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봉급 사회'에서 '배급 사회'로 가는 나라

조선일보
  •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입력 2019.01.14 03:17

    官은 관대로, 民은 민대로 '현금 복지' 늘리고 챙기는 세태
    배급 길들여지면 자립과 책임 활력 잃고 '노예의 길'로 빠져
    국가의 자비나 시혜가 아니라 '일할 수 있는' 기회 제공해야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하는 현금성 복지가 급증하고 있다. 2015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청년수당제도를 도입한 지 불과 몇 년 만의 일이다. 올해를 기준으로 할 때 국민 1인당 평생 받을 수 있는 현금수당은 최대 1억5000만원에 이른다고 하며, 머지않아 2억원을 초과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는 무상 보육·교육·급식·교복처럼 서비스나 물품으로 받는 혜택과 기초연금처럼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현금 급여를 제외한 액수다. 관(官)은 관대로 현금 복지를 늘리기 위해 열심히 궁리 중이고, 민(民)은 민대로 현금을 최대한 챙길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열심히 공부 중이다.

    아닌 게 아니라 현금수당 종류는 나날이 다양해지고 있다. 정부는 부모가 아이를 집에서 직접 돌볼 경우 만 84개월까지 양육수당을 준다. 이와 별도로 오는 9월부터는 7세 미만 모든 자녀에게 아동수당이 지급될 예정이다. 취업준비 중인 청년이라면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을, 중소기업 장기 근무자라면 청년내일채움공제를 받을 수 있다. 지방정부의 경우 결혼·출산장려금은 이미 기본이다. 얼마 전에는 보훈예우수당을 주는 곳도 생겼고, 교복비나 수학여행비 등을 현찰로 주는 사례도 늘었다. 농민수당 역시 전국적으로 확산일로에 있다.

    세상에 돈 준다는데 싫다는 사람 있으랴. 문제는 재원(財源)이다. 우리는 중동의 산유국처럼 오일머니를 쌓아놓고 사는 나라도 아니고, 정부 스스로 경제활동의 주체가 되는 사회주의 체제도 아니다. 현금수당의 원천은 고스란히 국민 혈세다. 문재인 정부가 나라 곳간 사정에 유난히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일 게다. 최근 기재부의 적자 국채 발행 시도나 국토부의 표준지 공시지가 평가 과정 개입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지속 가능한 포퓰리즘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신종 적폐'가 구조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시나브로 대한민국은 '봉급 사회'에서 '배급 사회'로 이행하는 분위기다. 우리나라에서 경제활동 인구의 취업 구조가 근대화된 것은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였다. 그 이전만 해도 정기적인 현금 수입을 경험한 한국인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한국이 봉급 사회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제조업 분야를 중심으로 취업자 비율이 급등하면서부터다. 봉급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국민의 평균 소득은 획기적으로 늘었고, 소득 분배 또한 오랫동안 국제적 모범을 유지했다. 하지만 경제 환경의 변화 및 시대정신의 반전에 따라 봉급 사회의 위세와 신화는 약화되고 있다. 대신 보다 많은 국민이 나라의 배급 줄에 익숙해져 간다. 저성장·고실업의 장기화에 따라 당장에는 그것이 생명줄인 사람들도 많다.

    임금 노동에 기반을 둔 봉급 사회가 인류의 이상향은 아닐지 모른다. 강제 노동, 착취 노동, 소외 노동 등 굳이 좌파 이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조직 노동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뿌리가 깊다. 하지만 이를 극복한다며 설계된 사회주의 배급 사회가 결코 대안은 아니다. 우선 현금 복지를 포함한 사회 임금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과도해지면 사람들의 자립정신과 책임 의식, 자유 의지가 사라진다. 공짜인 데다가 소액이라 별로 감사한 마음도 갖지 않는다. 또한 의존, 기대, 낙심, 원망, 열패(劣敗) 등의 감정이 만연하면서 사회는 생기와 활력을 잃고 개인은 각자도생에 하루하루 매진한다. 바로 이것이 하이에크가 말한 '노예의 길'이다.

    선진국들은 1990년대 이후 현금 복지를 줄여가는 추세다. 복지 정책으로서 가성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대세는 규제 완화와 조세 감면, 노동개혁을 통해 기업의 전통적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얼마 전 영국의 메이 총리가 좌파 복지주의자들의 공세에 맞서 "일하는 것이야말로 가난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이 자유시장경제가 아닌 '자유기업경제'라는 점을 정확히 인식한 결과다. 일자리 창출의 원천이자 주역이기에 기업은 '자본주의의 꽃'이다.

    이에 반해 우리는 최악의 고용 재난 속에 집권 3년 차를 맞이한 대통령으로부터 '혁신 성장'이니 '포용 국가'니 하는 말만 되풀이해 듣고 있다. 밥이 나오는 곳은 복잡한 개념이 아니라 사업, 창업, 취업과 같은 간단한 원리인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국가의 자비나 시혜(施惠), 적선을 무작정 바라지 않는다. 대신 일할 수 있는 자유와 기회, 권리를 찾아 당당한 삶의 주체로 살아가길 원한다. 인간으로서의 자긍심, 국민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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