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에 간 미네르바 2학년들… '작심 100일' 앱 밑그림 바꿨다

입력 2019.01.18 03:28 | 수정 2019.01.18 03:32

[질주하는 세계 - 대학] 교육의 틀 바꾼 美 '미네르바 스쿨'

석 달 전, 카카오 본사 실무진이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사옥에서 미네르바스쿨 학생 9명에게 숙제를 냈다. "이용자들이 각자 목표를 세워 100일 동안 실천할 수 있게 돕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계획이다. 어떻게 하면 이 앱이 호응을 얻을지 설계해와라."

숙제를 받은 학생들은 한국에서 2학년 1학기를 보내고 있는 미네르바스쿨 학생 160여 명 중 일부다. 이날 카카오 본사에는 미국·일본·남아프리카공화국·멕시코 등 8국 학생이 왔지만, 전체적으론 60국 출신이다.

160명이 서울 이태원에 짐 풀고… 현장 프로젝트와 온라인 강의 동시에 - 서울에서 2학년 1학기를 보낸 미네르바스쿨 학생들이 지난달 13일 서울 SK엔카닷컴 본사 1층 로비에서 컴퓨터로 수업을 듣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만 가능하면 세계 어디서든 실시간 온라인 강의를 들을 수 있다.
160명이 서울 이태원에 짐 풀고… 현장 프로젝트와 온라인 강의 동시에 - 서울에서 2학년 1학기를 보낸 미네르바스쿨 학생들이 지난달 13일 서울 SK엔카닷컴 본사 1층 로비에서 컴퓨터로 수업을 듣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만 가능하면 세계 어디서든 실시간 온라인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오종찬 기자
이들은 작년 9월부터 넉 달간 서울 이태원 해방촌에 있는 미네르바 기숙사에서 살았다. 매주 월~목요일까지 실시간 인터넷 강의를 4~5과목(16~18학점)씩 이수했다. 강의 듣는 장소는 기숙사라도 좋고,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이라도 좋다. 전 세계 어느 곳에 있건 같은 시간에 실시간으로 듣기만 하면 된다. 강의하는 교수들도 홍콩·대만·미국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렇다고 인터넷 켜놓고 딴짓해도 되는 강의는 아니다. 교수가 학생들 발언 빈도를 일일이 체크하면서 수업 참여도를 파악하고 1대1 면담을 통해 수업 피드백을 준다.

학생들은 그와 동시에 '현장'으로 뛰었다. 단체로 특정 기업에 가서 연수받는 식이 아니다. 학생들이 그룹별로 카카오 본사, SK엔카닷컴, 국제기구 녹색기후기금, 사회적 기업 '어반소사이어티' 같은 곳에 흩어져 그 실무진이 내준 과제를 했다. 단골 초콜릿 가게, 기숙사 근처 샌드위치 가게 같은 곳을 찾아 새 제품 론칭 홍보 전략을 짜거나, 원가율을 개선할 방안을 함께 궁리하고 이를 과제로 학기 말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들이 맡은 과제는 '학생용 연습문제'가 아니라 하나하나가 '실전 체험'이었다. 지난달 12일, 8국 학생 9명이 판교 카카오 본사에 가서 두 달 전에 받은 과제의 답을 내놨다. "많은 사람이 새해에 목표를 세우지만 2월이면 다 깨집니다. 앱 이용자가 매일 목표를 달성했는지 확인하도록 유도하고, 게임과 보상의 요소를 접목하면 어떨까요?"

같은 기간 SK엔카닷컴에 간 또 다른 학생들은 소비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차를 고를 수 있게 돕는 설문조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소비자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마블 영화 캐릭터를 고르고 한국 유행가 가사를 맞히는 설문에 답하면, 개개인의 취향을 짐작해 그에 맞춰 중고차를 추천해주는 프로그램이다. SK엔카닷컴은 지난달 20일 이 프로그램을 자사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올리고 홍보에 나섰다.

미네르바 스쿨 개요 표

미네르바스쿨 학생들에 대해 기업 실무자들은 "지금까지 받은 대학생 인턴들과 전혀 달랐다"고 했다. 미네르바스쿨 학생들은 기업 과제를 받은 뒤 수십 차례씩 기업 실무자들과 이메일, SNS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소통해 결과를 내놨다. 육심나 카카오 소셜임팩트 팀장은 "앱 디자인 몇 가지를 준 것뿐인데, 학생들이 우리 내부 기획보다 더 뛰어난 이용자 보상 체계(인센티브)를 갖춘 앱을 만들어왔다"며 "새 앱을 출시할 때 미네르바스쿨 학생들 아이디어를 반영하겠다"고 했다. 김태완 카카오 소셜임팩트 매니저도 "학생이 아닌 외부 협력사 파트너를 만나는 기분"이라고 했다.

켄 로스 미네르바스쿨 아시아총괄이사는 "미네르바는 '졸업 후 사회 진출을 위한 최고의 준비는 대학에 다니면서 실제 업무 경험을 쌓는 것'이라는 교육 철학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일반 대학 학생들이 교과서 읽으며 '4Ps(제품·가격·장소·촉진)란 무엇인가' 같은 지식을 배울 때, 이들은 매 학기 회사, 공공 부문, 지역사회와 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서울 학기를 마친 이들은 이달 초 2학년 2학기를 시작하러 인도 하이데라바드로 떠났다. 일본 출신 가타야마 하루나(20)씨는 "초·중·고 12년을 마친 뒤 (앉아서 수업 듣는 건)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앞으로는 이제까지 배운 걸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할 때라고 생각해 미네르바스쿨에 왔다"고 했다. 로스 이사는 "미네르바스쿨에 학생이 몰리는 건 기존 교육이 더 이상 미래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학생들이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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