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안전 지킬게요, 탈원전 다시 생각해주세요"

조선일보
  • 주희연 기자
    입력 2019.01.15 03:01

    원자력마이스터高 아이들 文대통령에 112통째 손편지

    "살면서 부모님께 편지 쓴 기억도 없는데…. 대통령님에게 손편지를 쓸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쓰다 틀려 세 번이나 다시 썼습니다."

    한국원자력마이스터고(원마고) 학생회장 백재영(18)군은 14일 본지 통화에서 "우리 뜻이 문재인 대통령님께 잘 전달돼 대통령님이 탈(脫)원전 정책을 다시 생각해주시면 좋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14일 한국원자력마이스터고 3학년 조모군이
    14일 한국원자력마이스터고 3학년 조모군이 "청와대에 부쳐달라"며 울진범군민대책위원회에 전한 손편지. /울진범군민대책위원회
    백군은 방학식이 열린 지난달 28일 같은 학교 학생 110명과 함께 각자 교실에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고 했다. 2학년인 백군이 편지 쓰기를 주도했다.

    원자력마이스터고는 원전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국내 유일의 마이스터고다. 2학년 때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입사 시험을 봐서 합격 통보를 받은 뒤, 3학년 한 해 동안 내신·영어·과제 평가를 마저 통과해 입사가 확정되는 게 이 학교 학생들이 꿈꾸는 최고의 성공담이다. 많이 갈 때는 한 학년 80명 중 18명이 이런 식으로 한수원에 입사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이런 구도가 흔들렸다. 올해 2월 졸업하는 3학년 학생 중 한수원 입사가 확정된 사람은 3명뿐이다. 역대 최저였다. 아직 남은 절차가 있지만 일단 합격 통보를 받은 2학년 학생도 백군을 포함해 7명밖에 없다. 지난달 초 이 10명이 모여 "대통령에게 손편지를 써보자"고 마음을 모았다. 자기들만 합격해 미안하다는 생각, 후배들은 잘됐으면 하는 생각, 이런 식으로 가면 '원전 산업'이라는 밥벌이 자체가 없어져 버리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후 백군이 다른 학생들에게 "너희도 원하면, 우리 다 같이 편지를 써보자"고 했다.

    이런 식으로 작년 연말부터 지난주까지 학생들이 쓴 편지가 총 111통이다. 학생들이 울진범군민대책위에 찾아가 "청와대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14일 오후, 한 3학년 학생이 범대위 사무실에 찾아와 112통째 손편지를 추가로 쓰고 갔다.

    이 학교 이유경 교장이 "우리 학생들은 중학교 때 내신 1~3등급을 했던 아이들"이라면서 "대학 진학보다 원전산업에 취업하고 싶어서 온 아이들인데, 갑자기 취업문이 좁아져 다들 불안해하고 있다"고 했다. 2학년 박지혁(18)군은 "원전 취업을 위해 서울에서 학교 다니다 울진으로 내려왔고, 한수원에 가고 싶어 그동안 밤새워 공부했는데 갑자기 정부가 탈원전을 외치니 암울했다"며 "어른들이 어떤 정책을 바꾸기 전에, 정책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학년 김민수(가명·18)군은 "솔직히 이걸 쓴다고 우리 학교 상황이 나아질까 싶었지만, 후배들에게라도 좀 더 좋은 기회가 갔으면 하는 마음에 편지를 썼다"고 했다. 김군은 충남 논산에서 중학교 다닐 때 전교 10위권이었다. 한수원 입사를 꿈꾸며 고향에서 버스·기차로 5시간 걸리는 울진에 왔다. 부모가 "인문계 진학해서 대학에 가라"고 말릴 때, "원전 전문가가 되고 싶다. 대졸 애들보다 꿀리지 않게 살 자신 있다"고 설득했다.

    입학 후 몇 개월 안 돼 문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했다. 어머니가 "거봐, 엄마 말 들으랬지!" 하고 한숨 쉬었다. 김군은 "그해 2학기가 인생에서 가장 심란한 시기였다"면서 "하지만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저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했다.

    "학교에서 원전 공부를 해보니 원전이야말로 앞으로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에너지라는 걸 깨달았어요. 제가 원전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이번에 한수원 떨어졌지만, 저 구제해달라고 편지 쓴 거 아니에요. 후배들은 이런 고민 안 했으면 해서 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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