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공공기관 타이틀 달면 연봉·복지 공개… '탈출 전략' 짜기 바쁜 금감원 직원들

조선일보
  • 이혜운 기자
    입력 2019.01.12 03:00

    기재부, 이달말 결정

    기재부, 이달말 결정
    이달 말 공공기관 지정 여부를 앞두고 직원들 분위기가 뒤숭숭한 서울 여의도동 금융감독원. / 고운호 기자
    "시어머니가 한 명 더 생기는데 당연히 싫죠. '신의 직장'도 옛말 된 지 오래예요."(A씨)

    "지금도 연봉 높다 어떻다 하면서 욕먹는데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더 심하지 않겠어요? 동료끼리 모이면 '어떻게 탈출할지' 전략 짜느라 시간이 다 가요."(B씨)

    대표적인 '신의 직장' 금융감독원은 공공기관 지정 여부를 앞두고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국회와 금융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이달 말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를 열어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금융기관을 검사·감독하는 금감원은 공적인 업무를 하고 있지만 공공기관이 아닌 '무자본특수법인'이다. 운영도 세금이 아닌 은행·증권·보험 등 3개 금융 영역에서 걷은 감독분담금으로 한다. 금감원은 2007년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가 2009년 "금융 감독 기관으로서 정부로부터 독립성과 중립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받아들여지면서 지정 해제됐다.

    그러나 법 자체에 '공공기관 지정 제외 기관'으로 명시된 KBS나 EBS와 달리 언제든 공공기관으로 지정될 수 있다. 2011년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 2013년 동양그룹 부실 사태 등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공공기관 지정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이번에도 금감원의 방만 운영, 채용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공공기관 지정 논란이 재점화됐다.

    금감원이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먼저 기재부의 냉정한 감시 체계 안으로 들어가 연봉, 복지, 해외 연수 및 출장 현황 등이 모두 공개된다. 이들이 300여개 공공기관과 평행선상에 놓일 경우 예전과 같은 연봉과 복지 수준을 누리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현재 금감원의 정규직 평균 연봉은 1억375만원(2017년 기준). 4대 시중은행 수준이지만 공공기관 평균 6707만원보다는 높다. 공공기관 중 연봉 최고는 한국투자공사(1억1103만원)다.

    공공기관 임원, 공무원은 국장 이상만 항공기 비즈니스석에 앉을 수 있지만 금감원은 국·실장 이상이 이용한다. 철도 특실도 공공기관은 임원, 공무원은 국장 이상만 이용할 수 있는데, 금감원은 입사 5년이 지난 4급 이상이면 된다. 따라서 이런 혜택도 사라진다. 공공기관 관계자는 "공공기관에 지정되면 기재부가 예산 편성 지침을 주기 때문에 금감원이 내부 직원들에게 주던 혜택이 모두 사라진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또 지방 이전, 여름철 실내 온도 유지 등에 관한 정부 지침도 따라야 한다. 금감원은 명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엘리트들의 몇 안 남은 '서울 근무지'로 주목을 받아왔다.

    시어머니들도 많아진다. 현재 금감원은 금융위로부터 인사와 예산 승인을 받지만 공공기관으로 지정되고 나면 인사는 금융위, 예산은 기재부로 시어머니가 둘이나 생긴다. 여기에 감사원이라는 '시누이'까지 상시 간섭하는 시스템이 된다.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금감원의 미래는 앞서 2009년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 2015년 해제된 '한국거래소'를 보면 알 수 있다. 한국거래소는 공공기관이 된 직후 감사원의 감사를 받고 법인카드 사용 내역이 낱낱이 공개되며 비판받았다. 2014년에는 '300여개 공공기관 중 연봉 1위' 등의 기사가 나며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금융기관 종사자 C씨는 "지금은 굳이 금감원 사이트에 들어가서 연봉 등을 확인한 다음 공공기관과 비교하는 일은 없지 않으냐"며 "만약 지정되고 나면 공공기관이란 이름으로 안 먹던 욕을 다 먹을 것"이라고 했다.

    금감원을 퇴사한 30대 D씨는 "입사할 때는 돈과 명예 모두를 누릴 줄 알고 왔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재취업 제한으로 임원이 돼도 막막하고 낙하산들로 임원이 되는 길도 힘들다"며 "이럴 바엔 시중은행에 취직할 걸 그랬다는 말들을 한다. 이미 '신의 직장'이라고 공개된 직장에는 신이 없다"고 했다.

    내부의 끙끙 앓는 분위기와 달리 여론은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으로 기운 상태다. 채용 비리와 외유성 출장, 낙하산 인사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과도한 복지 혜택이 공개되며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관리 감독을 이중 삼중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금융위의 봐주기식 감시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이와 관련해 지난달 말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데 반대하는 의견을 공운위에 제출하기도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사실상 기재부의 결단만 남은 상황"이라며 "고액 연봉을 받고 정부 부처에 준하는 공권력을 행사하면서도 조심하지 않다가 불신을 자초했기 때문에 그들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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