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한반도-전문가 진단 3부⑤]윤덕민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재개하면 대북 제재 다 풀린다"

입력 2019.01.11 20:00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이문동 한국외대에서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윤희훈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1박 4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김정은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번 4차 정상회담에서 "조선반도 핵 문제의 궁극적인 평화적 해결 입장을 계속 견지할 데 대하여 일치하게 동의했다"고 중국과 북한 매체들은 전했다.

김정은은 특히 "북한은 비핵화 입장을 계속해서 견지해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2차 조·미 정상회담에서 국제사회가 환영할 만한 성과를 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해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왔음을 시사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10일 진행된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의 방중은 그냥 한마디로 말하자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라며 "정말 머지않아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북미 고위급 협상 소식을 듣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은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어떠한 딜(Deal, 거래)을 주고 받을까.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미 동맹 현상 변경’에 대한 관측이 나온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한미연합훈련 영구 중단, 美 전략자산의 한반도 진입에 대한 반대 의사를 강하게 피력한만큼 이에 대한 언급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동맹의 필요성을 절감(切感)하지 못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제안을 덥석 물 수 있다. ‘트럼프 리스크’다.

이에 대해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미북정상회담 후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를 북한의 비핵화 대가로 운운하지 않을지 걱정된다"며 "트럼프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윤 전 원장은 10일 서울 이문동 한국외대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회담이라는)리얼리티쇼를 자신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충분히 활용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윤 전 원장은 이날 오전 진행된 신년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ICBM․IRBM’을 언급한 데 주목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2차 미북정상회담의 구도를 이야기했다"며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선 북한의 ICBM․IRBM을 제한하는 내용과 영변 핵시설 등의 핵을 동결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합의를 도출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자신들이 보유한 핵무기가 미국에 위협이 안된다는 확신을 주면 성공했다(는 걸 핵보유국 비교를 통해 알고 있다)"며 "현재 북한의 협상 전략은 파키스탄식 모델에 따라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 2차 미북정상회담이 그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미국의 군비통제 라인에서 ‘북한의 비핵화와 주한미군을 맞바꿀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전략적인 손실을 입히겠다는 논리 구조가 약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최근 미국에서 내놓는 외교안보 보고서를 보면 한국이 전략적 파트너에서 빠져있다"며 "미국의 전략가들 눈에 한국은 이미 중국편으로 보이는 상황"이라고 했다.

윤 전 원장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개성공단 가동․금강산 관광’이 포함된 대북 제재 완화 카드가 맞교환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두 사업이 재개되면 대규모의 현금이 북한에 들어간다"며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한다는 건 사실상 유엔 대북 제재에서 일반 경제 제재는 다 푼다는 말"이라고 했다.

윤 전 원장은 "미북 정상회담 후 북한이 핵능력 강화를 스톱했느냐. 아니다"면서 "억제력 확보가 중요하다.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든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현 정부가)‘평화’를 강조하는데, 한국전쟁 이후 65년간 이어온 ‘평화’는 평화가 아니었나. 왜 계속 이 틀을 바꾸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이런 상황에 목소리를 내야할 군은 입을 닫고 있다. 국가와 국민을 어떻게 지키겠다는 건지 말이 없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윤 전 원장과의 인터뷰 전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회담에 들어가기 전 악수하며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신화통신
-북중 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4차 북중정상회담이 성사된 배경을 어떻게 보나.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정세가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북한으로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2차 정상회담을 최후의 담판으로 생각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를 위한 사전 정지(整地)작업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중국은 미국과 갈등이 계속 되고 있어 북한 관계를 카드로 삼아 상황을 타개할 필요가 있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번 회담에서 무슨 얘기를 했다고 보나.

"중국은 자국 주변에서 미국 영향력을 배제시키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가장 눈엣가시는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다. 중국의 1차 목표는 제 1도련선(중국이 스스로 설정한 해상 방어망)에서 미국 영향력을 배제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트럼프 대통령 얘기를 들어보면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다. 대통령 선거 때부터 일관되게 ‘우리가 왜 손해를 보느냐’ ‘비용 부담 없이는 동맹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 6·12 미북 정상회담에서도 한미연합훈련을 그냥 날려버렸다. 북한 입장에서 이같은 상황은 기회가 아닌가. 중국도 북한도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이 눈엣가시라는 점이 큰 공통분모다. 여기에 대해 의견을 나눴을 것이다."

