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개입 등 질문지만 100쪽… 양승태 "결론 지시한 적 없다"

입력 2019.01.12 03:00

검찰, 징용소송 개입 등 11시간 직접 신문… 자정 직전 귀가조치
양 前대법원장 혐의 대부분 부인… 일부는 "기억 안난다" 진술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는 약 11시간 가량 이어졌다. 직접 신문은 오후 8시 40분쯤 끝났고, 양 전 대법원장이 자정 무렵까지 조서 내용을 일일이 확인했다고 한다.

이날 조사는 서울중앙지검 15층 조사실(1522호)에서 이뤄졌다. 이 조사실은 원래 직원 휴게실이었는데 최근 개조됐다. 앞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도 여기서 조사를 받았다. 조사는 박주성, 단성한 특수1부 부부장이 맡았다. 두 사람은 사법연수원 32기로 양 전 대법원장보다 30년 후배다. 검사들은 양 전 원장을 "원장님"이라고 불렀다.

전직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여서 예의를 충분히 갖췄다고 검찰은 말했다. 하지만 조사 분위기는 팽팽했다고 한다. 검찰은 양 전 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소송 등에 개입한 의혹을 집중 추궁했다. 양 전 원장은 대부분 부인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재판 개입은 없었다"는 점은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과정은 영상으로 녹화됐다.

11일 오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가운데) 전 대법원장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징용소송 재판 거래 의혹 등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전면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11일 오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가운데) 전 대법원장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징용소송 재판 거래 의혹 등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전면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강호 기자
양 전 원장은 일제 강제징용 소송과 전교조 법외(法外)노조 소송, 옛 통진당 소속 의원들 지위 확인 소송 등 여러 재판에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진행 과정에서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에게 내부 정보를 수집해 보고하라고 지시하거나 각급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데 개입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검찰은 이런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검찰이 준비한 질문지만 100쪽을 넘었다.

검찰 조사는 특히 강제징용 소송에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강제징용 재판 재상고심 주심이었던 김용덕 전 대법관에게 "판결이 확정되면 일본이 반발할 것"이라고 말했는지, 일본 전범 기업 측을 대리한 김앤장 변호사를 독대했는지 등을 물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수장(首長)으로서 재판 결과가 가져올 수 있는 여러 파장과 관련한 고민을 말한 적은 있다"면서도 "특정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라고 지시한 것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검찰에 출석하기 전 대법원 청사 앞에서 약 5분간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저의 부덕의 소치로 인한 것으로서, 모든 책임은 제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절대다수의 법관은 사명감을 가지고 성실하게 봉직하고 있음을 굽어 살펴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이 사건에 관련된 여러 법관도 각자 직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법과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저는 믿고 있다"며 "편견이나 선입견 없는 공정한 시각에서 이 사건이 소명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사실상 혐의 내용을 부인하고,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검찰 조사실

기자회견 동안 약 서너 걸음 뒤에서 법원노조 조합원 60여 명은 큰 소리로 "양 승태를 구속하라"고 외쳤다. 양 전 대법원장은 뒤돌아보지 않고 기자회견을 마쳤다. 대기 중이던 차량을 타고 약 600m 떨어진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갔다. 검찰이 정한 포토라인은 그냥 지나쳤고 별다른 말도 하지 않았다.

검찰은 조사할 내용이 많아 양 전 대법원장을 여러 차례 불러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40여 개에 달하는 혐의로 이미 구속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양 전 대법원장을 공범으로 보고 있다. 일부 혐의의 경우 주범의 역할도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에 대해 "아직 결정된 게 없다"고 하지만 청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은 판사 시절 "법원의 기둥"이라는 평을 들었던 사람이다. 부산지법원장, 법원행정처 차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가 2005년 대법관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 당시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재판 등이나 신상에 특별한 흠결이 없다"고 했다. 대법원장이 됐을 때도 이의를 단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랬던 그가 검찰에 소환되는 모습을 보면서 상당수 판사는 "참담하다"고 했다.

양승태 영장 수차례 기각했던 영장전담 부장판사 사표 제출

한편 이번 수사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압수 수색 영장을 여러 차례 기각했던 이언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최근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