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韓·日의 '천재 육성법' 차이

입력 2019.01.12 03:09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우리 바둑계는 최근 몇 년간 두 명의 천재 소녀를 지켜봐 왔다, 한 명은 2007년 5월생인 초등학교 6년생 김은지양이다. 2015년 SBS 영재발굴단에 소개된 그는 작년 한 해에만 여자아마최강전 등 4개 대회에서 우승했다. 세계 여자바둑 일인자의 꿈을 충분히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줬다.

또 한 명은 일본 국적의 나카무라 스미레양이다. 2009년 3월생으로 김은지보다 1년 9개월쯤 어리다. 아빠와 이모가 현역 프로기사이고, 엄마는 바둑 강사로 활동하는 집안에서 자라 3세 때부터 바둑돌을 잡았다. 딸을 세계 톱스타로 키우려면 바둑 수준과 교육 시스템이 앞선 한국이 낫다고 판단한 아빠의 뜻에 따라 일곱 살 때 한국에 보내져 유학했다.

두 소녀 모두 주변의 큰 관심 속에 급성장했다. 은지는 놀랍게도 사관학교 격인 연구생 1조까지 올라갔다. 남녀 통합 연구생 108명 중 최상위 12명 대열에 든 것이다. 스미레는 최하위 그룹인 8조에서 기량을 닦았지만, 그 나이 때 스미레 정도의 기량을 보였던 프로는 일찍이 없었다. 사람들은 두 사람 중 누가 더 세냐고 묻지 않았다. 연구생 1조와 8조의 실력 격차는 하늘과 땅의 차이인 탓이다. 대신 스미레에겐 1년 9개월이란 자산이 있었다. 바둑 영재 세계에서 이만한 연령 차는 기력(棋力) 차이를 상쇄할 수 있는 큰 자산(잠재력)이다.

이달 초 제51회 여자입단대회가 시작됐다. 스미레는 첫 출전을 신청했으나 예선 대국을 하지 않고 출국했다. 일본 기원이 '영재 특별 채용' 제도를 도입했다며 귀국을 권유해오자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영재 특채 제도는 한국·중국에 눌리고 자국의 장기(將棋)에 치이는 일본 바둑이 스미레를 겨냥해 만든 돌파구였다. 2년간 한국 유학을 끝내고 금의환향한 9세 소녀에겐 올 4월부터 일본 역사상 최연소 프로로 활동한다는 입단증이 쥐여졌다.

안타깝게도 김은지는 이번 입단대회서 낙방해 4년 연속 실패했다. "이런 사람이 무슨 천재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지만, 최고 강자들이 모여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치르는 입단대회에선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 좁은 입단 대회 관문에 막혀 인재들이 바둑을 떠나는 일이 잦자 한국기원은 2012년 영재 입단 대회를 도입했지만 여자 쪽엔 이런 제도가 아직 없다.

바둑으로 대성하려면 입문도, 입단도 빠를수록 좋다. 다소 설익어도 제도권에 들어가면 배우는 게 훨씬 많다. '고3'과 '대입 신입생'의 커리큘럼이 전혀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이제 김은지는 또 한 번 '입단 고시' 준비에 들어가고 스미레는 본격 프로 생활을 시작한다. 한국과 일본의 천재에 대한 가치관과 육성법이 크게 다르다는 게 최근 1주일 새 드러났다. 이것이 바둑에만 한정된 현상일까. 그렇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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