-미국은 이번 북중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사전에 알았을까?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예상은 했을 수 있다. 1차 미북 정상회담 때도 동일한 패턴이었다. 미북 정상회담 개최된다고 하자 시진핑은 놀라서 6년간 냉대했던 김정은을 만났다. 그 후로도 시진핑은 김정은을 포용하는 자세를 취했다. 2차 미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중 정상이 만날거란 건 예상됐던 일이다."

-이번 북중정상회담 개최로 미북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보나?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전격적으로 추진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미국도 북한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 최근 진입 장벽을 상당히 내렸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작년 11월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차 미북 정상회담 전까지 핵·미사일 목록을 제시하라고 북한에 요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 2차 미북 정상회담의 최대 화두는 무엇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2차 미북정상회담의 구도를 이야기했다. 문 대통령은 오늘 기자회견에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과 IRBM(중거리탄도미사일) 이야기를 갑자기 꺼냈다.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선 북한의 ICBM·IRBM을 제한하는 내용과 영변 핵시설 등의 핵 동결 문제를 논의하고 합의를 도출하려 할 것이다."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선 1차 때와 달리 구체적인 합의안이 나올 것이라고 보나?

"2차 미북 정상회담도 1차 때처럼 실무 회담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채 열릴까봐 우려된다. 작년 미북정상회담은 회담 직전까지도 비핵화 논의를 거의 못한 가운데 정상회담이 열렸다. 결국 애매모호한 합의문이 나왔고,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한미 연합훈련 중단 발표가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 실무회담을 통해 디테일한 비핵화 방안과 틀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과정 없이 정상회담을 한다면 1차 정상회담때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 같다. 한국으로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미북정상회담 후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를 북한의 비핵화 대가로 운운하지 않을지 걱정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대통령 별장인 캠프데이비드로 출발하기 전 백악관 남쪽 뜰에서 기자들을 만나 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미국과 북한은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장소를 협상하고 있으며 아마 아주 머지않아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AP
-미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일부 학자들은 ‘탑-다운’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빠른 속도로 대범한 결단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많았다. 하지만 실상은 ‘바텀-업’이 아니면서 발생하는 디테일의 부족함이 부각되는 상황이다.

"북한이 원하는 게 그거다. 북한은 디테일이 없어야 자신들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고위급 회담 등 실무회담을 계속 지연시키는 것이다. 정상회담 전에 실무회담을 통해 비핵화 틀을 마련해야 한다. 북한은 2차 미․북정상회담도 실무회담을 계속 공전시키면서 정상 간 테이블로 끌고 가려고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오늘 기자회견에서 이번 북중 정상회담과 관련해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역할을 어느정도로 보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중국이 동참하면서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중국의 역할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국은 미․중 분쟁 속에 북한 카드를 활용하려는 생각을 한다. 이 때문에 ‘미중의 약화된 관계가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이 북한 비핵화보다는 평화협정 등을 통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지위를 흔들 수 있는 쪽에 더 관심을 갖지 않을까 우려된다."

-지난해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교수는 ‘한국 대통령이 나가라고 하면 주한미군 나가야 한다’며 한미동맹에서의 한국의 주체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젠 반대로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 빼겠다. 한미동맹도 정리하자’라고 할 수 있단 걱정이 든다.

"트럼프 리스크가 너무 크다. 한미동맹의 중요성, 주한미군의 전략적 중요성 등을 중국과 연결하며 미국이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게 안 볼 가능성이 크다. 밥 우드워드의 서적 ‘피어(Fear)’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결정을 매티스 전 국방장관이 막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매티스 전 국방장관, 켈리 비서실장, 맥매스터 안보보좌관 같은 ‘트럼프 행정부의 어른 3인방’이 트럼프 대통령을 제어하는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그럴만한 사람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는 것으로 알려진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주한미군과 비핵화를 거래하면서 중국의 협력을 얻어서 비핵화를 달성해야 한다’는 얘기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라면 이를 거래할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트럼프 입장에선 지금 어려운 국내 정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이를 적극 활용할 것 같다.

