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 스토리] 김용 세계은행 총재, 사임 이유는...‘트럼프 벽’ 극복 못 했나

입력 2019.01.08 16:34

한국계 미국인인 김용(59·Jim Yong Kim) 세계은행 총재가 임기를 3년 반쯤 남겨두고 지난 7일(현지 시각) 오는 2월 1일 자로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예상치 못한 발표였다. 그는 세계은행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앞으로 개발도상국 인프라(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하는 민간회사에 합류할 것이라는 계획도 밝혔다.

김 총재의 갑작스러운 사임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로이터, 가디언 등에 따르면, 김 총재가 개인적인 이유로 떠난다고 했지만 김 총재 사임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의 불화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전에 연임이 결정된 김 총재는 친환경 에너지 프로젝트와 자유무역을 옹호하며 트럼프 행정부와 갈등을 빚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은행은 개발 자금을 지원하는 가장 큰 정부 기반 공급원이며 전세계에 걸친 프로젝트에 저비용 대출을 제공하고 있다.

2018년 10월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김용(미국명 Jim Yong Kim) 세계은행(WB) 총재가 연설하는 모습. /연합뉴스 AP
◇ ‘한국·아시아계 최초’ 세계은행 총재…기후변화·보건 힘써

김 총재 앞에는 ‘한국계 최초이자 아시아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는 2012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의 추천으로 제12대 세계은행 총재로 임명됐다. 이전까지 1945년 출범한 세계은행 역대 수장은 모두 미국인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난 김 총재는 5세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이민 간 미국 시민권자다. 이후 그는 오바마 행정부 아래서 연임에 성공했다. 2017년 7월 1일부터 5년 임기를 새로 시작돼 원래대로라면 2022년 6월까지가 임기다.

세계은행 총재가 되기 전에는 2009년 한국계 최초로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한 곳인 다트머스대 총장을 지냈다. 그는 브라운대학 졸업 후 하버드대에서 의학박사와 인류학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 대학 의대 교수로 재직했다. 김 총재는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 국장을 지낸 보건 전문가이기도 하다.

평생을 빈곤과 질병 퇴치에 바쳐온 김 총재는 재임 기간 세계 빈곤·기후변화·보건 분야에 집중했다. 이는 그를 세계은행 총재에 앉힌 오바마 대통령의 생각과도 같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를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하면서 "(김용은) 20년 이상 세계 개발도상국 생활 환경 개선을 위해 일해왔다. 그의 경험을 볼 때 세계의 빈곤을 줄이는데 적합한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끝까지 이런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사임 발표 성명에서도 "세계적으로 빈곤 문제가 심해지는 만큼 세계은행은 그 언제보다도 중요한 위치에 있다"며 "기후변화·전염병·기근·난민 등 문제는 더 복잡하고 규모 있게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김 총재는 세계은행 총재로 취임한 후 아프리카 에볼라 확산에서 시리아 난민 사태에 이르는 수많은 세계적 위기를 대처하는 데 세계은행 자금을 투입했다. 그는 국부펀드와 사모펀드, 보험회사 등 민간 투자사로부터 수조달러에 달하는 기부를 이끌어 인도네시아·잠비아·인도 등 개발도상국 지원 프로젝트 자금으로 사용했다.

또 김 총재는 지난해 4월 8년 만에 증자를 결정하는 등 재무 체질 개선에도 주력했다. 그는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 여러 개발은행과 경쟁, 제휴할 뜻이 있음도 밝혀왔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2019년 1월 7일 사임을 발표했다. 두 번째 임기 도중 사퇴다. 사진은 김 총재가 2018년 11월 28일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주요 20국(G20) 정상회의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김용 트위터
◇ 세계은행 조직 개혁으로 ‘리더십’ 논란까지

김 총재는 세계은행의 조직 개혁을 추진하다 내외의 갈등에 부딪히기도 했다. 김 총재가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긴축 재정과 직원 감축 등 구조조정을 실시하자 직원들이 크게 반발했고 리더십 문제까지 불거졌다.

김 총재는 2013년 NYT와의 인터뷰에서 세계은행이 지역은행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며 세계은행을 개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시 김 총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확실한 재정 상태를 감안해 비용 4억달러(약 4493억원)를 절감하고 세계은행의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잡았다. 만연한 관료주의도 뿌리 뽑겠다고 했다.

