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이 만들었나…롱패딩 천덕꾸러기 신세

입력 2019.01.22 13:00

포근한 날씨에 롱패딩 열풍 꺾여…숏패딩, 경량패딩 등으로 분산
롱패딩 생산 2배 늘린 패션업계, ‘1+1’ 이벤트 등 재고 처리 총력

올겨울에도 한파가 이어진다는 예보에 따라 패션업계는 롱패딩 물량을 대폭 늘리고 일찌감치 판매 경쟁에 돌입했다./연합뉴스
18일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아웃도어 매장은 썰렁하기만 했다. 지하 식품 매장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한 매장에 들어가 롱패딩을 골라 들었다. 점원은 이제 막 창고에서 꺼내 숨이 죽었다고 했지만, 요즘 입기엔 부담스러울 정도로 두터웠다. 망설이는 기자에게 점원은 "요즘 같은 날씨엔 반팔 티셔츠 위에 롱패딩 하나만 걸쳐도 든든하다"며 새로운(?) 착용법을 알려줬다.

SPA 브랜드 매장 한쪽엔 까만 롱패딩이 줄줄이 걸렸다. 가격 인하를 알리는 빨간색 가격표가 큼직하게 붙었고, 일부 제품은 한 벌 가격에 한 벌을 더 주는 ‘1+1’ 이벤트를 했다. 하지만 손님들은 롱패딩보다 봄 신상품에 더 관심을 두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겨울 롱패딩의 인기는 ‘광풍’에 가까웠다. 11월 ‘평창 롱패딩’ 대란을 시작으로 이듬해 3월까지도 롱패딩이 팔렸다. 하지만 올해는 그 열기가 주춤하다. 예상보다 날씨가 포근한 데다, 너무나 많은 롱패딩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 너무 많이 만들었나…1년도 안 돼 천덕꾸러기 신세

롱패딩은 작년 겨울 강추위와 ‘평창 롱패딩’ 효과에 힘입어 수요가 급증했다. 지난해 아웃도어 시장에서만 롱패딩이 200만 장 이상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덕분에 2014년 이후 하락세를 겪던 아웃도어 업계도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아웃도어 업계는 올겨울에도 롱패딩 유행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공급량을 대폭 늘렸다. 디스커버리는 지난해보다 두 배 늘린 60만 장의 롱패딩을 생산했고, 네파는 12만 장에서 30만 장, K2는 11만 장에서 25만 장으로 늘렸다. 다른 패션업계도 마찬가지. 지난해 ‘평창 롱패딩’ 생산처로 주목받은 신성통상은 올해 6개 브랜드에서 총 90만 장의 롱패딩을 출시했다.

롱패딩 1+1할인 판매에 나선 한 SPA 브랜드 매장./김은영 기자
하지만 모든 패션업계가 롱패딩을 내놓은 통에 경쟁이 치열해졌다. 설상가상 날씨도 따라주지 않아 구매 욕구도 감소했다. G마켓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롱패딩 판매율이 전월보다 2% 줄었고, 12월에는 전월보다 59% 떨어졌다. 옥션에서는 지난해 11월 롱패딩 판매율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203% 늘었지만, 12월부터는 판매율이 29%로 급감했다.

롱패딩 판매의 부진은 아웃도어 브랜드의 매출과도 연결됐다. 롯데백화점의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 15일까지 아웃도어 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15.7% 신장했다. 서울 소공동 본점의 경우 아웃도어 부문 신장률이 8.1%였다. 지난해 11월 매출 신장률이 23%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부진한 결과다.

A 아웃도어 업체 관계자는 "작년엔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특수에 한파까지 겹쳐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지만, 올해는 이렇다 할 특수가 없어 예상보다 판매율이 저조하다. 물량으로 보면 작년만큼 팔았지만, 생산량을 크게 늘렸기 때문에 재고도 그만큼 쌓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 숏패딩, 친환경 패딩 부상…메가 히트는 없다. 이젠 다양성의 시대

‘롱패딩은 한물갔다’ ‘식상하다’는 인식도 발목을 잡았다. 지난해 3월까지 롱패딩이 팔린 데다, 5월부터 선판매를 시작했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선 거의 일 년 내내 롱패딩을 접해야 했다. 직장인 김 모(35)씨는 "롱패딩이 멋내기용도 아니고 여러 벌이 필요한가? 살 사람은 산 거 같은데, 시장에선 너무 롱패딩만 파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올해 패딩 트렌드는 다양하게 분산됐다. 롱패딩이 주춤한 틈을 타 숏패딩, 경량패딩, 친환경 패딩 등이 이목을 끌었다. 특히 ‘근육맨 패딩’이라 불리는 숏패딩이 새로운 유행 반열에 올랐다. 노스페이스의 경우 2000년대 유행했던 짧은 기장의 눕시 패딩 재킷을 내놨는데, 출시하자마자 일부 제품이 조기 매진됐다.

숏패딩의 원조라 불리는 눕시 재킷의 레트로 버전을 내놓은 노스페이스./노스페이스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에 집중됐던 쏠림도 스트리트 캐주얼, 저가 브랜드 등으로 분산됐다. SPA 브랜드 탑텐은 10만원대 롱패딩을 출시해, 지난해 말까지 30만 장 이상을 팔았다. 유행에 민감한 10~20대 소비자들 사이에선 롱패딩 강자가 바뀌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디스커버리가 인기를 끌었지만, 올해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롱패딩은 온라인 쇼핑몰 무신사에서 지난해 10월 주간순위 1위를 차지한 이래 겨우내 매출 상위권을 지켰다.

그런가 하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롱패딩을 기념품으로 사가기도 한다. 명동이나 강남대로 등 관광객이 몰리는 상권에 위치한 아웃도어 매장에선 다른 곳보다 롱패딩이 빨리 소진됐다. 해외에선 롱패딩을 팔지 않기 때문에 생긴 작은 흐름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패션업계는 혼란에 빠졌다. 당장 내년도 원재료를 발주해야 하는 상품기획자들은 어떤 상품으로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지 고심이 크다. 아웃도어 업계 관계자는 "운동선수들만 입던 롱패딩이 인기를 끈 이유는 전에 없던 새로운 길이와 스타일 때문"이라면서 "지난해 아웃도어 시장만 해도 아노락, 플리스 재킷 등 새로운 인기 상품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 다양한 요구에 대응해야 할 때"라고 했다.

김남규 무신사스토어 상품 기획 팀장은 "올겨울 숏패딩의 활약이 눈부셨다. 남들과 다른 스타일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다양한 색상과 스타일로 연출할 수 있는 아우터가 잘 팔렸다. 내년에는 숏패딩의 인기가 더 높아질 전망이다. 품질이 상향 평준화된 만큼, 복고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이 호응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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