"1차 미북 정상회담때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충분히 연구하고 바람직한 안을 내기보다는, 국내정치적으로 어려웠던 상황을 미북 정상회담으로 전환시켜버린 측면이 있다. 하원을 민주당이 장악하고 뮬러 특검이 트럼프 대통령을 몰아가는 현재 국면을 전환시키기 위해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이용할 개연성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신묘한 전략가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김정은이 비핵화와 종전선언은 주한미군 주둔과 관련이 없다고 인정했다’고 말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남북관계를 중시하고 2차 미북정상회담 개최를 바라는 문 대통령의 입장에선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근데 북한이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화’와 우리가 생각하는 비핵화는 거리가 있다는 게 올해 김정은의 신년사나 작년말 북한의 발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결국 ‘비핵지대화’ 논리다. 이번 김정은의 신년사를 보면서 씁쓸했던 것은 인도나 파키스탄이나 핵실험 성공 후에 내건 표현이 그대로 담겨 있다. 바로 핵 보유국가의 국제의무를 준수하겠다는 것이다. ‘더 만들지도, 실험하지도,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겠다’는 건 실질적인 핵보유 선언이다. 북한은 이제 핵 보유국으로서 미국과 핵 군축협상을 추진할 것이다. 김정은의 신년사를 보면 미국의 핵우산을 제거하고 핵 없는 세상이 돼야 자신들의 핵무기를 없앨 수 있단 거 아닌가. 결국은 미국이 핵무기를 없애야 한다는 말이다. 북한은 지금 파키스탄식 핵보유를 노리고 있다."

-북한이 노리는 파키스탄 모델이란 무엇인가.

"북한은 2차 세계대전 후 핵보유에 성공한 나라와 실패한 나라를 많이 공부했다. 현재 핵을 보유한 나라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이른바 P5 이외엔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이다. 핵 보유에 성공한 나라와 실패한 나라의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대미 관계다.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자신들이 보유한 핵무기가 미국에 위협이 안된다는 확신을 주면 성공했다. 북한은 이미 ICBM과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북한은 이제 미국에 ‘워싱턴에 대한 핵 테러 위협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 ‘북․미 관계가 지금의 한․미 관계보다 훨씬 발전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결국에 가선 ‘파키스탄처럼 우리의 핵보유를 묵인해달라’고 할 거다. 현재 북한의 협상 전략은 이 원칙에 따라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 2차 미북정상회담이 그 분수령이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9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대북 제재가 빨리 해결되려면 우선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과감하게 할 필요가 있다. 또 북한이 조치를 취하는대로 계속 비핵화를 촉진하고 독려하기 위해선 상응조치도 함께 강구돼야 한다’고 했다. 상응조치란 결국 제재 완화를 말하는 걸텐데, 1단계 제재 완화에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재개가 들어가 있는 듯 하다.

"아마 1단계의 제재 완화가 이뤄진다면 문 대통령이 강조하는 개성 공단과 금강산 관광까지 풀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두가지가 이뤄진다면 사실상 유엔 제재의 형해화 수준이다.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동력으로 쓸 카드로 뭐가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은 계속 제재를 완화하자고 하니 사실 한국 정부에 대한 부담감은 없을 것이다. 미국으로선 가장 신경쓰이는 게 일본이다. 그래서 IRBM을 언급한 게 아닐까 싶다. 일본까지 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 미사일도 포함하겠단 거다. 다만 핵을 보유한 북한을 일본이 수용할 수 있을지가 물음표다."

-몇 해 전까진 제재 강화를 외치던 한국 외교관들이 이제는 제재 완화의 필요성을 말해야 하는 상황이다. 유엔 대표부에서 근무하는 한국 외교관들로선 상당히 뻘쭘한 상황일 것 같다.

"한국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외교 정책의 진폭이 너무 크다. 외국에선 어느 쪽이 한국의 진의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건 국가의 신뢰도와도 직결된다. 외교 신임도에 적지 않은 데미지를 줄 것이다."

-오늘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두 가지 워딩을 전달했다.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비핵화와 완전한 비핵화는 차이가 없다’ ‘비핵화․종전선언은 주한미군과 관련이 없다’ 김정은의 발언에 대해선 100% 신뢰하는 모습이다.

"협상의 대상이기 때문에 ‘신뢰’라는 구조 속에서 보는 거다. 하지만 협상을 진행하는 능력에서 차이가 난다. 북한은 지금 정석대로 외교를 풀어가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를 위해 중국을 이용하는 등 외교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남북관계 일변도로만 가고 있다. ‘남북관계만 잘되면 모든 걸 깽판쳐도 좋다’는 옛말이 있다. 이런 인식이 우리 정부의 지배적인 인식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특히 한미동맹이나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해서 방위비 협상도 난항을 겪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이 어디로 튈 지 모른다는 불안 요소가 있지 않나. 문 대통령이 오늘 회견에서 북한 비핵화와 주한미군은 별개라고 했는데 부디 그 정신은 계속 지켰으면 한다."