그는 "세계은행의 조직문화가 2030년까지 빈곤을 없애겠다는 목표를 가로막고 있다"며 "구조조정은 세계은행이 전세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보다 효율적이고 빠르게 대처할 수 있게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구조 개혁은 순탄치 않았다. 구조조정 소식이 알려지자 직원들이 반발하고 나섰고 급기야는 신뢰와 리더십 문제까지 나타났다. 당시 외신은 김 총재의 개혁 정책과 지도력에 대한 안팎의 비판을 전했다.

외신은 김 총재가 조직 개편과 전체 예산의 8% 감축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임원 48명의 일괄 사표를 받고 이 가운데 최고위직 3명을 설명도 없이 내보냈다고 했다. 김 총재는 정부 자문 분야에서 경쟁 관계인 맥킨지 등 고비용 외부 자문업체를 기용해 내부 불만을 초래했다. 김 총재의 출신 배경도 문제 삼았다. 외신은 김 총재가 출신 배경 탓에 재무장관들과 어울리는 걸 즐기지 않는데 이는 세계은행의 영향력을 떨어뜨린다고 했다.

이에 세계은행 직원들을 대표하는 세계은행 직원조합은 2016년 8월 김 총재의 연임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했다. 그러나 김 총재는 같은 해 9월 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공식적으로 연임 의사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세계은행 구조조정 완수 등을 들며 이사회에 연임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이방카 트럼프. /세계은행
◇ "트럼프와의 불화로 돌연 사임"

김 총재의 갑작스러운 사임 발표에 트럼프 대통령과의 불화가 원인이었다고 NYT·니혼게이자이신문·월스트리트저널(WSJ)·BBC 등이 분석했다. WSJ은 "김 총재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세계은행에서 미국의 지배력을 비판하는 측과 트럼프 행정부 간 다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유세 당시부터 ‘세계화의 첨병’으로 여겨지는 세계은행을 눈엣가시로 여겼다. 그는 공공연하게 분담금을 삭감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김 총재는 좌불안석이었다. 최대 기여국인 미국이 분담금을 줄이면 세계은행이 추진 중인 주요 프로젝트가 줄줄이 타격을 입게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김 총재는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를 설득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4월 세계은행의 130억달러(약 13조8970억원) 규모 자본금 증자를 찬성하기로 했다. 세계은행에 증자한 건 2010년 이후 처음이었다. 이를 두고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임명으로 임기를 시작한 김 총재의 대승’이라는 평이 나왔다.

호시절은 짧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여전히 국제기구의 중요성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을 뿐더러 세계은행의 노선도 트럼프 대통령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특히 기후변화와 싸우는 세계은행의 정책은 트럼프 행정부와 정반대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파리기후변화협정을 탈퇴하며 유럽 주도의 기후변화운동을 거부해왔지만 세계은행은 지난해 12월 앞으로 5년간 2000억달러(약 225조원)를 기후변화 대응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석탄산업 부활을 정책 우선 과제로 삼고 있지만 세계은행은 친환경을 추구하며 석탄발전 투자 지원을 줄였다.

무역 관련해서도 세계은행과 트럼프 행정부는 다른 길을 걸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추구하며 중국 등 여러 나라와 무역 갈등을 겪고 있다. 그러나 세계은행은 국제통화기금(IMF)·세계무역기구(WTO)와 함께 자유 무역을 옹호했다.

지난해 4월 세계은행에 증자를 결정한 트럼프 행정부가 증자 조건으로 대(對)중국 융자 대폭 축소를 요구한 것도 불화의 원인이 됐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전했다. 당시 김 총재는 중국의 출자 비율을 높이면서 대중 안건을 축소하는 융자 규칙 개선을 약속해 간신히 증자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후 세계은행은 AIIB와 협조 융자를 다루는 등 자금의 안정적 운용에서 중국과 연계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김 총재가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차기 총재는 트럼프 행정부 입맛에 맞는 인물이 될 거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로이터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 총재의 후임 선정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새로운 총재도 세계은행과 트럼프 행정부 사이에서 어려운 줄타기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NYT는 "김 총재 후임으로 올 새로운 총재는 노골적으로 다자주의를 배척하는 트럼프 행정부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면서 세계은행의 적법성과 타당성을 지키는 힘든 도전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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