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들은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 보기 좋은 것과 일그러진 것을 일일이 구분하지 않는다. 가리는 게 덜하니 행동거지가 자유롭고, 그만큼 신나는 일도 많다. 물론 어린 시절의 이런 유희는 어른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저지를 당하며, 시간이 흘러 사회의 규율을 깨치고 나면 사라져 버린다. 프랑스의 미술가 장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는 1940년대 중반 마흔이 넘은 나이에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하면서 이처럼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눈으로 되돌아가고자 했다.
뒤뷔페는 사막을 떠도는 유목민을 그리면서 마치 아이가 흙탕물을 손가락으로 짓이긴 것처럼 황토색 물감을 종이에 바르고, 전통적인 원근법과 공간감은 완전히 무시한 채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냈다. 유치한 형태에 실제로 진흙과 석탄을 화면에 바르기도 했던 뒤뷔페의 회화는 발표되자마자 온갖 비난과 조롱을 동시에 받았다. 그러나 뒤뷔페는 한갓 진흙과 오물 속에서 뒹구는 어린이일 뿐이라는 악평을 환영했다. 그는 실제로 미술가가 되기 위한 특별한 재능이란 없고, 그저 별다른 도구 없이 손가락이나 숟가락으로 물감을 발랐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진흙과 쓰레기와 오물이야말로 인간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니, 이들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는 게 바로 미술의 본업이 아닌지 반문하면서 말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을 겪고, 인간이 세워 놓은 온갖 아름다운 것들이 모조리 망가져 쓰레기처럼 바닥을 뒹구는 현장을 생생히 목격한 세대다. 오물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보자는 화가의 희망은 한가한 한 미술가의 허황된 말장난이 아니라 세상의 끝에 선 인간의 절박한 음성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