-문제는 미국의 입장이다. 미국 외교가에선 ‘비핵화와 주한미군을 맞바꿀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의 군비통제 라인에서 그런 이야길한다. 북한은 이미 핵을 보유한 나라이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하다는 논리 구조로 접근하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진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전략적인 손실을 입히는 구조 속에서 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논리 구조였는데, 이게 약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ICBM만 해체해도 자신의 업적이라고 선전하지 않을까?

"미국의 일반 국민들은 협의문의 구체적인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ICBM을 해체하는 쇼가 벌어지고, 양 정상이 악수하고 포옹하는 모습만으로 평화가 왔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리얼리티쇼를 자신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충분히 활용할 것이다. 물론 이후에 역풍이 불수도 있겠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다."

-앞서 개성공단 재개와 금강산 관광이 되면 대북제재는 형해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한다는 건 사실상 유엔 대북 제재에서 일반 경제 제재는 다 푼다는 말이다. 두 사업이 재개되면 대규모의 현금이 북한에 들어가게 된다. 한국에 대해서만 제재 예외를 인정한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중국과 러시아가 반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대북 제재 해제 국면이 될 수밖에 없다."

-대북 제재는 미국만 양해하면 풀리는 건가.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서 반대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나?

"유엔 합의에서 가장 중요한 건 P5의 의견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대북 제재 해제를 쌍수들고 환영할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과연 미국의 말을 안들을까. P5에서 세 나라의 이해관계가 통하면 제재는 풀리는 수순으로 가게 된다. 물론 지금까지 나온 모든 제재를 전면적으로 해제하는 방식은 취하진 않을 것이다. WMD 이전 의혹과 관련한 해상 검색 등의 제재는 남아있을 것이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이문동 한국외대에서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윤희훈 기자
-문 대통령이 ‘북한은 영변핵시설 폐기까지 가기 위한 상응조치를 요구한다’고 했는데, 이 상응 조치가 결국 금강산과 개성공단인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가동으로 한정짓기 보단 기본적으로 ‘제재 완화’라고 봐야 한다. 문제는 제재 완화를 일정수준 해준다 했을 때, 영변핵시설 폐기 이후의 비핵화 진전을 이끌 카드가 뭐가 있냐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다 해결된 거다. 한미 연합훈련도 안해, 전략 자산도 들어오지 않아, 경제에 있어선 숨통이 트였어. 뭘 가지고 ‘완전한 비핵화’까지 끌고갈 수 있나."

-우리는 결국 ‘핵있는 평화’ 를 맞이하게 되버린다.

"북한은 현재 70개 정도의 핵탄두를 갖고 있다. 그리고 매년 12개 이상 늘릴 수 있는 인프라를 갖췄다. 한반도 전역에 날릴 수 있는 탄도미사일만도 무려 1000여기다. 그런데 우리는 미국 본토까지 날아가는 핵무기만 문제를 삼는다. 미국의 핵 위협에 대해선 배려하는데 왜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겠다고 이야기하진 않는가. 핵 있는 평화로 가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면 이해가 안되는 수순이다. 북한의 핵탄두는 5000만 국민의 안위를 위협하는 실질적인 위협이다. 미국과 북한의 문제로만 치부할 게 아니다."

-주한미군의 경제적 가치도 현 정부가 놓치고 있는 것 중 하나라고 본다. 주한미군 철수, 감축이 대두됐을 때 우리 시장에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

