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이대남의 항변 "우리를 여성 혐오자라고 착각하지 마라"

조선일보
  • 김아사 기자
    입력 2019.01.05 03:00

    [목소리 내는 이대남]

    20대 50명 만나 얘기 들어보니

    최근 여론조사 기관의 업무가 하나 더 늘었다. 이들은 20대 남성에 대한 통계치를 따로 뽑아 분석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하지 않던 일이다. 지난달 여론 조사에서 20대 남성의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30% 아래로 떨어진 것이 이유가 됐다. 보수 성향이 강한 장년층을 포함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은 수치. 반면 20대 여성의 문 대통령 지지율은 63.5%, 연령대별 남녀 계층에서 가장 높았다. 처음으로 20대 남성이란 집단 뒤에 '왜'라는 말이 뒤따랐다.

    [목소리 내는 이대남]
    일러스트=이철원
    20대 남성은 크게 주목받지 않는 계층이었다. 이들에 대한 인식이라고 해봤자 군대를 다녀온 뒤 적당히 사회화돼 취업 준비 등을 서두르는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 세대, 88만원 세대의 끝자락쯤. 뚜렷한 정치색보다는 무관심이란 말이 익숙했고, 트렌드를 주도하며 주요 소비 계층으로 대접받는 또래 여성들과도 달랐다. 일종의 과도기 세대, 적어도 기성세대의 눈엔 그렇게 비쳤다.

    20대 남성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이유와 배경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를 또 다른 세대 갈등의 전조로 보기도, 첨예한 남녀 갈등에서 비롯된 반발로 해석하기도 한다. '아무튼, 주말'이 대학생, 공무원, 회사원, 자영업, 무직 등 20대 남성 50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젠더 문제, 여성 혐오 착각은 곤란

    20대 남성의 불만은 명료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자신들을 희생양 삼지 말라는 것. 이제까지 콩고물은 기성세대가 가져가 놓고 그들이 내놓는 조치들은 모두 20대 남성에게 불리하게 설계돼 있다는 주장이다. 남녀 문제가 대표적이다.

    [목소리 내는 이대남]
    대학생 박현수(25)씨는 "남녀 간 차별은 사회가 풀어가야 하는 숙제라는 데 공감한다"며 "문제는 정부가 지나치게 한쪽 성을 우대하고 다른 쪽 성이 역차별 받는다는 인식을 주는 점"이라고 했다. 자영업을 하는 성호현(27)씨는 "대부분의 20대 남성은 여성이 차별을 받아왔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고, 또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기성세대가 자신들만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남녀 간의 차별을 해소하겠다고 밀어붙이는 방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여성폭력방지법이 좋은 예다. 이 법은 피해자를 여성으로만 한정했다. 20대 남성들은 남녀 차별 문제를 가해자 남성과 피해자 여성으로 나눠 해결하는 방법론을 문제 삼는다. 박씨는 "남성도 문제의식을 공유했던 만큼 논란을 줄이는 법안 마련도 가능했다"면서 "몇몇 말들이 불필요한 남녀 대결 구도를 불러와 잡음만 키웠다"고 했다. 법안이 여성 외의 성별을 배제해 을의 지위에 있는 일부 남성 피해자 구제를 외면했고, 이는 법의 사각지대를 키우는 동시에 또 다른 차별을 낳았다는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이 법을 폐기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와 5만5000여 명이 동의를 표시했다.

    이들에게 동년배 여성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달리던 상대가 아니다. 20대 남성은 어려서부터 자신들보다 영리하고 뛰어난 여성들과 경쟁을 해왔다.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5~29세 여성의 고용률은 69.6%로, 같은 연령대 남성 고용률(67.9%)보다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할당제나 여성 창업자 지원 등은 사회에 쌓여온 남녀 갈등 문제를 20대에게 전가하는 행태란 것이다. 대학생 조성수(21)씨는 "직장에서 여자들 잔심부름 시키고 가정에서 집안일 떠넘기고 차별을 일삼은 것은 기성세대 아니냐"며 "그런데 내놓는 정책들은 갓 사회에 진출하려는 20대 남성이 상당 부분 책임을 지게끔 만들어졌다"고 했다.

    문제가 해결 없이 공전되다 보니 극단적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남녀 차별이 여성들의 '미투', 남성들의 '펜스룰(이성 간 접촉 차단)' 등의 주장으로 이어지거나 서로 남혐(남성 혐오), 여혐(여성 혐오)을 외치며 범죄가 이어지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책을 구사할 때 특정 성을 우대한다는 인상을 주게 되면 남녀 모두 차별 받는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며 "이 경우 정책 효과는 사라지고 논란만 남을 수 있다"고 했다.

    불공정은 못 참아

    공정성에 대한 분노도 화두에 올랐다. 문재인 정부가 공정을 기치로 내세웠지만 낙하산, 캠코더 인사에서 보듯 현실은 이와 달랐다는 것이다. 직장인 김성형(29)씨는 "20대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반발했던 것은 경제 문제 등 다른 사안이 아니었다"며 "돈도 실력이라고 얘기했던 정유라는 특권이나 반칙의 상징이었고 이를 격파하자는 데 많은 이가 공감했던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금수저 문제의 핵심을 금이 아니라 수저라고 얘기한다. 김현동(20) 바른미래당 청년 대변인은 "내가 흙수저로 태어났더라도 언젠가 금이 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공정한 사회라고 받아들여질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이들은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단일팀이나 아시안게임 야구팀이 비난에 시달렸던 이유 역시 공정하게 땀 흘린 선수들이 배제되는 불공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지훈(29)씨는 "축구 선수 손흥민이 병역 면제를 받는 데 대부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처럼, 실력이 있으면 부와 명예를 누려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불공정에 대한 분노는 늦어지는 취업, 최저임금 인상 등 경제 상황이나 정책과 맞물려 정부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졌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20대 남성들은 어느 때보다 힘든 취업 전쟁을 치르고 있고 이것 역시 정부 정책의 실패로 여기고 있다"며 "불공정의 지속은 결국 자신들만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불만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여전한 선민의식

    20대 남성의 이런 불만이 반영될 공간은 많지 않다. 이들은 '나(기성세대)는 맞고 너(20대 남성)는 틀리다' 식의 사고 탓에 소외감을 느낀다고 얘기한다. 대표적 예가 지난달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의 발언. 그는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빠진 것에 대해 "자기들(20대 남성)은 축구도 봐야 하는데 여자들은 축구도 안 보고 자기들은 롤(LOL·온라인 게임)도 해야 하는데 여자들은 롤도 안 하고 공부하지. 모든 면에서 남자들이 불리하다"고 했다.

    20대 남성이 격분한 지점은 게임 운운이 아니라 "정치는 올바른 일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힘든 일"이라며 "문 대통령은 적어도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대중의 욕망을 추종하는 스타일은 아니다"고 말한 부분이다.

    정의를 좇는 문 대통령이 욕망을 가진 20대 남성에 반해서 생긴 일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여전히 자신들을 계몽의 대상, 가르침의 대상으로만 여긴다는 점에 20대 남성들은 분노하는 것이다. 취업준비생 권태영(27)씨는 "20대 남녀는 동등한 교육을 받았고 문화에도 이런 의식이 자리 잡았다"며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정의 관념을 앞세워 필요 이상의 억압이나 차별을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반발심을 불러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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