줄 수 있었던 일상의 여유로움을 한국에서 자라는 아들에게는 줄 수가 없다.

    지난해 8월 독일 서부 도시 트리어의 한 시내 공원에서 정재훈(오른쪽) 교수와 아내가 잔디밭에 누워서 아들과 함께 웃고 있다.
    지난해 8월 독일 서부 도시 트리어의 한 시내 공원에서 정재훈(오른쪽) 교수와 아내가 잔디밭에 누워서 아들과 함께 웃고 있다. /정재훈 교수 제공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그리 문제없이 다니던 길을 유모차는 갈 수 없다. 버스도 타기 힘들다. 그나마 지하철은 나은 편이지만, 뒤에 서 있는 어른들이 유모차 앞을 파고들지 않도록 엘리베이터 앞을 긴장하며 지켜야 한다. 카시트를 갖추는 것은 바라지도 않지만, 아주 과감하게 운전하는 택시에 선뜻 발걸음이 가지 않는다. 장애인과 유모차에 양보하자는 스티커가 붙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20분을 기다린 적도 있다. 인내의 경계에 이르렀을 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허공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내려달라고 부탁했지만, 자발적으로 내린 사람은 없었다.

    지하철역에서 "나 잡아봐라~" 하고 웃으면서 내 주변을 맴도는 아이를 보면서 함께 웃다가 개·돼지 부모 소리도 들었다. 아이와 내가 괴성을 지른 것도 아니고 그저 웃음소리였다. 우리 외에 단 한 명 있었던 30대 추정 남성에게 평일 오후 한가한 승강장에서 시끄럽다고 들은 소리다.

    곧이어 승차한 지하철 안 어른들 사이에서 시야가 가려 답답해하는 아이를 목말 태웠다. 앞에 앉아 있던 자칭 80대 여성 노인이 말을 걸길래 아이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줄 알았다. 그랬더니 하는 소리가 "그렇게 키우면 안 된다. 당장 내려놔라. 80 평생 살았지만 그런 꼴은 못 본다"였다. 나이 먹음의 초라한 단면을 봤다.

    이런 신경질적인 반응에서 거리를 두고 싶어, 아이와 시간을 보낼 여유가 생기면 '가족친화적'으로 잘 정돈된 대형마트나 백화점으로 발길을 돌린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잘 안 가던 장소다. 하지만 적어도 그곳에서는 유모차가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아이에게 집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이웃과 어울리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 하지만 곳곳에서 마주치는 부모들의 모습이 범상치 않다. 카시트가 없음은 다반사다. 심지어 아이를 운전자 옆 좌석에 앉히고 차를 탄다. 아이가 순식간에 부모를 위한 에어백이 된다. 아이가 카시트에 앉지 않겠다고 울어대는데, 설득할 수 있는 비교 대상이 없어 처음에 고생했다.

    미세 먼지가 걱정돼 어린이집에서 산책했나 안 했나 신경을 곤두세우는 부모가 막상 자기 아이 데리러 왔을 때 자동차 시동은 내내 켜놓고 있다. 심지어 아이 때문에 병원에 온 부모도 지하 주차장에서 아이가 탄 유모차가 차 뒤에 있는데 시동을 끄지 않는다. 키즈카페에서 자기 아이 사랑에 푹 빠진 나머지 다른 아이가 놀 공간을 뺏고 있는지는 배려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는 순간 지역사회에서 고립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어린이'라는 표현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아이는 어른들의 기피 대상이 된다. 늦둥이를 바라보는 나와 배우자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카봇 인형 하나 선물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결국 아이와 가족이 존중받는 일상을 만들기 위하여 나와 우리를 변화시키고 일상의 구조를 하나하나 바꿔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아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늙은 사람과 젊은 사람이 모두 존중받는 삶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지금 우리 늦둥이는 이미 어른이 되어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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