"주한미국을 줄이거나 철수한다고 했을 때 우리 시장이 겪을 리스크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진보 진영의 가장 큰 착각은 ‘미국은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절대로 주한미군을 철수하지 않는다’이다. 여기서 기인한 잘못된 판단 때문에 2002년에 10조원의 국민 세금을 낭비했다. 용산에서 주한미군을 나가라고 했는데, 한강 이북에 있는 주한미군이 나왔다. 그 과정에서 2개의 전투여단이 빠졌다. 우리의 요구로 미군이 빠졌기 때문에 평택 기지 비용도 우리 세금으로 냈다. 지금도 잘못 생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에 대한 가치를 기존의 미국 정부와는 다르게 평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행동을 막는 역할을 할 사람이나 조직도 보이지 않는다. 예전이면 일본이 미국을 향해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설명하기도 했는데, 한일 관계까지 금이 가면서 일본이 그런 역할을 하리라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미국 내에선 ‘동맹국으로서 한국의 역할’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온다. 미․중 갈등 사이에서 한국이 과연 동맹국으로서 미국을 지지했느냐는 것이다. 한국이 동맹으로서 이익은 취하면서 책임은 회피한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은 지금 인도태평양 전략에 중점을 두고 있다. 미국이 자칫 잘못 생각하면 에치슨라인이 될 수 있다. 미국의 눈에는 한국이 자신들의 외교 정책에 반하는 나라로 비쳐질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내놓는 외교안보 보고서를 보면 한국이 전략적 파트너에서 많이 빠져있다. 대부분 호주-일본-아세안 국가와 협력해서 인도태평양에서의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확보하는 방안을 다루고 있다. 한국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한국은 미국의 대중전략엔 참여하지 않겠단 입장을 밝힌 상태이지 않나. 말로는 ‘한미 동맹은 운명을 같이한다’고 하지만, 미국의 전략가들 눈에서 한국은 이미 중국편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국민주권연대 회원들이 '주한미군 철수 등을 주장하며' 한반도 평화염원 문화제 행진을 하고 있다. 왼쪽엔 한미동맹 강화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연합뉴스
-우리 정부가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스스로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 아닌가.

"과도하게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노무현정부때도 ‘균형자론’을 말한적 있다. 지금 정부도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이는 성공할 수 없는 전략이다."

-한미 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지연되고 있는 것도 주한미군 축소에 대한 불안감을 야기하고 있다.

"방위비 분담도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미국이 달라는대로 주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일본과 독일도 협상을 하는 만큼 그 추이를 지켜보면서 적정 수준에서 협상을 매듭지어야 한다.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선 7월까지 방위비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7월에 이뤄질 미 기갑여단 교대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월이면 현재 한국에 주둔 중인 3기갑여단이 본국으로 귀환하는데, 그 후속부대의 한국 배치를 지연시킬 수 있다."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가 계속 현실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국방력 강화나 억제력 보강에 대한 언급이 없다. ‘자주국방’이라는 기조 조차 보이지 않는다.

"미북 정상회담 후 북한이 핵능력 강화를 멈췄나? 아니다. 계속 양산 중이다. 억제력 확보가 중요하다. 미국 핵우산에 의존하든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 진보진영에서 하는 이야기는 ‘비핵지대화’다. 60~70년대 소련이 이야기한 비핵지대화 개념이 왜 한반도에 적용하겠다는 거냐. 북한의 핵보유 야심은 여전한 상황에 한반도 주변국, 중국․러시아․일본은 다 핵 보유 또는 잠재력을 갖춘 나라인데 왜 우리만 비핵화하겠단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주변국도 다 비핵화를 해야 맞지 않나. ‘집단안보’ 개념도 허무맹랑하다. 그리고 ‘평화’를 강조하는데, 한국전쟁 이후 65년간 이어온 ‘평화’는 평화가 아니었나. 왜 계속 이 틀을 바꾸려는지 모르겠다."

-핵우산이 아닌 다른 방법이라면 뭘 말하나? 자체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를 말하는 건가?

"나는 자체 핵무장론자는 아니다. 하지만 몇가지 조건을 따져볼 필요는 있다. 대한민국을 노리는 핵이 그대로 있는 상황, 주한미군이 완전히 철수한 상황, 또 핵우산이 남한에 없는 상황, 이런 상황이라면 자구책을 가져야 한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외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전술핵 재배치는 어떻게 생각하나?

"국내 정치적으로 먼저 부딪힐 것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도입 과정에서 한번 겪지 않았나. 문제는 지금은 전술핵 재배치가 아니라 미 전략자산의 전개 조차 못하게 된 상황이다. 핵 억제력을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확보하겠단건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 목소리를 내야할 군은 입을 닫고 있다. 국가와 국민을 어떻게 지키겠다는 건지 말이 없다. 북한 핵문제는 미국과 북한이 해결할 문제이고, 우리는 중재자 역할만 하면 된다는 담론이 지배하고 있는 게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 : 1991년 국립외교원에서 조교수로 시작한 윤덕민 전 원장은 27년을 국립외교원에서 근무했다. 2013년 5월 국립외교원장으로 취임해 2017년 5월까지 만 4년을 국립외교원장을 역임했다. 윤 전 원장은 지난 인터뷰에서 "역대 국립외교원장 중 최장기 원장"이라며 "유일하게 자랑할만한 것"이라고 했었다. 현재 윤 전 원장은 한국외대 석좌교수를 지내고 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